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 나를 소모하는 일
이번에 다룰 내용은 필자가 초등학생 때부터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의 일입니다. 딱딱하고 지루한 문체에 어울리지 않게 아직은 풋풋한 청년인 필자에게는 아직 먼 과거의 일은 아닙니다. 특히 필자가 느껴온 감정이 이번 주제와 맞을 듯하여 간단히 서술해보았습니다.
당시 초등학생들이 꿈꾸던 장래희망의 1위는 단연 과학자였습니다. 만화영화나 책에서 봤던, 하얀 가운을 입은 사람들이 우주를 만들고, 로켓을 쏘아 올리고, 심지어 공상 과학 속의 공간 이동 장치나 텔레파시 능력을 만들어 나가는 것을 보며 순수한 마음으로 꿈꾸었던 것으로 기억납니다. 필자 역시 가장 갖고 싶었던 직업으로 과학자를 꼽기도 했습니다. 어떤 친구들은 자랑스럽게 대통령이 되겠다고 선언하기도 했습니다. 심지어 ‘미국 대통령’이 되겠다며 활짝 웃으며 말하던 멋진 친구도 몇 명 있었습니다.
과학자가 되기 위해 고민해나가던 시절에 가장 먼저 다가온 비현실적인 ‘현실’은 “중학교에 가기 전에 고등학교 수학 정도는 배워놓아야 해.”와, “영어는 원어민 수준으로, 토익, 토플 점수도 초등학생 때부터 미리미리 챙겨야 해.” 등과 같은 어떤 학부모들의 숨 가쁜 이야기들이었습니다. 그렇지만 초등학생이었던 시절, 친구들과 필자, 우리는 그러한 이야기들도 재밌고 또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살아갈 만큼 아직 순수하고, 또 아직 어렸습니다.
그러나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중학교에 진학하자 순수하고 어리던 초등학생들에게는 이른바 어른들의 ‘현실’이라는 큰 충격이 찾아왔습니다. 하얀 가운을 입는 것은 좋지만 연구실에서 입는 가운보다는 진료실에서 입는 가운이 더욱 인기도 좋고, 자랑스러운 직업이라는 소위 말하는 ‘어른들의 현실’이 자연스럽게 진짜 우리들의 현실이 되어 자리 잡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과학자’라는 이른바 ‘추상적인’ 표현을 피한다며, 어느새 어른이 되어버린 아이들의 입에서는 ‘서울대학교 자연과학대학 교수’라느니, ‘카이스트 선임연구원’이니 하는 전문적이고도 우아하게만 보이는 직업들이 하나씩 장래희망 칸에 기록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어느새 공부 좀 한다는 친구들의 생활기록부는 하나, 둘 ‘의사’라는 직업이 채워나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우리는 수많은 ‘마리 퀴리’와 ‘아인슈타인’을 잃었습니다. 어쩌면 시대를 개혁할 수 있었을 대통령들도 그때쯤 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그때부터 친구는 동네 공원보다는 학원에서 만나는 사이로 바뀌기 시작했습니다. 아니, 동네 공원보다는 학원에서 만나야만 혼나지 않는 사이로 바뀌었다는 표현이 더욱 적합하겠습니다. 시험 성적에 민감하게 혼을 내고, 문제를 어렵게 출제하기로 유명한 선생님들의 교무실 자리에 하루가 멀다 하고 누군가의 부모님이 앉아계시기 시작한 것도 그때부터였습니다. 학생들에 대한 사랑도, 애정도 넘쳐났기에 교과서보다는 인생을 가르치고 싶었던 여러 선생님들이 “공부를 제대로 시키지 않고 쓸데없는 것만 하려 한다.”라는 이유로 학부모들과 학생들의 입방아에 오르게 된 것을 처음 접하고 거북함을 느꼈던 것도 그때쯤이었던 것 같습니다. 또한 학교 선생님의 말씀보다는 학원 선생님의 말씀이 더욱 권위를 부여받기 시작했습니다. 학교에서 아이들이 받았던 ‘체벌’은 폭행과 인권유린으로, 학원에서 아이들이 받은 ‘체벌’은 잘 가르치는 학원의 나름대로 훈육 방침 정도로 해석되기 시작하였습니다. 뒤틀리고 왜곡된 교육관과 학습관 역시 이 시기에 자리 잡게 되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