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오디션 프로그램이 붐을 일으킨 때가 있다. 주로 음악 오디션 프로그램이 주를 이뤘는데, 오랫동안 품어왔던 꿈을 이루기 위해 수많은 사람들이 오디션에 참가하고 경연을 펼쳤다. 당시 참가자의 퍼포먼스도 인기를 끌었지만, 심사위원들의 심사평이 시청자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기기도 했다. 수많은 심사평 가운데 내 기억에 오랫동안 남는 심사평은 주로 ‘절박함’을 지적하던 심사다. 심사위원들은 참가자들의 절박함을 관찰했고, 실력이 조금 부족하더라도 절박해 보이는 이들을 다음 라운드로 통과시키거나, 절박함이 부족해 보이는 이들을 탈락시키기도 했다. 아마도 절박한 이들은 경연 기간 내에 자신의 부족한 부분을 고치고 잠재력을 발휘할 가능성이 높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오디션만이 아니다. 우리 일상에서도 절박함은 상황을 바꾸고 돌파력을 만드는 동력이 된다. 지나간 과거를 돌아보며, ‘좀 더 절박한 마음으로 했으면 어땠을까?’하는 아쉬움을 느끼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절박했다면 그 일에 좀 더 매달리고, 집중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인터뷰 등을 통해 일류 기업들의 총수들은 절박함을 경영의 주요 전략으로 활용하는 경우가 많음을 확인할 수 있다. 그들은 기업이 성장하고, 매출이 급상승할 때도 항상 지금이 위기의 때라고 인식한다. 절박하지 않으면 현실에 안주할 수밖에 없고, 현실에 안주하면 빠르게 변화하는 시대의 변화를 따르거나 선도할 수 없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절박함으로 기존 사업을 과감하게 정리하고 주요 사업에 집중적으로 투자하는 전략적 행동을 취한다. 개인이나 기업이나 절박함은 강력한 생존전략이며 동력이다.
절박함이 강력한 도구가 되는 이유는 변화를 유도하기 때문이다. 우리 뇌는 변화를 싫어한다. 새벽 시간으로 기상시간을 바꾸거나 퇴근 후 하던 일에 변화를 주거나 식습관을 바꾸는 일에 거부감을 보인다. 주먹을 불끈 쥐고 의지를 다지지만, 변화를 지속하는 일은 어렵다.
하지만 절박해지면 얘기가 달라진다. 현재와 같은 삶이 반복되서는 답이 없다고 여겨지면, 기꺼이 변화를 도모한다. 과감하게 새벽시간에 몸을 일으키고, 오랜 흡연 습관을 끊고, 피로가 쌓인 퇴근 이후 시간에도 운동을 하거나 책을 읽는다. 절박함이 생존본능을 건드리기 때문이다. 생존 본능은 가장 강력한 본능이다. 우리 뇌는 생존에 위협을 느낀다고 여길 때 전혀 다른 방식으로 작동한다. 기존의 패턴을 유지하려는 경향을 과감하게 버리고 새로운 전략을 취한다.
절박함이 강력한 무기가 되는 또 하나의 이유는 절박함이 몰입을 만들기 때문이다. 어떤 일을 목표로 세우고, 그 일을 향한 강한 동기를 얻을 수 있는 최고의 방법은 그 일에 완전히 몰입하는 것이다. 몰입에 관한 심리 연구에 따르면, 몰입은 내적 동기 중 가장 강력한 동기다. 몰입을 경험한 사람은 몰입 이후 행복감 등 강한 긍정적 감정을 경험한다. 몰입 경험은 내가 하는 일에 강한 의미를 부여해주며, 이를 통해 의미가 채워지는 경험을 한다.
몰입을 하려면, 하나의 대상에 온전히 집중한 상태로 시간적 연속성을 만들 수 있어야 한다. 다른 생각, 자극, 감정이 들어올 틈이 없이 의식 전체가 지금 하고 있는 일로 가득 찰 때 우리 뇌는 몰입이라는 현상을 만들어 낸다. 그런데 일상에서는 이런 몰입 경험을 쉽게 하지 못한다. 심리적 에너지를 적당히 분배해서 사용하기 때문이다. 적당히 집중하고, 적당히 산만한 상태를 유지한다. 작은 자극에도 쉽게 흔들리고, 하나의 대상이 연속적으로 의식을 차지하지 못한다.
그러나 적발함을 느낄 때는 다르다. 절박함을 느끼면, 우리 뇌는 생존에 유리하다고 판단되는 일에 자연스럽게 집중한다. 의식적으로 생각하려고 노력하지 않을 때도 우리 뇌는 그 상황을 해결해 나갈 방안을 고민하고 있다. 의도적으로 몰입감을 높이지 않아도 절박함이 어느 정도의 몰입감을 유지하는 상태가 된다.
하지만 절박함 감정이 우리에게 유리한 방향으로만 작용하는 것은 아니다. 절박한 상황에서 우리는 부정적 생각에 사로잡혀 무기력함이나 절망감을 느끼기도 한다. 절박함은 조급함을 일으켜 평정심을 무너트리고, 인내하는 마음과 지속성을 망치기도 한다. 절박한 감정은 현실에 대한 과도한 부정 편향을 만들어, 자신이 컨트롤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인식하게 만들기도 한다.
자칫 우리를 더 위험한 상황으로 몰고갈 수 있는 절박함, 어떻게 다뤄야 할까?
먼저 조급함을 다룰 줄 아는 기술이 필요하다. 절박해지면, 조급해진다. 절박한 감정은 인간 뇌의 편도체를 활성화시키고, 활성화된 편도체는 당장 이 상황을 벗어나지 않으면 안 된다는 판단 아래 마음을 내달리게 한다. 절박함을 느낀 뇌는 극적인 변화를 추구하고, 당장 눈으로 성과를 확인하고 싶어 한다. 조급함이 생기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조급함을 어떻게 다룰지가 중요한 문제다.
조급함이 올라올 때는 '내가 현재 조급해하고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 그리고 그 감정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줄 알아야 한다. 하지만 조급함의 흐름을 이어가서는 안된다. 의도적으로 생각이나 행동을 늦춤으로 조급함을 적당한 긴장으로 바꾸는 훈련이 필요하다. 적당한 각성과 긴장은 우리 뇌를 집중시키고, 활력을 제공함으로 오히려 도움이 된다.
조급함이 내가 하려던 일을 어떻게 망쳤는지를 반복해서 인식해야 한다. 조급하게 진행했던 일은 보통 얕은 사고를 반복하고, 일의 디테일을 떨어트리고, 저성과를 만들고, 실수로 인해 더 많은 시간을 소모시키는 결과를 낳았을 것이다. 자신의 경험을 돌아보고, 조급함이 만드는 결과를 경계할 줄 알아야 한다. 처음엔 어렵지만, 조급함을 느낌에도 차분하게 현재 하는 일에 집중하는 연습을 하다 보면, 조급함을 다루는 기술이 익숙해진다.
절박함을 변화와 몰입을 유도하는 도구로 사용하려면, '목표'에 집중하는 태도가 필요하다. 그것도 '전략적 목표'에! 절박함은 보통 우리 의식이 어떤 상황에 집중할 때 생긴다. 내가 처한 상황, 이 상황이 불러올 미래에 집중할 때 절박한 감정을 일어난다. 절박함이 생기면 우리는 그 상황에 보다 더 강하게 집중하는데, 이때 우리는 상황에 압도될 때가 많다. 상황에 압도될 때 절박함은 무기력함으로 전환된다. 절박함이 우리를 움직이지 못하도록 묶어버리는 결과를 만드는 것이다.
건강을 되찾고, 관계를 회복하고, 이직을 준비하고, 새로운 사업을 추진하기 위한 구체적인 목표과 전략을 세울 때 우리는 상황에서 눈을 돌려 목표에 집중한다. 상황에서 적당한 심리적 거리를 둘 때 절박함은 변화를 위해 사용 가능한 에너지로 전환된다. 정제된 에너지가 된다.
절박함이 조급함을 이겨내고 지속성을 만들려면, 목표에는 체계가 요구된다. 단기 목표와 장기 목표가 체계적으로 구성된 구조화된 목표와 실행 전략이 마련되면, 절박한 마음은 나름의 질서를 갖춘다. ‘지금 당장 무엇이라도 해야겠다.’는 생각보다는 ‘이 상황을 돌파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일’에 의식을 집중한다. 그리고 산만하게 이런저런 일에 에너지를 분산시키기 보다는 오히려 가장 중요한 일을 남기고 다른 일을 과감하게 제거한다. 이런 자세는 현실에서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성과를 만들고, 작은 성과들은 절박함 감정에 자신감과 가능성을 섞어준다.
절박하지 못했기 때문에 현재 상황을 돌파하지 못하고 있는 걸까? 오히려 절박함이 무기력을 만들었기 때문에 절박함을 사용할 엄두를 내지 못한 건 아닐까? 절박함은 변화를 도모하는 강력한 도구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절박함을 한 스푼 섞을 때는, 주의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