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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티베이터 Oct 17. 2020

리얼 쿨함은 어디에 있는가?

'쿨~함'이 미덕인 시대를 살고 있다. 
 

쿨(cool)함이 미덕인 시대다. 사회는 우리에게 친절, 예의, 배려를 요구하지만, 쿨함 또한 요구한다. 무척 어렵다. 그게 가능한지 모르겠다. 그러다 보니 쿨하지 못해서 미안해야 할 때가 있다. “왜 그래? 쿨하지 못하게.” 상대가 이렇게 말하면 내가 나쁜 놈이 된다. 


나도 쿨하고 싶었다. 쿨한 향기를 진하게 뿜고 싶었다. 지독한 쿨 향을 내뿜는 이들이 부러웠다. 그들의 쿨함은 어디서 비롯된 것인지 알고 싶었다. 


과거의 나는 ‘쿨함 함유량’이 없었다. 지금은 비교적 쿨하게 반응할 때가 있지만, 어린 시절에는 전혀 그렇지 못했다. 20대의 나는 유독 남들의 말과 시선을 신경 썼다. 상대가 가볍게 던진 한 마디에 심하게 흔들렸고, 그 흔들림을 진정시키는데 너무 많은 에너지를 사용했다. 


그러다 보니 나는 타인의 시선에 갇혀 지냈다. 주위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바라보고 생각할지가 내 기분과 감정을 결정했다. 타인의 시선은 롤러코스터의 레일과 같았다. 사람들과 한참 시간을 보내고 집에 돌아오는 길에 나는 시뮬레이션을 했다. 내가 했던 말, 행동을 떠올려 보고 그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했을지를 생각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참 어리석은 행동이었다. 그 시선은 ‘실재(實在)’가 아니기 때문이다. 


다시 생각해보니 쿨한 사람들을 부러워하는 게 아니었다. 그들을 싫어했다. 나를 심하게 흔들고도 아무렇지 않게 쿨함을 내뿜는 이들을 향한 분노가 있었다. 하지만 나는 쿨함이 미덕인 시대에 살고 있다.  


쿨~ 함을 간진한 페르소나(Persona) 속 나는 행복한가? 

쿨함이 미덕인 시대에서 나 또한 쿨해야 했다. 내가 선택한 방법은 쿨해 보이는 가면을 쓰는 것이었다. 가면을 쓰는 일은 나쁘지 않다. 사회적 동물인 인간은 늘 적당한 가면을 쓴다. 이를 심리학 용어로 '페르소나'라 한다. 가면을 쓴다고 내가 아닌 것은 아니다. 그 또한 ‘나’다. 


쿨함을 간직한 페르소나 덕분에 '현재의 나'는 사회적 관계에 능숙하다. 사람들의 시선이나 평가에서도 이전보다 자유롭다. 처음 만나는 사람들과 무리 없이 친해지고, 친교 모임이나 직장에서는 오히려 분위기를 주도한다. 주변 사람들도 나를 그렇게 평가한다. 내가 사회적 관계를 잘할 수 있는 원인은 비교적 쿨(cool)한 페르소나가 발달했기 때문이다. 사람들을 편하게 대하고, 어색해질 수 있는 순간에도 편한 제스처와 위트로 넘기는 기술을 갖췄기에 가능했다. 


쿨해 보이는 페르소나 덕분에 비교적 평안 비슷한 걸 찾았지만, 행복한지는 모르겠다. 관계 속에서 채워지는 만족감이 크지 않기 때문이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이유를 알 것도 같다. 내 페르소나는 두려움에서 탄생했기 때문이다. ‘이 사람이 나를 비난하면 어떻게 하지?’, ‘내가 없는 곳에서 나를 험담하지 않을까?’, ‘내 진짜 모습을 알면 나를 멀리하지 않을까?’ 내 페르소나는 이런 두려움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단지 세련미를 갖췄을 뿐이다. 


사람들은 친구나 애인과 같은 친밀한 관계를 원한다. 가면을 벗고, ‘진짜 나’를 드러내고, 드러남이 이루어진 상황에서 교감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교감할 때 관계를 통한 만족감이 차오른다. 사람과의 연결됨을 느끼고, 내가 의미 있는 존재임을 깨닫는다. 관계를 통해 나를 더 깊이 있게 이해하는 경험을 한다. 타인의 시선에 갇힌 고통에서 벗어났지만 내가 행복하지 않았던 이유는, 나의 쿨함에는 '진짜 나'가 반영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나는 여전히 쿨해지고 싶다. 다만 내가 원하는 '쿨함'은 이제 모습과 성장환경이 달라져야 한다. 

 


진짜 쿨함은 무엇일까? 

 

헤르만 헤세의 소설 <데미안>이 생각난다. 소설의 주인공 싱클레어는 데미안과의 만남을 통해 내면세계의 분열과 회복, 통합을 이루며 자신의 자아를 발견해 나갔다. 쿨함의 미덕은 싱클레어의 경험과 같이 내면세계의 흔들림, 방황, 회복과 통합을 요구한다.


진정한 쿨함은 타인이 어떻게 생각하거나 반응할지를 고민하지 않고 자신이 원하는 대로 행동하는 것이 아니다. 그런 태도는 ‘무례함’이 분명하다. 진짜 쿨함은 내 자아가 넉넉하고 여유로울 때 가능한 태도다. 상대의 말과 행동이 잔잔한 나의 고요한 내면세계를 뒤흔들 수 없다는 사실을 인지하는 자신감이다. 


따라서 진정한 쿨함은 보이지 않는 시간 속에 심하게 흔들렸던 자아의 흔적을 숨기고 있다. 때로는 자신의 자아를 발견하기 위해 스스로 흔들었던 흔적을 포함한다. 내 자아를 발견하고, 이해하는 과정을 거치면 비로소 쿨한 향기가 진동한다. 의도적으로 쿨함을 내보이는 사회적 가면을 쓰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드러나는 쿨한 향기, 그것이 진짜다. 



자아의 균열 없이 만들어진 ‘쿨함’은 가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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