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5 [팟캐스트] 털보, 악마, 돼지, 도사 헌정 글

나는 꼼수다

by 평범한 직장인

지금은 인터넷이 없는 세상을 상상하기 어렵지만, 제가 어렸던 시절에는 인터넷을 상상하기가 어려웠습니다. 제 또래에 비해 어린 시절에 컴퓨터 프로그래밍을 배웠던 저 역시도 이렇게 인터넷이 대중적으로 쓰이게 될 것이라는 상상을 하지는 못했습니다. 초등학교 시절 GW BASIC, C 등의 프로그래밍 언어를 배우면서 컴퓨터의 시대가 올 것이라는 생각은 했었지만, 이후 네트워크의 발전, 특히 스마트 폰의 발전은 저의 예상을 아득히 능가했습니다.




어린 시절에는 영화관, TV, 라디오 이외에는 다른 영상 매체가 없었습니다. 그중 영화관이나 TV는 공부하는 학생 신분에서 많이 보기가 어려웠었고, 때문에 자연스럽게 라디오를 많이 듣게 되었습니다. 당시 유영석 노래를 좋아해서 유영석의 FM 인기가요를 많이 들었고, 동시간대에 유명한 이문세의 별이 빛나는 밤에도 가끔씩 들었습니다. 저희 고등학교에서 별밤 뽐내기에 나가서 가요계로 진출한 동창이 나오는 것을 보고 저도 나가보고 싶었지만 소심한 성격에 생각만 했었네요. 그 전 시간대인 8시는 당연히 이본의 볼륨을 높여요 였습니다. 별밤 DJ가 이적으로 바뀌기도 하고, FM 인기가요는 일주일 동안 7팀의 DJ가 돌아가며 방송을 하기도 했었네요. 놀랍게도 짧은 기간이지만 서태지와 아이들이 그 DJ 그룹에서 진행을 했었던 적도 있었습니다. 그 외에도 수많은 라디오 프로그램을 들으면서 자랐습니다. 생각해보면 공부를 한 건지 라디오를 들은 것인지 모를 정도로 많은 방송을 공부를 하면서 들었는데, 라디오는 외롭고 힘든 학창 시절을 버틸 수 있게 해 준 소중한 매체였습니다.




인터넷이 확산되기 시작한 것이 제 대학 입학 무렵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 이전까지는 도스 창에 atdt 01410을 쳐서 전화선을 이용한 네트워크를 경험했었습니다. 비싼 전화요금을 치러야 했던 시대에서 어느새 무료로, 물론 매월 요금을 내기는 하지만, 인터넷을 이용할 수 있었던 ADSL 라인의 인기는 상상을 초월했습니다. 그리고 그 시대부터 공중파를 대체할 미디어의 탄생을 이야기는 이미 여기저기서 들려오고 있었습니다. 엄격한 규제가 존재하는 기존 매체와는 창의적이고 새로운 콘텐츠가 쏟아질 것이라는 예상을 하면서, 선정성, 욕설, 폭력 등이 규제가 되지 않는 것에 대한 걱정 역시 크게 부각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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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나 다를까 완전 욕설로 무장한 김구라 황봉알의 시사대담이라는 프로를 만들어서 많은 논란을 낳으며 히트를 치기 시작했습니다. 지금의 김구라의 발목을 잡는 원죄이지만, 김구라의 이름을 알릴 수 있었던 작품이기도 하죠. 인터넷 커뮤니티의 발전은 DCinside라는 거대 커뮤니티를 만들기도 했습니다. 지금도 거대한 DC는 당시 거의 모든 잉여들을 끌어모으며 "모든 것은 DC에 있다"는 말이 만들어질 정도였습니다. 모든 것이 혁명적이었지만 가장 혁명적인 미디어의 전환으로는 저에게 큰 임팩트를 준 방송은 역시 팟캐스트의 나는 꼼수다입니다. 제가 본 나는 꼼수다 콘텐츠가 혁명적인 이유를 몇 가지 꼽아 보겠습니다.




첫 번째로 인터넷 방송의 특징을 제대로 활용했다는 점입니다. 김어준 총수는 갑자기 대박을 터트린 것이 아닙니다. 아주 오래전부터 딴지일보라는 일종의 패러디 신문을 발행하여 항상 인터넷 문화와 가까이 지내고 있었습니다. 나꼼수 역시 나는 가수다를 패러디한 것이죠. 딴지일보 이후에도 별로 히트를 치진 못했지만 김어준의 뉴욕 타임즈와 같이 계속 인터넷 방송을 진행하고 있었습니다. 오랜 기간 뚝심 있게 경험을 쌓아온 결과 나는 꼼수다 같은 초대박 콘텐츠가 탄생할 수 있었습니다.


인터넷 방송이기에 언제든 들을 수 있고, 정해진 방송 순서도 없었습니다. 기존의 방송의 경우 방송 시간이 정해져 있고, 당연히 작가가 방송 내에 여러 코너를 마련하여 정해진 틀에 의해 진행되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나는 꼼수다는 개드립이 재미있으면 오랜 시간 편집을 하지 않고 내보내기도 하고, 딴 내용으로 새기도 합니다. 또한 재미가 없으면 다 짤라버리기도 하고, 방송 시간을 채우기 위해 시간을 끄는 일 없이 할 말을 다했으면 짧게 방송을 올리기도 했습니다. 정기 연재를 했지만 특별한 이슈가 있으면 중간에라도 호외 편을 편성합니다. 이런 자유로운 편성은 요즘 유튜브에서 많이 볼 수 있지만, 당시에는 너무나도 생소한 방식이었습니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이러한 방송 형태에서 기존 방송에서 뽑아낼 수 없는 예측할 수 없는 강렬한 재미를 주었습니다.


또한 규제가 없는 점 역시 충분히 활용하여 각종 욕설을 자연스럽게 날렸습니다. 김구라 황봉알의 시사대담은 기상천외한 욕설이 콘텐츠의 메인이었다면, 나는 꼼수다는 충실한 자료에 근거한 이야기를 풀어나가다 열 받는 부분에서 듣는 사람을 대신하여 욕설을 날리는 식으로 사용하였습니다. 욕설을 보조적으로 필요할 때 재미를 위해서만 사용했기 때문에, 영향력 있는 방송으로 성장하고 보수적인 방송 문화에서 욕설이 큰 논란이 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크게 문제 되지 않고 넘어갈 수 있었을 뿐만 아니라, 이후 어느 정도 인터넷 방송 수위의 표준을 제시했다고도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두 번째로 서로 연관 없어 보이는 두 단어, 정치와 재미를 연결시켰습니다. "우리나라 정치인은 정말 정치를 잘해"라고 대다수의 국민들이 말하는 국가는 상당히 드물 것입니다. 정치 세력은 권력이 동반되기 때문에 부패하기가 쉬운데, 부패한 세력은 국민들이 정치에 많은 관심을 가지는 것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때문에 의도적으로 정치 혐오를 양산하기도 하는데, 여러 가지 트집을 잡아서 진흙탕 싸움을 만드는 것은 쉬운 일입니다. 민주화가 이루어져서 타도 대상이 사라진 후에 이런 정치권의 싸움에 골치 아파하고 외면하는 사람들이 많아졌습니다.


나꼼수의 흥행에 핵심은 무엇보다도 디테일 함에도 불구하고 재미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실 재미가 없었다면 아무리 좋은 내용에 인터넷 매체의 장점을 모두 활용한다 해도 흥행을 할 수가 없습니다. 김어준은 여러 가지 능력이 뛰어나지만 흥행성이 없는 인물이었다면 이런 성공이 있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정치는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고 있지만, 재미가 없다는 양면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때문에 가십성 내용만을 단편적으로 보게 되고 혐오를 하게 됩니다. 정치인들이 자극적인 언행과 이상한 어그로만 끄는 이유는 그런 것에만 관심을 가지는 대중이 있기 때문입니다. 관심은 많지만 재미는 없는 디테일한 정치 이야기에 재미를 불어넣는 순간 많은 사람들의 폭발적인 관심을 집중시킬 수 있었습니다. 나꼼수의 방식이나 내용에 대해 비판을 할 수는 있겠지만 이런 영향력과 흥행 성과에 대해서는 이견이 있기가 어렵습니다.




나꼼수가 시작한 것이 2011년이니까 어느덧 10년이 지났습니다. 그들이 헌정 방송을 한 대상인 각하는 나꼼수가 끝나고 난 후에도 끈질기게 물고 늘어져서 결국 현재 감옥에 가게 되었죠. 거대 권력과 그렇게 오랜 기간 싸워서 얻어낸 성과에 박수를 보냅니다. 국가적으로, 그리고 정치적으로 그들은 지금도 계속해서 큰 영향력을 끼치며 콘텐츠를 제작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영향력과는 별개로 개인방송의 시대를 열었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두고 싶습니다. 지금은 백만 유투버 시대라고 하지만, 누구나 방송을 할 수 있다는 생각을 처음 가지게 해 준 것은 나꼼수였다고 생각합니다. 이후 수많은 팟캐스트 방송이 시작되었고, 그 Trend는 현재 유튜브로 옮겨가게 되었습니다. 소극적인 성격에 직접 실행을 하지는 못했지만 개인의 콘텐츠를 플랫폼에 올려보고 싶다는 생각을 처음으로 했었고, 그것이 지금 글을 쓰는 것으로 이어졌다는 점에서 나는 꼼수다는 저의 인생 콘텐츠라 말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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