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3 [영화] 확고한 원칙, 그것이 전부는 아니다

타짜

by 평범한 직장인

* 내용에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저는 영알못에 가깝지만 타짜는 제게 완벽한 영화란 무엇인지를 보여주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보통 만화를 원작으로 하는 영화의 경우 원작의 컨셉만 따고 전혀 다른 영화를 만드는 경우가 많습니다. 반면 이웃나라 일본의 경우 거의 원작을 충실히 재현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원작과 다른 영화를 만드는 경우 원작 만화 독자의 기대를 무너뜨리게 돼서 비난받게 됩니다. 분명 많은 사람들이 원작을 좋아했던 장면과 이유가 있음에도 그를 무시해버렸기 때문이겠죠. 하지만 원작과 똑같이 구현하는 경우 만화의 무리한 설정상 조금 우스꽝스러운 연출이 나올 수 있고, 때때로 긴 원작 스토리를 너무 갈아 넣어서 이해하기 힘든 영화가 되기도 합니다.


타짜는 만화 원작과 전체 스토리는 흡사하나 전혀 다른 짜임새를 보여주고 있고, 그럼에도 그 완성도가 너무 높았습니다. 사건 하나하나의 개연성이 충분히 납득이 가고, 인물들 사이의 관계가 절묘했습니다. 감히 원작을 뛰어넘는 작품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연출된 색감과 의미도 탁월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모든 배우들의 연기가 완벽하다고 표현할 수 있을 만큼 대단했습니다. 짧은 등장이지만 가장 강렬한 인상을 남긴 아귀, 유해진은 그 자체로 고광렬이었고, 김혜수의 정마담 연기는 말할 것도 없었습니다. 심지어 조연급인 너구리의 말투도 유행이 될 정도였죠. 그리고 신인에 가까움에도 불구하고 그런 수많은 연기 고수들 사이에서 전혀 밀리지 않고 빛을 발한 조승우의 고니 연기는 압권이었습니다.




영화를 보는 내내 지루하지 않게 긴장감을 주면서도 중간중간 유머까지도 적절하였습니다. 게다가 거의 모든 대사가 명언이라 할 수 있을 정도로 수많은 명언을 양산하였습니다. 영화를 잘 모르는 저에게 영화를 만들어보라고 한다면 아마도 완벽한 레퍼런스인 타짜를 따라 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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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봉한 지 한참 지나서야 타짜의 캐릭터인 곽철용이 주목을 받는 것도 영화의 완벽한 설정과 대사 때문인 것 같습니다. 개인적으로 타짜 2, 3도 나름 재미있게는 봤지만 확실히 타짜 1과 비교를 하기에는 무리가 있고, 이에 많은 사람들이 타짜 1에 향수를 느끼고 곽철용이라는 캐릭터를 끌어낸 것 같습니다. 모든 배우의 명대사에서 많은 영향을 받았지만, 여기서는 상대적으로 덜 조명된 평경장의 대사를 생각해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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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경장은 고니의 스승으로 세계관 내 최강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고니에게 계속해서 타짜의 길을 포기할 것을 권하지만 결국은 받아들이게 됩니다. 사실 야수성을 강조하며 이유 없이 강해 보이는 사람을 패보라고 했을 때 맞으면서도 포기하지 않고 결국 달성을 했을 때, 이미 포기시키기는 글렀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아니 첫 만남에서 "갈 때까지 간 놈"이라고 말했을 때 이미 운명을 알고 있는 듯합니다. 평경장이 최고일 수 있었던 것에 기술과 혼을 담은 구라도 있었겠지만, 확고한 원칙에서 나오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첫 번째 원칙, 확실하지 않으면 승부를 걸지 마라

평경장이 직접 첫 번째 원칙이라고 말한 부분은 편집이 되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고니가 아귀와의 대결에서 승리한 후 강렬하게 이 대사를 말하죠. 이는 평소 제 생각과 일치합니다. 겁이 없는 사람이 용기 있는 사람이 아닙니다. 항상 생각하고 계산해서 승리 확률을 높여놓고, 그럼에도 무섭지만 벌벌 떨면서 승부를 던지는 것이 용기라고 생각합니다. 중고등학교 시절 공부를 열심히 한 것도 다른 어떤 것도 그때부터 한다고 승산이 커 보이지 않았고, 공부가 가장 승산이 있어 보였기에 하기 싫었지만 집중했습니다. 사업을 하지 않고 직장에 들어가게 된 것도 여러 사업 아이템을 생각해보고 사업에 필요한 준비를 해보았지만, 제 성격과 능력으로는 승산이 높지 않다고 판단하고 취직에 승부를 걸었습니다. 직장을 다니다가 주변의 권유에 귀가 팔랑해서 주식, 비트코인에 손을 댓다가 큰 손실을 겪는 사람들을 많이 보면서 첫 번째 원칙은 너무 당연한 말 같지만 생각보다 지키기 어려운 원칙이라고 생각합니다.


두 번째 원칙, 이 세상에 안전한 도박판은 없어

서로 끊임없이 뒤통수를 치는 영화 내용을 보면 너무나도 당연한 원칙입니다. 그런데 회사를 자신의 안전한 도박판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가끔 봅니다. 그런 사람들은 소위 회사밖에 모르는 사람이 되기 쉬우며, 주변 친구들도 거의 회사 사람들뿐입니다. 회사가 전부이기 때문에 크고 작은 기행을 저지르기도 하고, 야근 시간이 늘어나는 것에 개의치 않고, 일이 없어도 굳이 회사에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이런 사람과 같이 있는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상당한 고역을 겪게 됩니다. 자신의 상사일 경우 정말 지옥문이 열리게 됩니다. 그런데 이렇게 회사만 알던 사람이 회사를 잘리게 될 경우 "어떻게 나에게 이럴 수 있어"라며 상심을 하게 됩니다.


개인적으로 이런 사람은 여러 직원들에게 피해를 주기도 하지만, 회사에도 득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각종 인간적인 문제를 회사에서 다 봐줘야 하며, 회사에서 자르기도 껄끄럽고 어렵습니다. 지금 시대는 차라리 회사와의 계약 관계를 명확하게 파악하고 자신의 업무에 충실한 사람이 더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과거와 같이 열심히 충성을 다하여 소위 몸으로 떼우며 산업을 발전시키던 시대에서 이제는 좀 더 지식산업, 고부가가치 산업 업종이 많아졌으니 말입니다. 지금 그리고 제 세대는 이런 두 세대 사이에 껴있는 세대라 나뉘는 것 같습니다. 회사 형님들의 끈끈한 분위기에 빠져 사는 사람들도 있고, 후배들과 함께 형님들을 욕하는 사람들도 있는 것 같습니다. 저는 윗분들의 말에 반항하는 스타일이 되지는 못하지만, 회사는 언제든 나를 자를 수 있고, 절대 안전한 곳이 아니라고 생각하며 요즘 세대에 좀 더 공감하는 스타일입니다.


세 번째 원칙, 욕심부리지 마라

어릴 때 바둑을 배운 적이 있었는데, 상당히 재미있었습니다. 워낙 암기력이 떨어져 기보나 사활을 못 외우다 보니 한계가 보였고, 같이 둘 사람이 없다 보니 점점 멀어지게 되었습니다. 바둑에 인생을 비유하는 경우를 많이 보는데, 바로 세 번째 원칙이 가장 잘 드러나기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바둑은 양쪽에 공평한 기회가 있고, 내가 생각하는 것은 다른 사람도 생각할 수 있습니다. 특히 초심자일 때는 상대의 대마를 금방 잡을 수 있을 것 같아 신다게 몰이를 하다 보면 어느새 내 대마가 잡혀 있습니다. 사기를 당하는 대부분의 경우 너무나도 그럴듯한 좋은 조건의 제안에 욕심이 생겼기 때문입니다. "세상에 공짜 점심은 없다"는 말처럼 내 객관적인 판단을 넘는 이익에 대해서는 항상 경계해야 할 것입니다.


마지막 원칙, 이 바닥엔 영원한 친구도 원수도 없어

"이 바닥"이란 말을 "돈"이라고 바꿔도 될 것 같습니다. 제가 성인이 되면서 제 주위 친구의 할머니, 할아버지가 돌아가시는 경우를 많이 보는데, 그 경우 생각보다 많은 경우에 친구 부모님들의 형제, 자매 사이에 재산 분할 다툼이 많다는 것에 놀랐습니다. 당연히 우애 좋아 보이는 사람들 중에도 꽤 많은 경우, 부모의 재산이 그렇게 많은 것도 아닌데 원수가 되는 경우를 많이 보고 돈의 힘이 무섭다는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이렇게 완벽한 원칙을 가지고 생활을 한 평경장도 아이러니하게도 결국 생각지도 못한 사람에게 살해당하고 마는 장면에서 가장 큰 교훈을 얻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기본적으로 원칙주의자이지만 항상 상황에 따라 유연성을 가지고 닫혀있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편입니다.




타짜의 원작 만화는 총 4부로 구성되어 있고, 아직 영화로 나오지 않은 한 작품은 벨제붑을 소재로 한 카지노 이야기입니다. 2, 3편이 비록 혹평을 받았지만, 그럼에도 4편이 나와서 볼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물론 이왕이면 15년 전 나온 1편을 뛰어넘는 영화가 나온다면 더 좋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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