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고시, 본다 VS 안 본다

[소설] 결혼 자격증도 필요한 시대

by 지제이

결혼고시, 본다 VS 안 본다


국가의 위기는 경제문제, 안보문제에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국민 개개인의 가정이 흔들리면 사회가 불안해집니다. 개인의 안정과 행복이 곧 국가의 근간인 것입니다. 정부는 이것이 참결혼실현부를 창설한 이유라고 밝혔습니다.


TV 속 남자 앵커가 전형적인 앵커톤으로 소식을 전했다.

TV로 전해지는 '결혼고시' 뉴스를 보면서도 상아는 실감이 안 났다. 그것은 기안이도 미진이도 마찬가지였다.

"다들 왜 이렇게 심각해. 나한테 관심 좀 줘. 나 오늘 생일자야."

말없이 TV만 바라보는 세 사람 앞에 대훈이 커피를 내려놓았다.


기안의 고등학교 동창 대훈은 동네에서 작은 카페를 운영하고 있다. 오늘은 대훈이 생일축하 겸 모여서 가볍게 등산을 하고 저녁에는 한잔 하기로 약속했던 날이다. 하지만 누구도 등산복 차림은 아니었다.

정부의 결혼고시 발표는 일상적인 약속이나 계획 같은 건 흔들리게 하기에 충분했다.


앵커가 결혼고시 시행에 대한 시민들의 생각을 들어본다며 기자를 불렀다. 화면이 거리로 바뀌고, 기자는 미리 섭외된 시민들에게 마이크를 들이댔다.


직장여성 : 처음 듣고는 기분이 좀 이상했는데요, 지금은 이러다 흐지부지 없어지겠지 싶어요. 누가 그런 시험을 보겠어요.

직장남성 : 아무리 이혼율이 높아도 그렇지. 허허 참. 학교 시험, 대학 시험, 취직 시험. 평생을 시험 보며 살았는데 이제 결혼까지 시험을 치라는 거잖아요. 아니, 이런 발상은 도대체 누가 하는 겁니까. 제정신입니까.


상아와 미진이 동시에 기안을 쳐다보았다. 대훈은 설마 기안이 그런 생각을 했냐는 듯 눈을 동그랗게 뜨며 기안의 어깨를 툭 쳤다. 기안은 그런 거 아니라는 듯, TV나 보라고 눈짓을 했다.

TV 속에서는 이어서 연인 한 쌍을 인터뷰 중이다.


연인여 : 전 재미로라도 볼 수 있을 거 같애요. 무슨 문제 나올지 궁금하잖아요. 자기는?

연인남 : ?


남자는 시험을 보겠다는 연인에게 놀란 듯 눈이 커졌다.


연인남 : 어... 저는 서로 사랑해서 하는 게 결혼이고, 또 그 둘이 만난 건 다 인연인 건데, 그게 어떻게 시험이 된다는 건지, 그런 걸 시험으로 친다는 건지 이해가 안 됩니다.

연인여 : 마음만으로 결혼하면 안 되니까 이렇게라도 하는 거겠지. 그런 거 아닐까요?


대훈이 더 볼 것도 없다는 듯 TV를 꺼버렸다.

"자, 자. 여러분이 지금 멘탈이 나간 거 같은데, 산전수전 다 겪은 이 형님이 정리해 줄게. 내가 볼 때 지금 정부에서 이상한 짓을 벌이는 거 같애. 아니면 이미 저질렀거나. 그래서 국민들의 시선을 딴 데로 돌리려고 갑자기 저런 말도 안 되는 걸 빵 터뜨린 거지."

순간, 띵~! 하고 전자레인지 소리가 났다. 대훈이 미진을 봤다.

"쉬는 날인데..."

대훈 카페에서 알바를 하고 있는 미진이 꿍얼거리며 일어났다.


쟁반 가득 미진이 담아 온 것은 딱 봐도 전날 팔고 남은 쿠키와 브라우니 등등이었다.

"다 좋은 재료로 만든 거야. 하루밖에 안 지난 따끈따끈한 거니까, 드셔들. 다들 당 땡기는 거 같은데."

대훈은 인심 쓴다는 듯 쟁반을 가리키고는 이어서 열변을 토했다.

"일단 말이 안 되는 게, 결혼을, 인륜지대사를, 엉? 나라에서 간섭을 하냐? 인권침해, 인격모독도 유분수지. 어느 왕조, 어떤 독재에도 이런 건 없었어."

"......"

"......"

"......"

약속이나 한 듯 세 사람은 아무 말이 없었다.


상아는 기안이 말이 없는 게 신경 쓰였다. 기안이는 지금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 궁금했다. 그렇다고 섣불리 먼저 입을 열어 묻게도 되지 않았다. 그렇다고 먼저 내 생각을 흘리고 싶지도 않았다.

생일자 발언권이라도 받은 듯 대훈이만 신나게 떠들어댔다.

"상아야, 너 말해 봐. 나 최대훈이 결혼을 하면 물가가 내려가냐? 내가 결혼 안 하면 통일되냐? 내가 이혼하면 부정부패 없어지냐? 아무 상관없는데, 왜 나라에서 국민 인생에 간섭을 하냐고."

"다 아는 얘기, 그만 좀 해라."

기안이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상아도 괜스레 커피 한 모금을 넘겼다.


"난 볼래요, 그 시험."

선언하듯 미진이 단호하게 말했다.

여섯 개의 눈동자가 자신에게 향하자 미진의 표정은 더욱 결연해졌다.

"이것도 엄연히 국가고시잖아요. '고시'라고 붙일 정도면 나라에서 얼마나 검증하겠어요. 전문가들이 붙어서 최소한 이상한 사람들은 걸러내겠죠. 술꾼, 도박꾼, 사기꾼, 바람꾼, 사이코패스... 기타 등등."

그렇게 생각한다고? 다들 벙찐 표정으로 미진이를 보았다.


"허어... 듣고 보니 또 그러네. 그럼 나도 볼까?"

얇디얇은 귀를 인증하듯 금세 태도를 바꾸는 대훈이 모습에 모두 실소를 흘렸다.

"생각해 보니 재밌을 거 같기도 하네. 미진아, 까짓 거 너랑 나랑 봐보자."

대훈이 상아와 기안을 가리켰다.

"얘네 둘은 날만 잡으면 되니까 필요 없을 거고, 우리 둘이라도?"

"어머머, 뭐예요. 결혼고시 플러팅이에요?"

미진이 까르르 넘어가고, 순간 어색한 기류가 흘렀다.


군 제대를 한 달 앞두고 첫사랑에게 살벌하게 차인 전력이 있는 대훈은, 그 상처 때문인지 짧은 만남과 헤어짐을 몇 번 반복했을 뿐 누구와도 진지하게 이어가지를 못하고 있었다.

그럴 때마다 기안은 첫사랑을 잊으라고 했고, 대훈은 인연을 못 만난 것뿐이라고 했었다.

대훈이 미진이를 여자로 생각하지 않고 있었고, 미진 역시 마찬가지였지만 플러팅이라는 농담 한마디에도 순간 공기가 묘해지니, 남녀의 상열지사는 참으로 알 수가 없는 것이다.


'참결혼실현부'에서 문자메시지가 왔다


상아가 분위기도 바꿀 겸 입을 열었다.

"사법고시 없어진 지가 언젠데, 결혼고시라니. 웃긴다."

"맞네. 난 이번에 꼭 봐야겠어요. 나중에 결혼스쿨 다녀야 되는 건 더 싫어."

미진의 결혼스쿨이라는 말에 모두 한바탕 웃을 때였다.

띠리릭! 띠리릭! 따라랑! 띠릉!

문자가 왔음을 알리는 알림이 0.5초 차로 네 번 울렸다.

네 사람은 동시에 각자의 휴대폰을 들여다봤다.


[참결혼실현부 - 결혼고시- 안내]

[이 메시지는 법적으로 배우자 혹은 동거인이 없는 25-55세 대한민국 국적 남녀에게 일괄 발송됩니다.]

[먼저 금번에 시범적으로 실시코자 한 '결혼고시'는 의무가 아니라 권장 사항임을 알립니다.]

[응시를 원하는 분은 24시간 내에 아래 응시 여부 난에 '가'를 선택해 주시기 바랍니다.]

[선택한 분에 한해 다음 안내로 이어집니다.]

[검증된 결혼은 안정된 사회, 부강한 복지국가를 만드는 초석이 됩니다.]

[국민 여러분의 많은 관심 바랍니다.]

[참결혼실현부 장관 - 민영화 -]


"24시간 안에 결정하라고?"

"길게 생각할 건 아니라는 거지."

상아는 어이없어했지만 기안은 담담하게 반응했다.

대훈은 자세를 고쳐 앉았다.

"의무는 아니다? 빠질 사람은 빠지라는 건데... 도전 정신 자극하네."

"진짜 하네. 나 떨려요."

미진이는 휴대폰 속으로 들어갈 것 같았다.


움직이는 법이라도 잊은 듯, 네 사람은 한동안 휴대폰에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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