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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1살 일기 25화

위대한 한발 2

걷는 놈 위에 뛰는 놈

by 평범한 직장인
내 세대면 대부분 포레스트 검프 영화를 봤을 것이다. 많은 장면 중에서도 불편한 다리를 가지고 있던 검프가 갑자기 뛰면서 보조기가 부서지는 장면은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아기가 고덕천을 걸어가다 갑자기 어설픈 자세로 넘어질 듯 뛰는 모습을 보면서 그 장면이 스쳐 지나갔다. 그때 검프가 느낀 해방감을 아기가 그대로 느꼈음을 표정에서 분명히 알 수 있었다.


이 녀석은 나를 닮아 상당히 조심성이 많다. 나도 숨기고 살고 있지만 상당히 겁이 많은 편인데, 그 유전자를 그대로 물려받은 듯하다. 물건이 있어도 확 만지지 않고 조심스럽게 만진다. 덕분에 다른 남자아이들에 비해 사고를 치는 빈도는 훨씬 좋다. 하지만 너무 소극적 성격이 되지 않을까 싶은 걱정이 들기도 한다. 특히 육체적 발달이 느리지나 않을까 싶은 걱정이 가장 크다. 그러나 기우였다. 때가 되니 다 한다.


조심성이 많다고 호기심이 적은 것은 아니다. 모든 것에 호기심이 많아 늘 주의 깊게 관찰하다 슬쩍해 보고는 괜찮다는 것이 확인되면 점차 과감해지는 성격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제 점점 만만해 보이는 것들이 많아지는 시점인 것 같다. 이런 때 새로운 경험은 매우 중요한 것 같다. 이런 시기에 호텔에서의 경험은 참 뜻깊었다.




호텔을 꽤 많이 다녀보고, 지금도 파견 중이라 호텔에 살고 있지만 호텔이 이렇게 아기에게 최적화된 공간이라는 걸 처음 느꼈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아기의 행동에 다른 장소에서는 눈총을 받기 쉽지만 호텔은 상당히 많은 부분 허용이 된다. 뿐만 아니라 아기가 즐길 수 있는 수영장, 정원이 구비되어 있고, 이번에 간 제주신라의 경우 캠핑은 물론 토끼에게 먹이를 주는 프로그램까지 마련되어 있었다. 아기는 난생처음 겪는 새로운 경험 앞에서 살짝 망설이더니 점점 빠져들어 돈이 아깝다는 생각이 들지 않게 충분히 즐기기 시작하였다. 난생처음 해본 수영은 구명조끼와 튜브를 끼고 천천히 들어갔지만, 몇 번 들어가 보더니 과감하게 장비도 없이 들어가 버리려고 할 정도로 좋아한다. 이후 어린이집에서 물놀이를 시작했는데, 선생님이 물개인 줄 알았다 할 정도로 물을 좋아하는 녀석이 되었다. 캠핑장에서는 처음 보는 불이 신기한지 한참 불멍을 즐기기도 했다. 여행 전과 후 모습은 비슷하지만 확연하게 성장했다는 느낌이 든다. 이러니 안 데리고 다닐 수가 없다.




나의 첫 번째 휴가가 끝나갈 무렵, 하원을 시키면서 고덕천을 즐기고 있었다. 요즘 러닝이 인기라더니 우리나라에도 천을 따라 달리는 사람을 항상 볼 수 있다. 평소와 다를 바 없이 달리는 사람들이 있었고, 평소처럼 달리다가 아기에게 인사를 해주는 사람들도 많았다. 하지만 아기의 눈빛은 평소와 달랐다. 갑자기 아기는 결심한 듯 어설픈 자세로 한발, 한 발을 점점 더 빨리 내딛기 시작했다. 손을 어찌해야 할지 모르겠는지 위로 들며 이상한 자세가 되었지만 아기는 포기하지 않았다. 계속해서 발을 더 빨리 움직이더니 급기야 뛰기 시작하였다. 가속도에 불안해 보여도 아기는 넘어질만하면 한 발을 잘 내디뎌 완전히 뛴다. 멈추지 않는다. 뒷모습만 봐도 환희를 느낄 수 있다. 감동이 몰려온다. 이렇게 또 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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