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미해진 의욕을 되찾는 길

자율성을 회복하라

대학 내 학사경고를 받은 학생들을 대상으로 집단 인터뷰를 진행한 적이 있다. 학사경고를 받았고, 본인이 그 대상자이기에 인터뷰를 한다고 생각해보라. 인터뷰 시작 때의 분위기는 말도 못 했다. 다행히도 인터뷰가 진행되는 동안 학생들은 본인들의 이야기를 적극적으로 꺼내기 시작했고, 그들의 생각과 감정, 경험을 이야기했다. 그로 인해 많은 학생들이 학사경고를 받게 되는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당시 학생들은 자존심이 많이 상한 눈치였다. 그도 그럴 것이 입학할 때만 해도 비슷한 성적을 얻고 학교와 해당 학과에 들어왔을 텐데, 친구들과 달리 본인들은 학사경고를 받았기 때문이다. 일부 학생들은 자신이 속한 해당 학과가 전국 탑 수준인데, 대학에 들어올 때의 뿌듯함을 생각해본다면 당시 느끼고 있을 감정을 대략 이해할 수 있었다.

사실 이들이 공부하는 방법을 모르거나 공부를 못하기 때문에 학사경고를 받은 것은 아니다. 전부는 아니지만 대다수는 그렇다. 다만 학교생활과 학업에 대한 동기가 없기 때문이다. 좋은 학점을 받아야 할 이유를 모르겠고, 학업 활동을 할 의욕도 없다. 그러다 보면 무기력함이 생기고, 학업이나 학교 생활에 흥미도 잃게 된다. 학사 경고를 받은 학생들이 학교 생활이나 학업에 흥미를 잃게 된 결과는 다양한 원인 변인이 존재한다. 그러나 나는 그 저변에 깔린 내면의 영역을 집중하려고 한다. 바로 동기다. 그리고 자율성이다.

자율성은 동기를 조절하는 힘이다.

과거 심리학 연구에서는 인간의 행동 동기를 외재적 동기와 내재적 동기로 구분했다. 외재적 동기는 내 행동의 원인이 밖에 있는 것이다. 금전적 보상, 지위, 명예, 처벌을 피하는 일, 타인으로부터의 인정 등이다. 내재적 동기는 그 일에 대한 동기가 내 안에 있는 것이다. 보람을 추구하거나 흥미, 재미, 가치 등을 추구한다면 그건 내적 동기가 형성된 일이다. 과거 시각은 외적 동기가 높아지면 내적 동기가 약해지는 반비례 관계로 보고, 이 둘의 영역을 완전히 구분했다. 그러나 최근 심리학은 외적 동기와 내적 동기를 하나의 연속선상에서 이해한다. 대표적인 이론이 자기 결정성 이론(Self-determination motivation)이다. 에드워드 데시(Edward Deci)와 리처드 라이언(Richard Ryan)을 중심으로 정리된 이론은 동기를 무동기, 외재 동기, 내재 동기의 스펙트럼으로 이해한다. 그리고 인간은 자신의 동기를 외적이나 내적으로 조절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는데, 이 능력의 핵심 역할을 하는 것이 바로 ‘자율성(Autonomy)’이다. 자율성은 어떤 행동의 근원이 나에게 있다는 의미이다.

사실 자율성이 존재한다는 건 우리 대부분의 경험 안에 존재한다. 어린 시절 ‘오늘은 방청소 좀 해볼까’ 하고 큰 결심을 한 일이 있을 것이다. 그런데 청소를 하려던 순간, 문 밖에서 들리는 어머님의 날카로운 목소리, “방 청소 좀 해!! 돼지우리도 아니고, 돼지가 와서 형님 하자고 하겠다." 이 말을 듣는 순간 갑자기 청소가 하기 싫어지고 짜증이 올라온다. 자율성이 사라지는 순간이다. 청소라는 행위의 원인이 안에서 밖으로 이동하는 순간이다. 이렇듯 여러분은 이미 자율성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경험을 통해 모두 알고 있다.

자율성의 에너지가 가득하면 타인이나 직장에서 시킨 수동적인 일에도 내적인 동기를 찾고 그 안에서 흥미와 보람, 가치를 발견한다. 보통 이런 사람들이 자신의 분야에서 전문가로 성장하고 사회적 인정을 받는다. 따라서 삶이 의무와 압박으로 가득하고, 그로 인해 의욕을 잃었다면 내 안에 있는 자율성을 점검해야 한다.

우리의 탓이 아니다.

사실 자율성을 상실한 건 여러분의 탓이 아니다. 코로나 19 대응을 통해 국가적 위상이 많이 올라간 상황이지만, 한국 사회는 여전히 자율성이 자라기에는 척박한 환경이다. 그 이유는 먼저 교육환경을 통해 살펴볼 수 있다. 우리는 학창 시절,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서는 ‘참고 인내하며, 내 욕구를 억눌러야 한다.’는 메시지를 주입받았다. 물론 일상에서 원하는 것을 얻으려면 당장의 충동을 억제하고 인내하는 능력은 필수다. 부인하는 것은 아니다. 내가 지적하고 싶은 건 인내를 강요하기 전에 ‘내가 무엇을 원하고, 나의 욕구는 무엇이고,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에 대해 탐구하라’는 메시지를 먼저 전해줘야 했다는 것이다. 그런 메시지가 없었기에,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모른 상태로 원하는 것을 위해 참아야 하는 모순이 발생한다.

현재 젊은 세대가 놓인 상황은 더욱 심각해졌다. 과게엔 그 인내의 결과로 비교적 쉽게 원하는 직업과 사회적 지위를 얻고, 신분상승이 가능했다. 하지만 현재는 심각한 고용불안, 비정규직 문제, 질 낮은 일자리,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은 부동산 가격 등. 학생들은 열심히 노력해도 내가 원하는 것을 얻고 원하는 삶을 살 수 있을지에 대한 효능감이 많이 떨어졌다. 내가 원하는 것도 모르겠고, 내가 사는 사회는 내 노력에 대한 정당한 보상도 주지 못하는 상황에서 의욕을 잃고 좌절하는 청년들을 누가 쉽게 비난할 수 있겠는가

자율성을 회복하는 길

그렇다고 무작정 사회를 비난하고, 내가 처한 환경을 원망하는 일은 내 삶을 더 비참하게 만들고, 의욕을 낮추는 결과를 낳는다. 먼저 자신의 자율성을 점검하고 이를 회복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자율성을 회복하려면 먼저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이고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 스스로에게 물어야 한다. 나의 내면에 존재하는 욕구, 바람 등이 현실에서 어떻게 적용될 수 있는지를 살펴야 한다. 처음에는 이런 스스로에게 이런 질문을 던지면 우리 내면은 묵묵부답으로 대응한다. 그러나 지속적으로 묻는다면 어느 순간 내면의 목소리가 점점 커지는 걸 느낄 것이다. 그 목소리가 뚜렷해지면 삶에서 내가 원하는 일과 삶의 모습을 그려나갈 수 있다. 과거의 경험을 살펴보는 일도 좋다. 내 기억 속에서 언제 내가 만족했고, 삶의 보람을 느꼈고, ‘나’라는 존재로 충만했던 순간을 찾아보라. 그 기억 속에 내 욕구, 바람, 미래의 재료들이 숨어있다.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발견했다면, 내 삶을 주도적으로 디자인해야 한다. 이는 거창한 일이 아니다. 자신만의 취미 생활을 찾고, 성취하길 원하는 크고 작은 목표를 세워서 그 계획을 캘린더에 표시하는 일부터 시작된다. 스티브 잡스는 그 유명한 스탠포드 대학교 졸업식 연설에서 “지금은 예측할 수 없지만, 모든 점은 미래와 연결되어 있다. 지금의 점(경험)이 미래의 어떤 시점과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믿어야 한다.”라고 말했다. 내 삶의 점들은 타인의 점과는 다르다. 스스로 그리지 않는다면 다른 사람에 그 점이 연결되거나, 연결조차 되지 못할 수 있다. 타인에게 내 미래의 연결점을 빼앗겨서는 안 된다. 스스로 자신만의 미래를 펼치기 위한 점을 그려나가야 한다.

자율성을 회복하고자 한다면, 조금은 위험(?)한 생각도 필요하다. 인간의 동기는 자신이 처한 상황에 많은 영향을 받는다. 내가 살고 있는 사회가 고정되어 있고 변하지 않는다는 생각을 갖을 때 우리는 보통 사회에 이미 구축된 질서와 구조, 그리고 그 문화에 순응하려는 태도를 갖는다. 이런 태도에서는 자율성이 잘 자라지 못한다. 나의 주체적 태도, 주제적 생각과 행동이 사회를 변화시켜 나갈 수 있다는 신념이 필요하다. 정치인은 국민을 대신해서 정치적 행위를 한다. 정치의 주체는 국민이다. 우리의 목소리, 우리의 투표로 사회적 이슈는 달라지고, 때로는 속도가 더디기는 하지만 제도 또한 달라진다. 내가 사회적 구성원으로 사회에 잘못된 부분을 지적하고, 그 변화를 누리며 살아가야 한다는 의식이 필요하다. 투표를 포함, 국가와 사회를 향한 나의 의사표현이 자연스러워져야 한다. 때로는 순진함은 죄악과 같다.

이는 정치적 견해가 아니다. 상식선에서 제시하는 의견이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따라서 사회와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 나의 의견과 생각이 사회에 반영되고 변화를 이끌어낸다는 신념이 우리의 자율성을 형성한다. 부조리한 사회에 학습된 무기력을 경험하기 보다는 자율성을 회복하는 길을 가야 한다.  

대한민국 헌법 제1조에는 다음과 같이 명시되어있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한 사람 한 사람이 대한민국 권력의 주체이며, 그 권리를 누려야 할 존재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