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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와 달과 풀 Dec 01. 2022

섬이여 안녕~

이 섬에 눈이 어제 오후부터 내리기 시작했다.  육지에서는 잘 내리지 않는 눈이 이곳에서는 곧 잘 내린다.  눈은 많이 내리지만 그리 기온이 낮지 않아 육지에 비해서 포근하다.  그래서 내린 눈은 빨리 녹기도 한다.

이곳의 겨울생활은 늘 눈을 보고 산다.  겨울이 되면 길에 눈이 없어도 높은 산에는 하얗게 눈에 덮여 있다. 그런 하얀 겨울이 왔다.

나는 이 섬을 이제 30일후면 떠나게 되었다.

하루 하루 너무 소중한 시간이다.

어떤 이는 이 섬에서의 하루하루가 너무 괴롭고 답답해서 나갈 날을 손꼽아 기다리는 사람도 있는데 나는 이 섬에서의 하루하루가 너무 아깝고 소중하다.

처마밑에 잘 말라가고 있는 주홍색곶감을 아껴 아껴 하나씩 빼먹는 것처럼 매일이 달콤하고 하루가 지나고나면 아쉽다.

시계침을 멈춰서 이곳에서의 생활이 길어졌으면 좋겠다.

지금 내린 눈은 첫눈이라 그리 많이 내리진 않았지만 이곳은 늘 눈이 수시로 내리는데 그 눈을 볼 수 없다는 사실이 너무나 안타깝다.  작년 겨울 건물에서 내려다본 밖의 풍경을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다.  창틀위에 두터운 목화솜털처럼 수북이 쌓인 눈과, 멀리 보이는 검은 바다와 촛대바위, 그리고 경사진 곳에 위치한 두터운 눈이불을 덮은 작은 집 지붕들을 나는 이제 보기 어렵게 되었다.

살던 곳을 떠나게 되면 반은 후련하고 반은 아쉬움이 남는 법인데 지금 나는 거의 아쉬움만 가득하다.   이곳을 떠나기로 결정을 내려야 하는 그날부터 나는 계속 이렇듯 아쉬움에 괴로워하고있다.

그래서 나는 아침 출근할 때마다 만나는 직원에게 첫인사로 "아~ 너무 괴로워요. 이 섬을 떠나기 싫어요."로 시작한다.

그러면 그 분은 가끔은 "고만 일년 더 있으소" 하든가 아니면 "거 참 이상하네 다른 사람들은 떠날 때 되니 좋아죽두만."하며 응대를 하신다.

가끔 나는 내 속을 알 수가 없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어떤 환경에 처해서 어떤 마음을 가지게 되는지 알지 못한다.  그렇게 나 자신을 알지 못하니 이리 이 섬을 떠나는 것을 안타까워하게 될 줄도 나는 미리 알지 못했다.

그리고 지난날 나는 한 두번은 이 섬을 빨리 떠나고싶은 마음이 들 때도 있었다.  그러나 막상 결정을 하고 이제 돌이킬 수 없는 일이 되고나서 나의 마음은 떠나기 싫어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다.

참 이상한 일이다.

이 섬이 좋다고 하여 특별히 이곳에서 무엇을 하는 것도 없다.  매일을 이 섬을 돌아다니는 것도 아니고 그저 아주 가끔 이 섬의 이곳 저곳을 혼자 다닌 적은 있지만 그저 이 섬에서 있는 자체가 나는 좋은 것 같다.

나리분지에 있는 나리상회에서 연한 커피 한 잔을 사서 나리상회 앞에 펼쳐진 풀들을 아무 생각없이 바라보며 넋놓고 있던 시간, 야영장식당 앞에서 혼자 앉아서 나무를 그리던 시간들, 천천히 휴대폰 음악을 들으며 시들어 가는 노란색 털머위 꽃길을 혼자 걷던 시간들...  이런 시간들은 내가 살아온 시간들 중 너무나 소중하게 각인되어있다.   

이곳의 생활은 누구와 함께 해서 즐겁고 행복하였다기 보다 혼자 고요히 자연속에 뭍혀서 자연 속에 푹 빠질 수 있어서 좋았던 것 같다.  때론 초대받지 않은 자연의 일부인 작은 벌레들이 나의 공간에 침임해 나를 괴롭힐 때는 진절머리가 나기도 했지만, 그건 어찌 보면 내가 그들의 영역에 들어간 탓이지 그들의 탓은 아닌 것이기도 하다.

나는 깊이 이 섬을 사랑하고 있는 모양이다.

애별리고를 나는 깊게 경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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