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안해요, 당신의 불행에 좋아했어요

by 지제이

부끄러운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그날 이후 한동안 자괴감에 빠졌고, 잊고 살다가도 어떤 연결고리로든 불현듯 떠오를 때면,

'나라는 인간'에게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게 되는 일입니다.




TV 방송 다큐드라마 작가로 활동할 때였습니다.

EBS 프로를 하나 맡게 됐는데, 초중고생 대상으로 부모님에 대한 전기문을 써내는 공모전을 열고

당선자를 뽑은 후 그 내용을 방송으로 제작하는 프로그램이었습니다.

방송은 일주일에 한 편씩 나가고, 작가와 PD 4-5팀을 꾸려 돌아가면서 제작합니다.

실제 인물이 등장하는 다큐와 재연 드라마가 교차 편집되는 것이라,

취재하고 구성하고 시나리오 쓰고, 다큐와 드라마를 각각 촬영하고, 가편집 후 내레이션을 작성하고,

더빙과 효과 작업까지 마쳐야 하니, 한 팀이 한 달에 한두 편을 겨우 할 수 있었습니다.


PD가 저에게 한 여고생의 원고를 주었습니다.

작가는 심사에 참여하지 않기에 저로서는 처음 읽게 되는 원고였습니다.

모 여고 2학년이라고 자기를 밝히며 꼬박꼬박 눌러쓴 원고에는, 사업 실패의 어려움을 딛고 뭐든지 해주고자 애쓰시는 부모님에 대한 고마움을 담담히 적고 있었습니다.

초딩 남동생도 하나 있는데, 말은 안 듣지만 누나로서 잘 챙겨주고 사이좋게 지내겠다...

그런 따듯한 내용이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착한 부모님에 착한 애들이네요."

내용이 좀 밋밋하다는 생각에 저는 좀 아쉬웠습니다.

PD에게 왜 하필 이걸 받아 왔느냐 하며, 시청률 어쩌고 한 거 같기도 합니다.

어떤 장면부터 시작할까, 어떻게 구성을 해야 하나, 고민을 하면서,

사전 취재차 학생의 어머니께 전화를 드렸습니다.

학생 원고만으로 방송을 만들 수는 없어, 일단 작가들은 부모님과 먼저 통화를 하곤 하는데,

수화기 속 어머니 목소리에는 기쁨과 긴장이 공존했습니다.


딸아이가 자랑스럽고 방송국 전화를 받으니 너무 떨린다는 어머니께,

저는 한껏 따듯한 목소리로 이런저런 주변 질문을 했습니다.

결혼 과정부터 사업 얘기까지 한참 메모를 하며 듣고 있는데

시간별로 에피소드를 얘기하던 어머니가 무슨 말끝엔가

"사실은... 저희가 애 하나를 잃었어요..."라고 했습니다.

순간 저는 눈이 번쩍 뜨였습니다. 차분히 다음 말을 기다렸습니다.

"둘째인데... 1년도 못 살고 하늘나라로 갔어요..."


'오! 그 얘기를 메인으로 하면 되겠네.'

저는 속으로 됐다 싶었습니다.

밋밋함을 구해줄 사연이다. 슬픔과 고통을 이겨내고 열심히 일상을 되찾은 엄마 아빠의 모습을 담자.

머릿속이 바쁘게 돌아갔습니다.

부부끼리도 꺼내지 않은 지 오래됐다는 아기의 이야기가 이 가족 스토리의 반전이 되겠구나 싶었고,

저는 큰 고민이 해결된 것 같았습니다.

제 얼굴을 볼 수는 없었지만 슬쩍 미소를 띠지는 않았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겉으로는 어머니께 위로의 말씀을 올렸습니다.

"저런... 무슨 말씀을 드려야 할지 모르겠네요. 어떻게... 너무 마음 아프셨겠어요."

"벌써 십 년도 넘은 일인 걸요. 두 아이 키우며 먹고사느라 정신없이 시간이 갔네요."

둘째 잃은 이야기를 방송으로 하셨으면 좋겠다고 잘 말씀드리고 전화를 끊었습니다.


전화기를 내려놓는데, 기분이 좋지 않았습니다.

어머니가 아이를 잃었다고 말하는 순간, 이거다! 했던 내 모습에 내가 충격을 받았다고 해야 할까요.

마치 대명천지에 저의 본색이 드러난 것 같았고 나도 모르게 돌 하나가 가슴에 얹어진 것 같았습니다.

PD에게 내용을 전해주고, 이런 기분도 얘기했습니다.

"뭘 그런 거 가지고, 방송일이 다 그렇죠. 힘든 얘기 잘 끌어내셨네요."

PD 말에 공감하며 저 역시 더이상 너무 마음 쓰지 말자 했습니다.




모든 촬영이 끝나고 음향효과 믹싱하는 날이었습니다.

저는 편집실 뒤쪽에 앉아 화면을 보며 PD에게 의견을 주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다큐 부분의 한 장면이 나왔고, 화면 속에는

엄마와 아빠, 여고생 딸과 초딩 아들이 산속을 헤매고 있었습니다.

"여긴가? 저쪽인가?"

"이쯤인데... 너무 오랜만에 왔더니, 못 찾겠네."

"저 나무 보이는 거 보니까, 여기 맞는 거 같애. 주변이 많이 변했네."

아버지는 엄마의 어깨를 다독거렸고, 딸과 아들도 한 곳을 응시하며 고개를 숙였습니다.

"미안해, 울 애기. 엄마가 자주 못 와서 바로 못 찾았어. 엄마가 너무 미안해."


화면을 보는데 눈물이 왈칵 쏟아졌습니다.

제 구성안에는 잃은 아이에 대해 부부가 추억하고 추모하는 시간을 넣기는 했지만,

산속을 찾아다니며 아기 묻은 곳을 찾아다니는 건 없었습니다.

촬영 중 부부 이야기를 듣고 PD가 즉석에서 넣은 거였습니다.

워낙 아기라 제대로 안장을 하지 않았기에 무덤을 찾지 못해 당황해하는 부부의 모습을 촬영하며,

PD도 저와 비슷한 감정을 느끼지 않았을까요.

'좋아... 그림 나온다' 하고요.


한번 나온 눈물은 쉽게 멈추지 않았습니다.

시청자로서 봐도 슬픈 장면이어서였는지,

내내 묻어두었던 미안함이 들춰지면서, 그렇게라도 해야만 했던 것인지...


그 후로 저는 예능 프로에서 '저저 방송국 놈들' 하며 농담하는 게 나와도 웃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날 누군가의 아픔에 눈을 반짝였던 제 모습이 바로 떠오르기 때문입니다.




"그 순간 좋아하는 나를 보면서, 내가 나한테 놀랐잖아. 내가 그런 인간이구나... 충격이었어."

훗날 지인들에게 그때의 에피소드를 이야기할 때면 꼭 이런 말로 마무리했던 거 같습니다.

그 일뿐일까요.

기본적으로 저는 남이 잘됐을 때 기뻐하기보다는, 남이 잘 안 됐을 때 안도할 때가 더 많은 듯합니다.

그런 내 인간성을 털어놓으면 지인들은 말합니다.

"너만 그런 거 아니야. 사람은 다 그래."


정말 사람은 다 그런 걸까요.

나이를 먹으며 드는 생각은 원래, 원래는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아드레날린에 속듯, 이기주의라는 감정에 속는 것일 뿐, 원래는 사랑과 배려가, 진정 어린 공감이 사람이지 않을까. 그렇지 않다면 인류가 이렇게나 긴 역사를 이룰 수도 없었을 테고, 사랑이다, 배려다, 공감이다 하는 단어조차 없었지 않았을까 하고요.


그래서 생각해보게 됩니다.

그저 나만 바뀌면 되는 것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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