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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태화 Apr 25. 2021

1. 숨 가쁜 사회, 우리의 갈림길

3) 오늘을 팔아 내일을 사다

 이토록 지나치게 숨 가쁜, 그러나 지나치게 공허한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가장 많이 나타나는 행동 양상은 바로 ‘오늘을 팔아 내일을 사는’ 모습일 것입니다. 


 우리는 흔히들 ‘오늘 놀면 내일 고생한다’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아갑니다. 실제로 이따금 잠시 쉬거나 놀고 싶은 생각이 들 때마다 우리는 우리 스스로 오늘의 휴식이 내일의 독이 되어 우리들의 미래를 암울하게 만들어 갈 것이라며 다독이곤 합니다. 심지어 모처럼의 휴가나 휴식이 내 미래에 닥쳐올 불행의 시작이 될까 두려워서 휴일마저도 바쁘게 활용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히는 경우도 예사입니다.


 필자 역시도 비슷한 생각으로 살아가고 있는 사람 중 하나입니다. 바쁜 직장 업무 또는 학업으로 하루를 숨 가쁘게 보낸 후 저녁 여가시간이라도 보내자면 더욱 생산적인 일에 매진해야 한다는 생각이 머리에서 벗어나지를 않습니다. 어쩌다가 재미있는 소설책이라도 펼쳐 읽다 보면 왜인지 모를 죄책감과 무게감에 그 밤을 지새우기도 합니다. 조금이라도 자신을 발전시키고 계발하는 데에 시간을 사용하지 않으면 금방 타인에 비교해 뒤처지게 될 것만 같은 막연한 두려움. 그리고 따뜻한 목적을 가졌으나 그 온도는 따뜻하지 않은, 미래에 대한 조언들이 바로 필자로 하여금 이러한 감정을 가지게 하는 요인일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루의 숨 가쁜 일과를 모두 마치고 갖게 되는 휴식과 여가의 시간은 우리에게 자기 발전의 시간만큼이나 소중합니다. 우리의 몸과 마음은 모두 휴식을 절실히 필요로 합니다. 누군가가 종일, 일주일 내내, 아니 일 년 동안 하루도 빠지지 않고 컴퓨터를 켜 둔 채로 기능을 사용하고 있다고 생각해보세요. 그것도 간단한 기능이 아닌, 우리가 평소 직장과 일상에서 수행하는 복잡한 기능을 위주로 활용한다고 가정합시다. 쉬운 말로 해서 남아날 수 있는 컴퓨터가 있을까요? 성능은 둘째 치고서라도 고장 나지 않고 버텨주는 것만으로도 고마울 따름일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역시 휴식과 여가를 통한 ‘쉼’이 간절하고 필수적입니다. 몸과 마음 모두 잠시 여유를 가지고 자신을 대하고, 주변을 바라볼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따라가기에도 벅찼던 사회의 속도를 잠시 망각하고, 온전히 내 몸의 호흡에 모든 것을 집중할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 절실한 것입니다. 그것은 단순히 ‘여유로운 사람들의 팔자 좋은 소리’ 따위가 아닙니다. 오히려 내가 ‘나’로 존재하기 위한 가장 중요하고 필수적인 과정 중 하나입니다.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나’를 잠시 내려두고 온전히 ‘나’에게 주목할 수 있는 시간. 그것이 바로 휴식이며 숨 돌리기입니다.


 재미있는 사실은 우리 사회의 구성원 대부분은 이미 그 사실을 알고 있다는 점입니다. 그러나 또 그 대부분은 위와 같은 사실을 단순히 ‘누군가의 여유로운 소리’ 혹은 ‘미래가 불투명한 게으른 이의 핑계’ 정도로 치부하고는 애써 무시해버립니다. 그리고 누군가가 잠시간의 여유를 보내는 것을 바라보며 아직 철이 덜 들었다며 자신의 부지런함을 못내 자랑스럽게 생각하기도 합니다. 버스를 타고 이동하는 시간 동안에도 손에 영어 단어장과 짧은 외국어 회화 참고서 정도는 들고 있어야만 안도감이 듭니다. 퇴근 시간 후 지친 몸과 퉁퉁 부은 다리를 끌고는 헬스장으로 걸어가 기어코 한 번 더 팔과 다리를 혹사해야만 개운해집니다. 학문의 즐거움을 알지 못해도, 운동의 즐거움과 개운함을 미처 느껴보지 못했다고 해도 우리는 사회의 물결 속에 등 떠밀려 그것에 자신을 맡기려 노력합니다. 


 물론 가장 아픈 사실은 그것이 단순한 노파심만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 사회의 속도는 점점 빨라지고 있으며, 갈등과 경쟁은 점차 심화되고 있습니다. 어제의 기준선이 오늘은 수백 걸음 앞에 있음을 느낄 수밖에 없는 무한 경쟁의 장이 바로 이 사회입니다. 그렇기에 오늘 가진 잠깐의 휴식이 자신을 이른바 ‘달려가는 사회’로부터 떨어뜨려 도태시키지 않을까 두려움이 찾아옵니다. 그러한 정글 속에 갇혀있는 우리로서는 숨 가쁘게 살아가는 것만이 생존을 위한 유일한 해답으로 여길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그것만이 살아남는 유일한 방법일 때도 종종 닥쳐오곤 합니다. 그렇기에 휴식과 돌아봄을 통한 채워감의 소중함을 충분히 알고 있지만, 대부분의 경우 그것을 포기하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을 팔아 내일을 사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고 고민하는 사회. 선하고 부지런한 이들이 바로 지금 이 순간마저도 오늘을 팔아 오지 않을 내일을 사기 위해 땀 흘려야만 하는 사회. 오늘의 행복을 모두 포기하고도, 계속해서 찾아올 내일에 대한 고민으로 또다시 많은 것을 내려놓아야 하는 사회. 그렇기에 ‘채워짐’보다는 ‘내려놓음’을 점차 배워가는 슬픈 무대. 그것이 우리가 만들어가고 있는 ‘행복의 무덤’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삶은 ‘내일’이 아닌, 수많은 ‘오늘’이 모여 만들어집니다. 그리고 많은 이들은 ‘내일’보다는 ‘어제’를 더욱 후회하고, 다가올 큰 행복보다는 ‘지나쳐버린 소소한 행복’에 눈물짓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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