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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1살 일기 26화

특이점에 다다르다

11주 만의 만남

by 평범한 직장인

2.5개월 만에 두 번째 휴가를 나와 아기를 첫 느낌은 성장이 더뎌졌다는 것이었다. 키가 조금 컸는지는 몰라도 이전처럼 급격히 자라지는 않고 있고, 계속 변하던 얼굴도 자리를 잡아 이제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할 수 있는 단어가 조금 늘었을 뿐 아직도 말을 못 하기 때문에 더 변화를 느끼기 어렵기도 하다. 하지만 2주간 같이 지내고 나니 확실히 알 수 있었다. 하드웨어와는 다르게 이 녀석의 소프트웨어는 급격히 성장 중이고, 특이점에 다다르고 있다는 것을.




특이점 이론은 유명한 미래학자이자 발명가인 커즈와일이 만들어낸 개념으로, 기술의 발전이 기하급수적으로 진행되기 때문에, 특이점을 지나면 예측하기 어려울 정도로 빠르게 성장한다는 이론이다. 아기의 하드웨어의 성장은 초반에 급속히 진행되다 점점 꺾이는 그래프를 보이는 반면, 소프트웨어의 성장은 어느 순간을 기점으로 급격하게 진행한다.


변화는 2주라는 짧은 기간 중에도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었다. 이제 몇 가지 단어를 말할 수 있게 된 아기는 오늘도 신나게 "아니야"를 연발한다. 소위 아니야 병이라는 말을 실감한 것이 또래 아기가 여기저기 있는 방에 들어가자 온 사방에서 "아니야"가 들렸을 때였다. 그간 부모의 케어가 답답했음에도 말 못 하던 아기들은 "아니야"를 말할 수 있게 되면서 얼마나 신날까 싶다. 오늘은 갑자기 "나"라는 단어를 생각하는 듯하더니 "나 아니야"라고 말을 했다. 자기가 말해놓고 뿌듯한지 수십 번 "나 아니야"를 남발하기 시작하였다. 이 일을 계기로 "엄마 똥", "아빠 아니야" 등등 연결된 단어를 점점 말하기 시작했다.


할 줄 아는 말에 비해 알아듣는 말은 놀라울 정도로 늘어났다. 언어 공부는 리스닝이 먼저인가 보다. 이미 부모가 하는 대부분의 말은 알아듣고 행동을 한다. 가끔 복잡한 문장에 대해서는 잘못 짚기도 하지만, 아기는 언제나 귀를 쫑긋 세우고 말을 듣고 이해하고 행동한다. 때문에 심부름을 시키면 정말 열심히 하는데, 그 어설픈 모습은 정말 귀엽기 짝이 없다. 생각도 자라서 벌써 좋아하는 여자애도 있는 눈치다.




지난 3개월간 자신의 몸을 훨씬 더 잘 다루게 되었다. 점프도 할 줄 알게 되고, 이제 걷고 뛰는데 넘어질 걱정은 거의 없어졌다. 덕분에 놀아줄 때 눈을 뗄 수 없던 시절에 비해서는 다소 느슨하게 볼 수 있게 되었다. 계단도 잘 오르내리고 전에는 갖고 놀지 못하던 장난감도 신나게 가지고 놀기 시작했다. 하루하루 똑같은 도전이 모여 어느 순간 폭발하여 발전하는 것을 보면, 꾸준한 일상의 노력이 우리에게도 큰 성장을 줄 것이라는 믿음을 갖게 만든다.


아기를 자주 못 보는 입장에서, 특이점을 지나 성장하는 아기의 성장 속도를 못 따라갈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든다. 이번 휴가 때도 예상치 못한 포인트의 성장에 여러 차례 놀라기도 했다. 여전히 아기는 오랜만에 보는 아빠를 좋아하고, 헤어짐에 격렬히 반항하지만, 그래도 전과는 또 다른 느낌이다. 성장을 꾸준히 지켜보지 못하지만, 3개월에 2주간이라도 온전히 성장을 눈에, 마음에 담을 수 있음에 또 감사하기도 하다. 그리고 열심히 뒤처지지 않고 노력하는 아기에게 박수를 쳐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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