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떠나보았던 여행, 에피소드 (2)
절에서 내려온 저는 곧장 큰길 쪽으로 걸었습니다.
내려오는 사이 더욱 축축해진 나의 두 발은 빨리 숙소부터 정하라고 재촉했죠.
숙소가 있을 만한 나름 번화가로 향하면서 슬슬 걱정이 되었습니다.
숙소는 여관이나 여인숙 같은 데보다는 좀 비싸도 모텔로 해야겠지.
여자 혼자 객지 왔을 때는 식대는 아낄지언정 잠은 좋은 곳에서 자라고 했어.
그게 안전하기도 하다고 했는데, 그런 숙소는 많이 비쌀라나?
좀 전까지만 해도 낭만충만해서 이런 무작정 여행도 괜찮다 싶었는데, 막상 어두워지니 잘 곳이 정해지지 않았다는 게 괜히 불안하더라고요.
그렇게 조급한 마음을 안고 두리번거리던 저는 불현듯 한 가게 앞에서 걸음을 멈췄습니다.
카드, 엽서, 열쇠고리, 컵, 컵받침, 액자, 스탠드, 인형, 수건, 양말... 등등.
귀엽거나 깜찍한 캐릭터로 장식된 각종 잡화들이 문 앞 길까지 나와 있는데, 가게 안에서 새어 나오는 불빛과 조명을 받아 반짝거리고 있었습니다.
순간 숙소 걱정은 멀리 사라졌고 제 몸은 자연스럽게 안으로 걸어 들어갔습니다.
일단 양말도 하나 사고, 처음으로 혼자 여행 온 거니 뭐라도 기념할 만한 걸 살까 싶었죠.
가게 안은 생각보다 넓고 천장도 높았습니다.
에코백, 티셔츠, 포스터, 벽시계... 등등이 양 벽에 걸려 있고, 가운데 홀에는 커다란 테이블 위로 예쁜 소품들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어요.
"어서 오세요."
언뜻 제 또래로 보이는 젊은 여주인이 인사를 하고는 멀찌감치 서서 자기가 하던 일을 계속했습니다.
과하게 친절하지 않은 딱 적당한 표정과 말투, 손님에게 부담을 주지 않는 적당한 거리를 아는 분 같았어요.
저는 양말부터 고르고 엽서랑 카드도 몇 장 집어서 카운터 쪽으로 갔습니다.
무관심한 척했던 여주인도 반사적으로 몸을 돌려 다가왔어요.
그제야 제대로 얼굴을 마주본 우리는 카운터를 사이에 두고 서로 옅은 미소를 흘렸어요.
화장기 없는 얼굴에 조금은 긴 단발머리. 앞치마를 두른 여주인의 표정은 좀 지쳐 보이기는 했지만 평범하고 선한 사람이다 싶었습니다.
계산할 물건들을 내주며 제가 물었습니다.
"혹시 이 근처에 깨끗하고 괜찮은 숙소 좀 추천해 주실 수 있을까요? 모텔 같은 데."
"? 여행 오셨어요? 혼자요?"
여주인이 호기심에 눈을 반짝거리며 물었습니다.
"네. 다니는 건 혼자 잘 돌아다녔는데, 숙소는 아무 데나 가기가 좀 그래서."
"글쎄요. 저는 그런 데 갈 일이 없다 보니까 아는 데가 없는데."
물건을 봉투에 담아주며 여주인은 잠시 생각하더니, 제게 물었습니다.
"근데 혹시 서울에서 오셨어요?"
"네. 어떻게 아세요?"
"억양이랑 느낌이 서울 분 같아서요. 저도 원래 서울 살았거든요. 영등포 대림역 근처에 살았었어요."
"네? 어머, 저 거기 사는데. **병원 있는 쪽요."
"진짜요? 저는 그 건너편에 살았어요. 장 보러 맨날 길 건너 **시장 가고 그랬는데."
어머어머 웬일이니. 우리는 서로 신기해하며 웃음을 터뜨렸습니다.
3년 전, 가족이 다 함께 원주로 이사했다는 그분은 고향 친구라도 만난 듯 저에게 동네 소식을 물었어요.
참 별일이 다 있다 하면서 저도 최대한 아는 대로 얘기를 해드렸죠.
얼추 얘기가 마무리될 즈음 그분도 숙소는 잘 모른다 싶어 이만 총총... 인사를 하고 나오려고 할 때였어요.
"그냥 우리 집에 가서 잘래요?"
"네...?"
저는 순간 귀를 의심했습니다.
아무리 그래도 오늘 처음 본 사람인데, 집에까지 데려간다는 건 저로서는 생각지도 못할 일이라서요.
"아유... 어떻게... 그건 너무 민폐죠."
"난 괜찮은데. 불편하면 안 그래도 되고요. 제가 여기 친구가 없어요. 얘기할 사람도 없이 맨날 혼자 가게만 보다가 오랜만에 서울 사람이랑 얘기했더니 좋았나 봐요. 제가 아쉬워서 그러는 거예요."
굉장히 담백하게 이유를 설명하시는데 저 또한 굳이 거절할 이유는 없었습니다.
살짝 스릴과 재미도 있었어요.
이게 혼자 여행하는 묘미인가. 전혀 예상할 수 없이 진행되는 이런 모든 일들이 홀로 여행의 선물 같기도 하고 제 뇌 속에서도 마구 신선한 물질들이 요동쳤습니다.
그분 집까지 가는 길에는 몇 가지 절차가 있었습니다.
일단 가게는 그분 혼자 운영하지만 친오빠와 같이 출퇴근을 하고 있고, 퇴근 준비를 해놓으면 오빠가 와서 셔터를 내려줄 거라고 했어요. 오빠는 기술직이라 근처 무슨 공장에서 일한다고 들었던 거 같아요.
같이 길 앞에 내놓은 물건들을 안으로 들여놓고 오빠를 기다리면서, 그분은 왜 가족이 원주로 이사하게 되었는지를 차근차근 얘기해 주었습니다.
아버지는 일찍 돌아가셨고 엄마가 안 해 본 일 없이 고생하셔서 우리 남매를 키워 주셨어요.
그러다 6년 전인가 뇌출혈로 쓰러지셨죠. 수술도 하고, 여기저기 병원 모시고 다니다가 원주기독병원 의사 한 분을 소개받게 되었어요. 그때부터 서울에서 원주까지 모시고 다녔어요. 덕분에 엄마도 많이 좋아지셨고요. 그렇게 2년 넘게 엄마를 모시고 원주까지 왔다 갔다 하던 어느 날 오빠가 제안을 했어요.
"엄마가 앞으로도 원주 병원에 다닐 거면 우리가 아예 병원 근처로 이사를 가는 건 어떠니. 이렇게 서울에서 모시고 다니는 건 경제적으로도 시간적으로도 무리인 거 같아. 우리가 힘들어지면 엄마한테 짜증을 낼 거고, 엄마도 우리한테 미안해할 거고... 서로 지치기 전에 아예 원주로 이사 가서 사는 건 어때?"
오빠의 말에 그분도 그게 맞다고 생각했대요.
그래서 남매는 서울 생활을 다 청산하고 원주로 내려왔다고 합니다.
오빠는 기술이 있으니 취직을 하고, 여동생은 가게를 시작했고요.
"처음엔 적응하느라 정신이 없었고, 1년쯤 지나고 나니까 외롭더라고요. 가끔 친구들이 놀러 오기도 하고 저도 한 번씩 서울에 가기는 했는데, 그것도 점점 뜸해지고..."
"그랬겠네요."
저는 충분히 이해가 갔습니다.
"참, 저희 오빠랑 엄마한테는 우리가 중학교 때 친구인 걸로 해요. 엄마가 고등학교 때 친구는 거의 기억을 해서. 하하. 어때요? 그게 좋을 거 같은데."
저도 흔쾌히 좋다고 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오늘 처음 본 사람을 집에 데려간다는 걸 설명하기는 참 기니까요.
외로움을 설명하기란 여동생이 잘 적응했다고 믿는 오빠에게 부담을 주는 걸 테고, 당신 때문에 자식들이 낯선 타지에서 살게 됐다고 생각하실 어머니에게는 가슴 아픈 일일 테니까요.
"어, 오빠 왔네요."
가게 앞으로 소형차 한 대가 서고, 둥글둥글 선하게 생긴 30대 중반의 남자가 허둥지둥 들어왔습니다.
"안녕하세요."
급다소곳을 장착하고 저는 중학교 친구답게 오빠에게 인사를 했습니다.
"중학교 때 친구야. 오빠는 처음 볼 거야."
"아, 그래? 어서 와요. 멀리 오느라 고생했네."
오빠는 그냥 그런가 보다 별로 관심이 없어 보였습니다.
빨리 집에 가야 한다는 생각뿐인 듯 오빠는 바쁘게 셔터를 내리고 서둘러 차를 몰았습니다.
차에서 내린 곳은 연립주택들이 일렬로 늘어선 주택가였습니다.
"어머니, 안녕하세요."
집 안으로 들어서자, 한 손으로는 워커(보조 보행기)를 잡고, 한 손으로는 식탁 의자를 붙잡고 서 계시는 어머니가 보였습니다. 거동은 자유롭지 않았지만 전체적으로 단단하고 안색도 좋아 보이셨어요.
"엄마, 나 중학교 때 친구야. 서울에서 놀러 왔어. 엄마는 처음 볼 거야."
어머니가 뭘 물을까 싶어 그분은 따발총처럼 제 소개를 했습니다.
어머니는 그저 반갑다는 듯, 제 손을 잡으며 몇 번이나 고맙다고 하셨어요.
"아유, 고마운 친구네. 이렇게 멀리까지 친구 보러 와주고. 밥은 안 먹었지?"
어머니는 식탁부터 가리키셨습니다.
남매는 항상 어머니와 같이 식사를 한다고 했습니다.
어머니는 불편하신 몸이지만 미리 상을 차려놓고 그 시간이 되면 기다리고 계시고요.
먼저 씻을 수 있도록 배려해 준 중학교 친구(^^) 덕분에, 드디어 발을 뽀송뽀송하게 만든 저는 쭈뼛쭈뼛 식탁에 합석했습니다.
제가 씻는 사이 오빠는 먼저 식사를 하고는 사라지셨더라고요.
아마 좁은 식탁에 제가 불편할까 봐 일부러 피해 준 것 같았습니다.
김치, 청국장찌개, 오징어채, 김, 어묵볶음...
정확하지는 않지만 전형적인 엄마표 밥상이었던 건 확실합니다.
"근데 어디서 꼭 본 거 같은디. 중학교 때 우리 집에 온 적 있지?"
"아유, 엄마가 내 친구 다 아는 거 아니야. 엄마는 처음 보는 친구라니까."
그분은 엄마가 모르는 친구라고 강조하고, 엄마는 분명히 본 적이 있다고 하고, 저는 그냥 헤헤 웃고.
그렇게 착한 거짓과 예쁜 착각과 감사한 긴장이 넘치는 식사 시간을 끝내고 우리는 방으로 들어왔습니다.
둘이 누우면 딱 맞는 좁은 방이었지만 앉았다 누웠다를 반복하며 그날 새벽까지 대화를 나눴던 것 같애요.
주요 주제는 불안한 미래였습니다.
생각보다 장사가 안된다던 그분은 이제 곧 서른이라는 게 겁난다고 했고,
저는 편집학원을 다니던 중 일찍 출판사에 취직은 했는데 출판계가 워낙 어려워서 잘한 건지 모르겠다고 하고...
뭐 그런 막막한 미래에 대한 얘기를 한 거 같애요.
몇 시간 전까지 전혀 몰랐던 사람 둘이 한 방에서 이런 대화라니.
신기한 것은 분명 제 관념으로는 있을 수 없는 일이 너무나 자연스럽게 물 흐르듯 이루어졌고 하나도 걸림이 없었다는 겁니다.
다음날 아침, 간단히 챙겨준 아침식사까지 얻어먹고 저는 그 집에서 나왔습니다.
그분은 집 앞 큰길까지 나와 손을 흔들며 배웅을 해줬어요.
헤어지기 전, 이름과 전화번호, 주소를 교환했지만 그분도 저도 우리가 계속해서 연락을 하거나 만나게 되지는 않을 거라 예감했던 거 같아요.
아무런 기대가 없는 관계.
서로에게 바라는 것이 없는 만남.
계속 이어져야 한다는 부담이 없었기에, 오히려 편안했고 깊은 이야기도 나눌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서울로 돌아온 저는 그분에게 편지를 보냈습니다.
서울에 잘 도착했고, 일상을 이어가고 있다, 원주에서는 너무 고마웠다, 내 인생에 그런 일이 또 있을까 싶다, 서울에 오면 연락해라... 이런 내용이었을 겁니다.
그리고 며칠 뒤였어요. 퇴근하고 집에 오니 그분으로부터 우편물이 와 있었습니다.
누런 봉투 속에는 한 권의 책과 책 속에 끼워진 엽서 한 장이 있었습니다.
엽서에는, 자신도 잘 지내고 있고 하필 사무치게 외롭다고 느끼던 때였는데, 많이 따듯한 시간이었다, 보내는 책은 나도 요즘 읽는 책이다... 이런 내용이 쓰여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분이 보내준 책은 <좀머 씨 이야기> (파트리크 쥐스킨트)였습니다.
그로부터 십여 년 후 드라마 대본을 쓰게 되었을 때 저는 여주인공 이름으로 그분의 이름을 썼습니다.
그냥 그 이름이 떠올랐어요.
아직 원주에 사나? 방송으로 자기 이름을 들으면 좋겠네.
그분이 이 드라마를 보게 될 확율은 0.001%겠지만 혼자 괜히 그런 생각도 했던 거 같애요.
내 인생에 너무나 인상적인 경험을 하게 해준 고마운 사람이라고.
그렇게 기억된 사람이니까요.
PS) 김진숙 씨 잘 지내시나요?
갑자기 그 옛날 이야기를 쓰다 보니, 가물가물했던 기억도 제법 떠오르네요.
중학교 친구로 하자 했지만 저보다 한 살 많았던 걸로 기억하는데, 맞지요?(^^)
어머니는 안녕하신지요?
돌아가셨을 수도 있겠다 싶습니다. 벌써 긴 세월이 흘렀으니까요.
세월이 흐른 만큼 진숙 씨에게도 많은 변화가 있었을 것이라 짐작합니다.
한 가지 솔직하게 말씀드리면 우연히 다시 만난다 해도 저는 진숙 씨를 알아보지는 못할 거 같아요.
진숙 씨도 마찬가지겠지요. 하지만, 이름도 얼굴도 기억 못 하지만, 원주에서 선물가게를 할 때 하룻밤 재워준 사람이 있다고 저를 기억하시지는 않을까 기대해 봅니다.
한밤의 꿈처럼 스쳐간 인연이었지만 우리가 나누었던 고민만은 가볍지 않았으니까요.
당시 진숙 씨가 보내 주신 책을 읽으며, 좀머 씨의 외침이 우리 심정을 담고 있다고 공감하기도 했었습니다.
- <좀머 씨 이야기> 중
그래도 우리 그때 참 잘 이겨내고 있었고, 이겨내려고 노력했던 거 같아요.
이제 다시 그 책을 읽는다면, 그때와는 확실히 달리 느껴질 것 같습니다.
우리의 고민도 아픔도 이제 옛이야기가 되었으니까요.
아무쪼록 어디에 계시든 행복하시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