갓 태어난 아기. 정말 신비롭고 감동적이다. 흥분되는 감정을 조금 뒤로하고 아기를 관찰해 보니 흥미로운 지점이 너무 많다. 그중에서도 아무것도 배우지 않은 아기가 가지고 있는 능력, 아기라면 누구나 할 줄 아는 능력에 관심이 갔다. 그 능력은 3가지로 분류할 수 있었다.
누구도 가르치지 않았지만 어떤 아기라도 갖추고 태어나는 능력은 바로 빠는 능력, 싸는 능력, 소리 내는 능력이다. 놀랍게도 신생아는 다른 모양의 물건을 잘 빨지 않는데, 엄마의 젖꼭지 모양의 물건을 보면 알아서 빨아댄다. 신생아 때는 눈도 잘 보이지 않는다고 하고, 코도 그다지 발달하지 않았다고 하는데 대체 어떻게 구별하는 걸까? 분명 그 빨려는 욕구는 성인 남성이 여성의 가슴에 가지는 욕구와는 확연히 다르다. 물론 프로이트 박사님은 다르게 설명하실지도 모르겠지만.... 진화적으로 이빨도 없는 상태에서 엄마 젖을 빨지 못하면 죽기 때문에 생긴 능력이라고 단순하게 생각할 수 있지만, 이는 결과론적인 이야기다. 전 세계 모든 아기가 정확하게 젖꼭지 모양을 구별하여 빠는 능력을 가졌다는 것은 나로서는 정말 신기한 일이었다.
빠는 능력과 싸는 능력은 생존을 위해 반드시 갖추어야 하는 능력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태어나자마자 먹고 싸지 않으면 바로 죽어버릴 테니, 태어났을 때 이 두 가지 능력을 제대로 갖춘 유전자만이 살아남아서 진화해 온 것은 당연한 귀결일 수 있다. 하지만 소리를 내는 능력은 특이하다. 앞의 두 생리적 능력과는 다르게 소리를 내는 것은 사회적 능력이기 때문이다.
갓 태어난 아기를 관찰하다 보면 아직 모든 기능이 완성되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마치 시운전을 하는 것처럼, 몸 하나하나 기능을 뱃속에서처럼 발전시키면서 형성시키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사실은 1년 정도 엄마 뱃속에서 모든 기능을 키워야 했지만, 10개월이 넘어가서 나오게 되면 너무 커져서 산모가 죽을 위험이 크기 때문에 밖으로 나와서 2~3개월간 인간으로서의 기능을 발달시킨다는 느낌이 들었다. 때문에 아기는 눈도 잘 보이지 않고, 잘 들리지도 않고, 냄새도 잘 못 맡는다. 하지만 그럼에도 세상에 나오게 되면 생존을 위해 반드시 갖추어야 할 능력이 있는 법이다. 애석하게도 엄마 뱃속에 있는 10개월간 완성시킬 수 있는 능력은 3가지 정도가 한계였던 것 같다. 우리에게 생존을 위해 3가지를 꼽으라면 당연히 먹고 싸는 능력 2개는 기본으로 들어갈 것 같다. 하지만 소리를 내는 능력은 뜬금없다. 만약 우리가 야생에서 태어났다면, 이 능력보다는 잘 보는 능력, 잘 듣는 능력, 혹은 잘 뛰는 능력을 갖추는 것이 나을 것이다. 야생에서 소리를 크게 지르는 것은 잡아먹힐 위험만 높일 뿐이다. 하지만 사람에게는 이 능력이 가장 중요했고, 이 능력을 갖춰 태어나는 유전자가 도태되지 않고 살아남았다.
물론 아이를 키우면 이 능력이 얼마나 중요한지는 알게 된다. 아이가 자신이 배고프다는 것을 표현하지 못하면 굶어 죽을 확률이 올라갈 것이고, 대소변을 봐서 찝찝하다고 표현하지 못하면 위생에서 큰 문제가 생길 것이다. 배가 아픈데도 부모에게 도움을 요청하지 못한다면 혼자서 모든 고통을 감내하다가 어찌 될지 모를 일이다. 너무 춥거나 더운 것을 부모가 모른다면 아이는 곧 아플 것이다. 아기가 태어나서 우렁찬 울음소리가 나야 급기야 안도를 할 수 있지 않은가? 때문에 자신의 불편한 상황을 울음으로 알려주는 것은 매우 중요한 기능이다. 인간에게 이 능력은 생존을 위해 먹고 싸는 다음으로 가장 중요하다고도 생각할 수 있다. 다른 어떤 능력보다도 가장 필요한 능력이라고 말이다.
여기서 인간이 참 다르다는 것을 느낀다. 수많은 능력 중 3가지 능력을 선택해야 하는데 그중 하나를 소리 내는 능력으로 가지고 나왔다는 것은, 그 소리를 듣고 반응해 줄 부모의 헌신이 필수적이라는 말이 된다. 다른 야생 동물들은 태어나면서부터 걷고 뛰기도 하며 거의 성인과 비슷하게 발달되어 나오기도 하는데, 인간 아이는 그야말로 약하디 약해서 하루만 방치를 해도 대부분 죽을 정도로 약하게 태어난다. 자기 스스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기 때문에 엄마, 아빠, 혹은 주변 사람에게 크게 소리를 지르는 것 밖에 할 수 없는 것이다. 그리고 많은 부모는 자신의 많은 것을 포기하더라도 아이를 우선적으로 지키려 한다. 아이에게 헌신적인 부모가 있기에, 다른 모든 좋은 능력을 포기하고 소리 내는 능력을 선택한 종이 살아남아 이렇게 퍼져서 지구의 지배자인 것처럼 으스대며 살 수 있게 되었다. 반대로 말하면, 아이에게 심하게 헌신적인 부모의 유전자가 없다면 인간은 멸종할 것이라는 이야기다.
생각해 보면 부모의 헌신이 전제되어 있다면 다른 어떤 종족의 능력보다 생존에 유리하다는 생각도 든다. 어린 새끼가 빨리 뛰는 능력, 잘 보는 능력, 잘 듣는 능력이 있다 한들 다른 동물에게 잡혀 먹힐 가능성이 조금 줄어들 뿐이지만, 부모 집사의 헌신적인 노력만 전제되어 있다 하면, 자신이 처해있는 상황을 여러 가지 소리로 표현하며 요구하는 것만큼 효율적인 수단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아기는 부모를 믿고 자신에게 감지된 위험을 모두 표출함으로써 생존한다.
사회적으로 맘충이니 하며, 아이의 비상식적인 행위를 통제하지 않고, 오히려 장려하는 어머니를 비난하는 분위기가 있다. 당연히 잘못되었다. 아이가 비상식적인 행동을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부모는 공공장소에서는 그 행동을 통제하려 해야 한다. 통제가 잘 안 될 수는 있지만, 통제하는 시늉이라고 해야 하고, 그것이 아이가 더 바르게 잘 자라는 방법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 어머니의 마음이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은 아니다. 헌신의 마음이 너무 커지다 보면 도가 지나치게 될 수 있다. 어느 사회, 어느 집단이나 도가 지나친 사람은 있기 마련이다. 누가 봐도 심한 진정한 ‘맘충’이 있을 것이고, 대체적으로 그런 심한 사람의 사례가 여기저기서 화제가 되는 것 같다. 하지만 그렇다고 어머니 집단 전체를 싸잡아서 비난하는 것은 좀 자제했으면 하는 생각이다. 당연히 조심해야겠지만, 아이가 조금만 민폐를 끼치는 것 같아도 어머니가 비난이 두려워 죄인처럼 전전긍긍하는 분위기는 아니었으면 좋겠다. 조금 잘못되어 보여도 약간은 더 너그러울 수 있었으면 좋겠다. 우리는 극도로 헌신적인 부모로 살도록 진화를 해왔고, 그런 부모가 없다면 멸종될 존재이기 때문이다.
저는 집에서 육아 전담도 아닌 서포터라 할 수 있으며, 글의 내용은 과학적으로 전혀 검증이 되지 않은 사견입니다. 아이를 관찰하며 드는 갖가지 상념을 여과 없이 적은 일기를 공개한 것뿐이니 오해 없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