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선생님
사실 아기가 생기기 전까지 내가 아기를 좋아한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거의 없다. 지나가는 아기를 보아도 크게 감흥이 없었고, 가끔 아기가 너무 귀여워 보여도 괜히 내가 폐를 끼칠까 봐 모르는 척 지나가곤 했었다. 작고 귀여운 걸 좋아하는 습성은 가지고 있어서 키우던 강아지도 너무 좋아했던 만큼, 아기가 생기면 꽤나 귀여워하지 않을까 어렴풋이 생각하기는 했지만, 이 정도로 아기를 늘 사랑스러운 눈으로 바라보게 될 줄은 몰랐다.
하지만 이번에는 또 다르다. 아빠 선생님을 해야 한다. 무려 열두 명의 아기들을 봐야 한다. 어린이집 선생님들도 물론 같이 있고, 시간도 30분뿐이지만 우리 아기 같은 아기 열두 명이라니... 두려움과 기대감이 공존한다.
아기는 벌써 아빠 선생님이 오는 줄 알고 있다. 그간 금요일마다 다른 부모 선생님들이 왔었기에 아빠도 왔으면 했나 보다. 아빠를 자주 보지 못해 다른 친구들 아빠가 하원을 위해 어린이집에 오면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다는데, 드디어 아기에게도 아빠를 내세울 기회가 온 것이다. 나는 아기의 기대감응 충족시켜주고 싶다 보니 더 긴장이 되었다.
예정 시간보다 일찍 도착한 나는 바로 앞치마를 매고 아기들이 있는 공간으로 들어갔다. 아기들은 아빠 선생님이 오는 걸 환영하기 위해선지 한 줄로 쭈르륵 너무나도 귀엽게 앉아 있었다. 우리 아기를 찾으니 이 녀석만 무표정이다. 선생님이 소개하는 동안도. 아니, 얼어있다는 말이 맞을 것이다. 아기도 긴장이 되는 것 같다. 아빠가 뭔 실수라도 하지 않을까라고 생각하는 걸까. 그 와중에 놀이가 시작되었다. 아기가 유일하게 부를 수 있는 "바나나차차"를 선생님이 틀어주었고 아기들은 춤을 추기 시작하였다. 평소에도 바나나차차가 나오면 춤을 추던 아기지만 여전히 얼어서 가만히 서있다. 그 와중에 아기들은 나에게 관심을 보이며 춤과 함께 장난감을 하나씩 주기 시작하였고 나는 정신없이 장난감을 받으며 "이건 뭐야?", "우와, 그런 거구나"를 연발하였다.
한차례 폭풍이 휩쓸고 난 다음 약간의 휴지기가 생기자 비로소 아기의 얼굴에는 웃음꽃이 피어났다. 평소처럼 아빠 손을 잡아 끄는 모습에는 "우리 아빠다!"라고 외치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책을 읽어달라 한다. 책을 잡으니 둘셋 아기들이 몰려온다. 책을 읽어주기 시작하자 여기저기서 말들이 많다. 어린이집 아기들 대부분은 우리 아기보다 개월수가 빠르기 때문에 말을 잘한다. 특히 여자 아기들은 말이 상당히 또렷하고 정확했다. 여기저기 들어오는 말들을 다 받아주며 책 한 권을 다 읽자 다른 책을 읽어달라 한다. 아기들의 숫자도 늘어났다. 그리고 그 모습을 우리 아기는 약간 뒤로 빠져 옆으로 누운 채 흐뭇하게 미소를 짓고 있다. "우리 아빠, 제법 잘하고 있구먼."이라 말하는 듯하다.
몰려온 아기들의 초롱초롱한 눈동자는 잊을 수가 없다. 밤에도 생각나고 길을 걷다가도 생각난다. 평소 아기 친구들의 사진을 늘 봐왔고, 실물의 그들은 사진과 전혀 다를 바가 없었지만, 직접 경험한 그들의 모습은 너무나도 예쁘고 사랑스럽고 감동적이기까지 했다. 괜한 걱정이었다. 경계심 없는 아기들은 나를 배려하며 열심히 놀았고 정신이 없었지만 덕분에 나는 처음 제대로 힐링이라는 것을 경험해 봤다. 자랑스러워하는 듯한 표정의 아기의 손을 붙잡고 나는 어린이집을 나왔다. 진짜 아빠가 된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