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욕탕에서 숱하게 많은 동성의 누드를 많이 보아왔지만, 누드모델을 직접 본 적이 없다. 그리고 그려본 적은 더더욱 없다.
친한 미술교사가 운영하는 카페에 들렀다가 누드크로키를 하는데 동참할 것인지 물어 합류하게 되었다. 호기심으로 시작을 했는데 쉽지가 않았다. 누드모델은 사십대후반쯤으로 보이는 이제 적당히 찐 살들이 탄력을 잃고 지구의 중력에 버티질 못하고 처지고 있는 중이었다. 매끈한 몸이 아니라 오히려 인간적이고 친숙하게 느껴졌다. 어디서나 쉽게 볼 만한 그런 중년의 여성이었는데, 인공 속눈썹을 붙이고 머리가 길어 가끔은 묶기도 하고 풀기도 하며 다양한 포즈를 취했다. 그런 그 여성모델의 옆모습은 참 예뻤다.
누드모델은 자세를 2.3 분만다 한번 씩 바꾸어가며 포즈를 취했는데 그 포즈를 시간안에 스케치북에 담기에는 내 손이 무능했고, 그리하여 정신없이 갈기다시피 선을 몇 개 그리다보면 끝이 났다. 한 시간쯤 하고 휴식시간을 10분 가지고 또 다시 한시간을 더 그렸는데, 모델이야 당연히 힘이 들겠지만 서툰 솜씨로 그려대는 나는 정말 힘이 들었다. 부족한 능력에 애를 바둥바둥 써대니 진이 빠졌다. 그렇게 내게 누드크로키는 결코 쉬운 분야가 아니었다.
하긴 세상에 쉬운 것이 어디 있겠는가? 재미삼아 시작한 누드크로키가 두 시간쯤 되면 즐거움이 아니라 중노동이 되는 것 같았다. 그래도 다 그린 후에 내가 그린 그림들을 펼쳐놓으면 흡족하니 맘에 들어야 하는데 그리 훌륭한 작품도 나오지도 않았다.
다른 사람들의 것들과 비교를 하면서 어떤 사람들의 것은 참 멋지게 보이고 상대적으로 내 것은 많이 부족해 보이기도 했다.
아주 가끔은 내 것이 훌륭해 보일 때는 맘속으로 우쭐해지기도 했다. 그러나 그런 날은 지극히 드물었다. 인생은 타인과 비교하는 순간부터 불행해진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누구와 비교하는 인생은 행복이 늘 불안정하다. 정말 내가 인정하는 나의 모습 나의 삶이 스스로 빛나고 가치있는 것이어야 한다. 타인이 아무리 형편없는 것이라고 해도 내가 나를 인정하고 존중하고 격려해줘야 불안하지 않은 행복을 누릴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그래서 타인과 비교하는 삶을 살지 않고 싶은데, 눈에 훤히 보이는 누드크로키 결과물들을 끝난 후 바닥에 동시에 펼쳐놓으면 비교안할래야 안할 수가 없었다.
늘 한 여성 모델이 고정적으로 왔는데 어느날 지루함을 느낀 회원들이 남성모델을 한 번 불렀으면 좋겠다는 제의를 했다. 나역시 호기심이 발동하여 그거 참 좋겠다는 생각으로 한표를 던졌다. 매번 같은 모델이 오니 포즈도 늘 보던 포즈이고 비슷한 그림을 그리게 되니 식상해져가고 있었던 터에 잘 되었다 싶었다.
드디어 어느날 모임장소에 가보니 남자분이 한 분 와있었다. '어라????????' 정말 모델같지 않은 모델이 한 명 와있었다. '저분이 모델?????????' 모델이라고 하기엔 너무나 작은 키에 들쑥날쑥없는 불어터진 어묵같ㅌ은 몸매를 가진 이제 대학 1학년쯤 되어보이는 남자가 그야말로 뻘쭘하게 서있는 것이 아닌가? '에이 설마...... 아니겠지!' 했는데 나의 의심은 현실이 되었다. 그분이 그날의 모델이었다. 그것도 그 큰 도시 서울에서 온 모델!
음악이 흐르고 그분이 옷을 벗고 모델을 섰다. 정말 근육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몸매였다. 그런데 그렇게 정말 둥실둥실한 몸매로 이상한 포즈를 취하고있는데 믿기 어려운 현상이 그분의 몸에서 일어나는 것이었다.
죽어있어야 하는 그분의 그것이 서서히 일어서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급기야 그곳의 끝에서 끈적거리는 액체가 한방울 나오더니 밑으로 쭉~~~ 늘어져서 떨어지지도 않고 달랑 달랑 매달려있다.
모양은 밤새 내린 이슬로 풀잎끝에 매달려 대롱대롱 매달려 햇살에 빛나는 아침이슬과 비슷하건만, 그것 역시 빛나는 조명아래 아침이슬처럼 투명하게 대롱대롱 매달려 빛이 나고 있건만 느낌은 영 다른 그것이었다.
우습기도 하고 거북하기도 하고 뭐라 내색할 수도 없고, 두시간의 시간이 약속되어있었지만, 한시간하고 휴식시간이 왔을 때쯤 지인으로부터 전화가 오길레 그 전화를 핑계로 그림도구를 들고 그곳을 빠져나오고 말았다. 생각해보면 참 재미난 경험이었다.
후일 시간이 허락하면 누드크로키를 다시 시작해야 할 것 같다. 꼭 무엇이 되기 위해서 하는 것은 아니다. 그저 내 삶이 좀 더 풍요롭고 다양한 경험을 하며 즐겁게 살고 싶기에 여러가지를 시도하는 것이다. 누드크로키도 그 다양한 시도중의 하나이다. 그리고 그림을 꼭 전문가만 그림을 그리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사람들의 편견과 고정관념에서 좀 더 자유로워지고 다양한 시도를 하면서 내가 가지고 있던 틀을 한꺼풀씩 벗어보고 싶다. 그런다고 내가 완전한 자유인이 되지는 않을 것이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