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빵을 나누는 법보다
고개 숙이는 법을 먼저 가르쳤더라
고개를 숙이고는
가만히
아무것도 듣지 못한 채
그저 입을 다물고는
뚫어져라 바닥만 바라보는 법
그러나 우리는
머리를 드는 법도 배웠더랬다
고개 숙여 손에 쥐여진 빵
그 가장 큰 조각을 굶은 이에게
중간 조각도, 제법 괜찮은 조각도
모두 다 굶던 이에게 주고는
가장 작은 조각을 오래 씹는 법
고개를 당당히 들고는
빵을 나누던 시절
우리는 서로의 등을 떠밀어주며
그렇게 시대의 파도를 견뎠더랬다
이제는 고개를 움츠리고는
세상에 나와야 했던 말과 함께
빵 한 조각이나 씹으며
조용히 회한의 일기를 끄적이는 내게
오늘도 시절의 무게는
역사의 벽이 되어
고개를 자꾸만 떨구게끔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