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태지와 아이들
서태지와 아이들은 이미 수없이 많은 매체에서 다룬 음악사적으로 가장 유명한 그룹 중 하나입니다. 음악에 빠져 살기 시작한 중학교 시절이 그들의 활동과 겹쳤기 때문에 당연히 저의 모든 감성에 깊은 영향을 받았습니다. 서태지와 아이들이 활동한 4년간의 기억은 파격적이면서도 마치 짜 놓은 듯한 완벽함이었습니다.
서태지와 아이들이 상투적인 표현으로 "혜성 같은" 데뷔를 해서 대박을 치고 난 후 갑자기 잠적을 했습니다. 단순히 다음 앨범을 준비하기 위한 휴식기 정도가 아니라 완전히 이 세상에 없어진 것처럼 잠적을 해버렸습니다. 2집부터는 그런 패턴에 익숙해졌지만, 1집 때는 정말 충격적이었습니다. 당시 대중가수 중에 이런 식으로 아예 활동을 접는 경우는 없었고, 요즘 아이돌들 역시 휴식기에도 여러 가지 활동을 하거나, 여기저기 다니면서 휴식을 하지 이런 식으로 아예 사라져 버리는 경우는 없습니다. 정말 잠적 기간 동안 어떤 매스컴에도 출연하지 않고, 어떤 파파라치에게도 포착되지 않고 완벽한 잠적을 해버렸고, 이는 다음 앨범 출시 소식이 들릴 때 엄청난 기대감을 가지게 만들었습니다.
앨범 곡 수도 파격적이었습니다. 당시는 싱글의 개념이 거의 없었고, 발매되는 앨범은 모두 정규 앨범이었는데, 10곡을 채우는 것이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서태자와 아이들 앨범에서 10곡을 꽉 채운 앨범은 거의 없습니다. 그나마 10곡도 안 되는 곡 중에 Intro나 경음악을 제외하면, 실질적인 곡은 몇 개 없었습니다. 1집도 짧은 Intro인 Yo! Taiji, 난 알아요 영어 버전인 Blind Love, Outro인 Missing을 제외하면 7곡이며, 2집은 총 8곡 중에 Intro와 우리들만의 추억 MR Version을 빼면 6곡만 있었습니다. 3집 역시 9곡 중 Intro와 발해를 꿈꾸며 MR Version을 제외하면 7곡, 마지막 앨범인 4집은 10곡이지만, Intro, 시대유감, Good bye, 이너비리스너비를 빼면 6곡에 불과합니다. 곡 숫자가 적은 만큼, 각 곡마다 의미가 부여돼서 서태지와 아이들 시대에 살던 사람은 자연스럽게 앨범의 대부분의 곡을 기억합니다.
특히 마지막 앨범은 완벽한 마무리가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것 같았습니다. 은퇴 당시 많은 사람들이 울고 난리가 났다고 했는데, 저는 정말 멋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앨범에 경음악으로 실린 Good bye에 가사를 붙여 공개하며, 미리 준비된 은퇴 기자회견을 하고 보여주는 것은 최고의 엔터테인먼트라고 생각했습니다. 게다가 이후 사전 심의에 걸려 경음악으로 공개한 시대유감으로 인해 사전 심의 제도가 없어지는 것을 보고, 은퇴 후까지도 전설이 계속되는 느낌이었습니다. 마치 죽은 공명이 산 중달을 잡는다는 고사처럼 은퇴한 서태지의 영향력은 계속되고 있다는 생각도 듭니다. 이때 심의 제도가 없어지지 않았다면 지금의 BTS가 탄생하기 힘들었을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음악 역시 파격의 연속이었습니다. 1집부터 4집까지 모든 앨범이 처음 공개되어 들어봤을 때 저의 반응은 "이게 뭐지?"였습니다. 매 앨범마다 기존의 인기 있었던 스타일을 고수한 것이 아니라 전혀 새로운 스타일의 음악을 들고 왔기 때문입니다. 표절이니 미국의 유행을 가져왔다느니 하는 말도 많았지만, 자신을 정상에 오르게 만들어준 기존의 스타일을 과감히 버리고 새로운 스타일로 도전하는 모습과, 그럼에도 실패하지 않고 항상 성공하는 모습에 정말 인간이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습니다. 마치 치밀한 계획을 짜 놓고 모든 일이 계획대로 흘러가는 느낌이었습니다.
또한 활동을 시작하고 난 후 매주 각 방송사 음악 프로그램에 1위 후보로 출연을 하면서, 거의 매주 편곡을 바꿔서 나왔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이는 서태지가 거의 모든 곡을 작곡/작사/편곡을 하기에 가능한 일인데, 그 바쁜 활동 가운데서도 매주 편곡을 바꾸는 것은 정말 대단하다고 말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게다가 그 편곡한 곡을 앨범으로 내면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완성도가 낮다는 이유로 별도의 발매는 하지 않았습니다. 상업적으로도 뛰어나지만 음악적인 고집 역시 강하였고, 이런 두 마리의 토끼를 잡은 드문 아티스트라고 개인적으로 평가합니다.
서태지와 아이들이 당시 가장 인기 있었던 예능인 이경규의 몰래카메라에 나왔을 때의 기억이 강렬합니다. 야외에서 특이한 뮤직비디오를 찍는다고 하고 우스꽝스러운 옷과 탈을 주며 10시간 넘게 춤을 시켰음에도 누구도 불만 없이 하고 있었습니다. 나중에 힘들지 않았냐고 물어보니 "늘 그 정도 연습은 하기 때문에"라는 담담한 답변을 하는 것을 보고 저런 완벽 뒤에 숨어 있는 노력을 보게 되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성공한 사람들의 밝은 모습만 보고 부러워하게 됩니다. 하지만 그들이 수면 아래에서 쳤을 수많은 발버둥은 과소평가 하기 일쑤입니다. 당연히 노력만으로 성공을 할 수는 없지만, 성공한 사람들을 시기, 질투하고 있다면 이러한 생각을 해보는 것도 필요해 보입니다. 생각해보니 이 표현을 더 멋지게 한 만화가 생각이 나네요. "노력한 사람이 반드시 성공한다고는 볼 수 없다. 그러나 성공한 사람은 모두 예외 없이 노력했다는 걸 명심해!"라는 명대사를 남긴 만화 더 파이팅에 관장님의 말이 더 와닫는 것 같습니다.
서태지와 아이들의 파격적이고 완벽한 행보에 자극받아 항상 저도 좀 더 새로운 것과 다르게 생각하는 것을 추구해 왔던 것 같습니다. 분명히 제 인생에 많은 영향을 받은 것이 사실입니다. 물론 결과적으로 저는 평범한 능력에 노력도 적게 했기 때문에 많은 실패를 겪었지만, 그때 받은 자극은 아직도 저의 삶에 영향을 주고 있습니다.
서태지와 아이들의 대표곡은 많이 알려져서 말할 필요가 없을 것 같고, 각 앨범에 있는 사람들이 잘 모를만한 곡을 추천합니다.
1집 - 이제는, '95 Taijiboys Concert 다른 하늘이 열리고 - 너에게 (이제는 너에게)
조용한 분위기의 "이제는"을 좋아하는데, 2집 이후 95년도 콘서트에서 부른 "이제는 너에게"가 압권입니다. 응답하라에 주제곡으로 나온 유명한 "너에게"와 "이제는"을 절묘하게 섞어서 새롭지만 새롭지 않은 곡을 탄생시켰습니다. 두 곡을 모두 안다면 정말 놀라운 콜라보라는 생각이 들 것입니다.
2집 - 수시아
힙합 분위기의 2집 앨범에서 상당히 이질적인 테크노 스타일의 곡입니다. 당시에 테크노 장르 자체가 한국에서는 생소했는데 새로운 시도를 하였습니다. 가사가 짧지만 강렬합니다.
3집 - 내 맘이야
후에 슈퍼주니어가 로꾸꺼를 낸 것은 이 노래의 영향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문장을 뒤집고 단어를 뒤집고 음절도 뒤집는 시도를 제가 알기로 처음 했었고, 노래 분위기도 신나서 상당히 좋아했던 곡입니다.
4집 - 1996, 그들이 지구를 지배했을 때
보통 미래를 말할 때는 최소 몇 년에서 몇십 년 후를 이야기하는 것이 보통임에도 불구하고, 바로 다음 해를 제목으로 쓴 노래입니다. 즉, 이미 그 시대가 왔다는 것을 의미하겠죠. 돈의 노예가 된 현대 사회를 비판한 노래이며, 컴백홈에서 쓴 창법을 쓰고 있습니다.
서태지와 아이들이 지금과 같이 인터넷이 발달된 시대에 과거와 똑같은 충격을 줄 만한 음악을 들고 나왔다면 그때만큼 각광받을 수 있었을까를 생각해보면 부정적입니다. 악플러의 집중포화와 잠적한 곳을 찾아내려는 유튜버의 추적과 각종 추측, 각종 표절 시비와 논란 등으로 얼룩지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어쩌면 지금 시대의 서태지와 아이들은 무수한 공격 속에 빛을 보지 못하고 묻혀버렸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사람들은 영웅을 만들기 좋아하는 만큼 영웅의 몰락에 열광하니까요. 소통과 자유가 더 발달되어 모두의 영향력이 더 커지게 되었지만 그것이 오히려 예술가를 자유를 억누르는 상황이 된 것 같아 아쉽습니다. 잘못에 대한 무한한 실드도 문제지만, 지나치게 과도한 몰아가기와 루머의 빠른 확산은 세상을 더욱 답답하게 만들 뿐만 아니라, 파시즘적인 성격도 보이고 있어 우려가 됩니다.
2017년에 서태지 25주년 콘서트를 갔었습니다. Time Traveler라는 부제가 붙은 이번 콘서트는 양현석과 이주노의 빈자리를 BTS가 채워주었고, 솔로 활동 후에는 콘서트에서 서태지와 아이들 시절 곡을 안 부르거나, 불러도 리메이크를 해서 부르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번 콘서트에서는 거의 과거 그대로의 춤을 추고 노래를 불렀습니다. 음악적 완성도와 사운드에 신경을 많이 써서 리메이크 앨범조차 내지 않는 서태지는 서태지와 아이들 시절부터 콘서트 앨범은 자주 내는 편이었습니다. 그만큼 콘서트 사운드에 신경을 많이 쓰고, 심지어 준 정규앨범인 6집 re-recording에 뛰어난 음질의 라이브 곡들이 포함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많진 않지만 서태지 콘서트를 포함하여 콘서트를 몇 개 다녀본 제가 감히 평가하기에 25주년 콘서트는 영상, 사운드 그리고 기획에서 혁신적으로 진일보했다고 평가하고 싶을 정도로 대단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서태지의 팬인 부모님과 BTS 팬인 딸이 같이 공연을 보는 보기 드문 이색적인 광경을 보면서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최근에 공개한 9집 마지막 클럽 공연 일겅을 소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