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0 오래 사는 방법
요즘 잘 나가는 웹소설들의 필수 코드로 회빙환이라는 말이 있다고 합니다. "회귀, 빙의, 환생"의 줄임말로, 거의 웹소설의 기본 공식이라 불리더군요. 지금의 힘든 삶을 회귀, 빙의, 환생의 방식으로 벗어나서 멋지게 사는 주인공에 빙의해서 소설을 읽게 만듦으로써 카타르시스를 주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냉정하게 생각하면 내가 몇백 년 전으로 돌아간다고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습니다. 미래는 엄청난 문명을 이루었다고 설명할 수는 있겠지만 누구도 믿지 않을 것입니다. 모든 사람들이 믿는다 해도 그다지 달라지지 않습니다. 우리가 일상에서 흔히 쓰는 어떤 물건도 나는 만들어낼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죠. 지금 자판을 치고 있는 이 컴퓨터와 사람들의 생활필수품이 된 이 핸드폰 같은 복잡한 기술은 당연히 무리고, 당장 내 바로 옆에 있는 조명, 아니 하다못해 의자조차도 그 시대 사람보다 잘 만들지는 못할 것입니다. 복잡한 기술은 지구상의 누구도 모든 기술을 알지 못함에도 우리는 마법 같은 결과물을 만들어내고 일상에서 신기한 감정조차 느끼지 못하고 사용하고 있습니다.
지구상에 인류가 대략 2~3백만 년 전에 출현했다고 하지만, 뉴턴으로부터 시작된 과학의 역사는 아직 400년이 채 되지 않았습니다. 그 짧은 시간에 과학은 놀랍도록 발전했고, 지금도 발전하고 있습니다. 굳이 돈이 되지 않은 순수과학, 기초과학에 많은 투자가 가능한 이유는 삶의 의미를 찾고 싶은, 자신을 알고 싶은 인간의 본능적인 욕망 때문일 것입니다. 기초과학의 발전이 실제로 기술의 발전으로 이루어졌다는 이유를 주로 내세우고 상당 부분 사실이기도 하지만, 사실 이런 작은 확률에 큰돈을 쏟아붓는 것을 용인할 정도로 인간은 멀리 보지 않습니다. 물론 이런 욕망은 생존 본능에 앞서지는 않습니다. 때문에 기초과학은 주로 안정적으로 발전한 먹고살만한 나라에서 많은 투자가 이루어집니다.
인간의 호기심은 짧은 시간 사이에 놀랍도록 과학을 발전시켰고, 그 과학은 그대로 기술로 전이되어 역사상 가장 풍요로운 세상을 만들어냈습니다. 과거 수백만 년 동안 이루지 못한 발전을 과학이 시작된 지 400년이 되지 않은 기간에 이룬 건 정말 놀랍습니다. 다른 모든 분야는 진보와 후퇴를 반복하는 경우가 많고, 발전했다고 생각하기 애매한 분야도 많지만 과학만큼은 아주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눈에 확연히 보일 정도의 진보를 이룩하였습니다.
이는 과학이 가지고 있는 엄밀한 방식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수학을 제외하면 가장 엄밀한 검증 체계를 가진 과학의 큰 장점은 인간의 감정이 배제되어 있다는 점에 있습니다. 아인슈타인은 인류 역사를 통틀어 가장 위대한 이론을 만들어낸 대과학자지만, 죽을 때까지 못마땅해했던 양자역학의 발전을 두고 볼 수밖에 없었습니다. 과학이 아닌 다른 분야였다면 거장의 무게에 눌려 아인슈타인이 죽을 때까지 양자 역학은 태동조차 하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아인슈타인 역시 인간다운 감정으로 양자역학을 누르려고 하기도 했지만, 결국 논리적, 수학적 반박에 실패를 하였기에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습니다. 애송이 과학자라도 누구도 반박하지 못할 논문을 낸다면 인정을 받는 받게 되는 것이 과학이고, 최고의 과학자라도 실험이나 이론으로 반박이 되면 인정받지 못하는 분야가 과학입니다. 또한 더 많은 반박을 방어해 낼수록 더 진리에 가까운 이론으로 인정을 받게 됩니다. 과학 역시 인간의 일인지라 감정이 개입하여 대단한 발견이 묻히거나, 권위에 따라 틀린 발견이 인정받는 경우가 없지는 않았으나, 다른 분야에 비하면 극도로 적은 것이 사실입니다. 이렇게 논리를 기반으로 끊임없이 도전받으며 쌓아 올려진 과학은 짧은 시간에 극도로 발전하여, 지금 개인은 누구도 모든 과학을 이해하지 못할 정도로 복잡한 발전을 이루어 냈습니다.
감정은 삶의 의미를 만들어내 줍니다. 모든 인간이 철저히 이성적이면 지금 당장 죽는 것이 가장 현명한 선택이라는 결말에 이를지도 모르겠습니다. 인간의 강한 생존 본능에 감정이 얹어져 수많은 삶의 의미를 만들어냈고, 이는 살아가데 반드시 필요합니다. 하지만 인간의 생존 본능은 당장 눈앞의 생존만을 추구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인류가 많은 사회적 결정 분야에서 과학과 비슷하게 감정을 배제하고 이성을 바탕으로 발전시켜 나간다면 훨씬 더 합리적이고 오래 생존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들 수 있을 것입니다.
현재 전 세계 대부분의 국가는 민주주의 제도를 채택하고 있습니다. 과거에 비해 각자의 표현의 자유가 늘어났고 기술의 발달로 소통의 채널도 크게 늘어났습니다. 그럼에도 지금의 분위기가 인류의 존속을 연장하는 방향인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생깁니다. 현재의 사회는 기존의 제도에 대해 제대로 학습되지 않은 사람들에 의해 개개인의 삶에 큰 영향을 주는 결정이 이루어집니다. 다수결은 많은 사람들이 동의한다는 것뿐이지만, 이를 마치 가장 옳은 결정이라고 생각하는 착각을 만들어냅니다. 심지어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복잡한 분야까지도 말입니다. 또한 감정에 좌우되는 사람들은 분위기에 휩쓸리기 쉽기에 인류의 종속에 유리하지 않은 결정을 내리기 쉽습니다. 찰리 채플린의 영화 속 대사 "이성이 다스리는 세계, 과학의 발전이 모두에게 행복을 주는 세계"는 먼 이야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