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에겐 초등학교 5학년 때 만난 두 친구가 있습니다.
숙경이와 은영이.
같은 반이었던 우리는 금세 친해졌습니다.
집도 가까웠고, 똑같이 세 살 아래 남동생도 있어서,
편을 먹고 게임을 하거나 놀기도 좋았습니다.
은영이 아버지는 작은 노트 공장을 하셨어요.
은영이 집에서 숙제하다가 바쁜 공장일을 좀 도와드리면 용돈도 듬뿍 주시곤 하셨지요.
숙경이는 언니가 3명이나 있어서, 세수하고 나면 수건으로 빡빡 닦지 말고,
톡톡 물기를 걷어내야 피부에 좋다 등 미용 팁을 들려주곤 했습니다.
그러다 중학생이 되면서 띄엄띄엄 만났고,
고등학생이 되면서는 거의 연락이 끊겼어요.
저는 집안 형편에 맞춰 상고에 진학했고,
숙경이와 은영이는 인문계에 들어가면서 다시 같은 학교가 되었거든요.
그 사이 우리집은 이사도 몇 번 했던 터였습니다.
그러다 스물네 살 즈음의 어느 날이었습니다.
회사에서 퇴근하고 돌아오니 엄마가 말씀하셨습니다.
"얘, 너 초등학교 때 친구 은영이가 왔다 갔다. 널 찾았대."
은영이가?
놀랍고 신기하기도 하고 기분이 묘했습니다.
두고 간 연락처로 바로 전화를 했지요.
은영이는 내가 들어갔던 중학교에 가서, 어느 고등학교에 갔는지 물었고,
고등학교에 가서 최종 주소를 안 뒤 주민센터까지 찾아가며, 절 찾았다고 하더라고요.
이유는 단 한 가지였어요.
"나이 들어서 그런가, 네 생각이 많이 나고 보고 싶더라고. 우리 재밌었잖아."
그렇게 우리 셋은 다시 만났습니다.
은영이는 아주 우아하고 여성스러운 어른이 되어 있었고,
숙경이는 여전히 이목구비가 또렷한 인형처럼 예쁜 모습 그대로였어요.
은영이는 대학원에 다니며 미국회계사 시험공부를 한다고 했고,
숙경이는 대학에서 컴퓨터 전공해서, 지금은 은행 전산팀에서 일한다고 했습니다.
그 이후로 우리는 한 달에 한두 번씩은 만났어요.
그러다 2년 후쯤 숙경이가 만나는 사람이 있다고 발표를 했어요.
오와~ 박수를 치며 축하했지만 이내 분위기는 싸늘해졌어요.
남자가 같은 은행 다니는 사람인데, 지금 이혼 소송 중이고 4살짜리 딸이 있다는 겁니다.
남자가 곧 이혼한다며 자기 이혼하면 결혼하자고 기다려 달라고 했다는 거예요.
은영이와 저는 어이없다는 듯
"이혼 소송 같은 소리 하네, 그 말을 믿는 거야? 이혼하고 연락하라고 해."
어디서 감히 내 친구한테~~(심한 소리)~~
돌아보면 참 철없었다 싶습니다.
그때는 그게 우정이고 의리라고 생각했나 봐요.
암튼 그렇게 8년이 흐르고 서른네 살에 이르러서야 숙경이는 그 남자와 결혼을 했습니다.
부모님도 반대, 형제들도 반대, 친구들도 반대...
두 사람은 주변의 그 시간조차 존중하고 기다렸던 거예요.
결혼 전, 네가 마음고생할까 겁난다, 왜 꼭 그 남자냐고 물었을 때예요.
숙경이가 딱 한마디를 했어요.
"사랑하니까."
얼마나 단호하던지, 눈에서 막 빛이 나오더라고요.
두 사람은 많은 축복 속에서 결혼을 했고, 다음 해에는 예쁜 딸도 낳았어요.
그러다 우리가 서른여덟 살이 되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숙경이가 위암 진단을 받았고 항암치료를 시작했다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은영이와 저는 놀랐지만 요즘 세상에 위암 정도는 치료되지 않나,
건강검진으로 발견한 거니 초기일 거고, 젊으니까 잘 이겨낼 거라 생각했습니다.
몇 주 후, 숙경이 간호를 맡아주던 셋째 언니가 저에게 전화를 하셨습니다.
"숙경이가 좀 안 좋아. 누가 제일 보고 싶냐니까 네 얘기를 하네. 어릴 때 친구가 제일 생각나나 봐. 바쁘겠지만 숙경이 보러 한번 와주라."
저는 바로 병원으로 달려갔습니다.
몇 주 사이 수척해진 숙경이가 누워 있었습니다.
원래는 항암치료를 집에서 왔다 갔다 하면서 받고 있었는데, 이번에는 퇴원이 안 됐다고 했습니다.
저는 어릴 때 추억부터 우리가 다시 만나서 있었던 일, 회사일까지 수다를 떨었습니다.
실없는 농담에도 소리를 내며 웃는 숙경이가 고마웠습니다.
저렇게 잘 웃고 얘기도 잘하는데... 우리 겨우 서른여덟 살인데...
그 서른여덟을 넘기지 못하고 숙경이는 세상을 떠났습니다.
모든 게 순식간에 벌어진 일 같았습니다.
슬픔을 주체하지 못하는 내 친구의 남편, 맑디맑은 손녀를 안고 있는 내 친구의 엄마,
먹먹한 눈으로 하늘만 바라보는 내 친구의 언니들 모습이
비현실 같았습니다.
한동안 은영이와 저는 숙경이 신랑과 함께 납골당으로 숙경이를 만나러 가곤 했습니다.
하지만 그런 시간도 길게 이어지지는 않더라고요.
어느 날부턴가는 다시 은영이와의 연락도 뜸해지기 시작했고,
그냥 그렇게 각자의 세상에 몰입하며 살아갔습니다.
그러다 얼마 전이었습니다.
몇 년 만에 은영이가 연락을 했습니다.
은영이도 이혼이라는 상처를 이겨내고, 씩씩하게 살고 있던 와중이었습니다.
불현듯 내 생각이 났다며 잘 사냐? 하고 터프하게 묻더군요.
소소하게 서로의 안부를 챙기던 중 은영이가 말했습니다.
"나 폐암이었어."
뭐라고? 말문이 막혀하는 저에게 은영이가 다급히 외쳤습니다.
"과거형, 과거형."
완쾌 진단을 받은 지 6개월쯤 되었는데, 재발 우려가 있으니 조심하라고 해서, 식단 조절도 하고 운동도 하면서 잘 관리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그래, 곧 한번 보자, 건강하자.
평범한 인사를 끝으로 전화를 끊었습니다.
언제 만날지는 모르겠습니다.
내일 만날 수도 있겠지요.
그저 바라는 건, 아무 일 없이 근처 지나가다가 한번, 그냥 생각 나서 한번 그렇게 만나는 것입니다.
어떤 바람도 기대도 없이 세상을 대하던 시절, 가장 가까웠던 사람,
모든 걸 보여줘도 상관이 없던 사람,
그 시간이 너무 편안했어서 힘들 때면 불쑥 떠오르는 사람,
약해지는 순간 가장 보고 싶은 사람,
그런 사람이 친구이겠지요.
열세 살에 헤어진 내가 보고 싶어서
십 년 간의 주소를 물어물어 찾아왔던 친구가 있고
한없이 약해질 때 제일 보고 싶은 사람이라며 나를 찾은 친구가 있는,
제가 그런 사람입니다.
저를 그런 사람으로 만들어준 친구 은영이와 숙경이.
그들이 있었기에 지금의 삶도 용기 있게 걸어가나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