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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와 달과 풀 Dec 15. 2022

엄마 생각

도동에 읍사무소, 군청, 경찰서, 우체국 등이 한 골목에 있다.  이 골목은 차량이 지나다닐 수 있는 정도의 넓이인데, 이 골목의 공용주차장에 차를 주차하고 볼일을 보고 경사진 길을 따라 올라오다가 눈에 들어오는 정겨운 식당 이름을 하나 보았다.  '안동할매'

예전 큰언니와 작은언니가 울릉도 여행을 와서 이곳 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갔는데 맛있었다고 한 기억이 났다.  성큼 그 안동할매집 식당을 문을 열고 들어서니 김장을 한 듯 테이블 위엔 놓인 커다란 다라이이에 김치를 버무리고 난 고춧가루양념이 붙어있었다.  주인 할머니는 앉아서 김밥을 말고 계셨는데 보글보글 파마한 머리카락이 공중에 붕붕 떠서 귀여운 코알라머리 같다.  할머니 맞은 편에는 어떤 아주머니가 앉아서 할머니가 김밥 마는 것을 정겹게 쳐다보고 있었다.

성큼 식당으로 들어서니 할머니가 내 얼굴을 보시고는 "지금 식사 안되는데...." 하시며 말끝을 흐리신다.   밑져봐야 본전이라는 생각에 "그럼 김밥 한 줄도 안되나요?" 여쭈며 할머니 옆자리 의자에 허락없이 앉았다.  할머니는 내 눈을 언제 보셨는지 "하이고 오늘 김치를 담궈서 힘도 없고 밥도 없는데....  그런데 니 눈을 봉께 밥 안주고 보내면 내가 맘이 쓰일 것 같다.  밥 남은 걸로 김밥 한 줄은 나오겠다."하시며 남은 밥으로 김밥 한 줄은 말아 주신다고 하신다.  할머니는 처음 보는 오십넘은 나를 보시곤 말을 놓으시는데 이상하게 친밀하고 다정하게 느껴진다.

 할머니 맞은편에서 지켜보고 있던 아주머니는 "김밥쌀 밥이 없다 하셔서 우리집 밥 가져와서 김밥말아달라고 했어요."라며 할머니 식당에 밥이 없음을 확인시켜주셨다.

 배가 딱히 고픈 것은 아니었지만 할머니 음식이 먹고싶어서 버티고 앉아있으니 할머니가 남은 밥으로 김밥 한 줄을 말아주신다.  그리론 "니 쫌 기다리도 되면 내가 매밀수제비는 한 그릇 만들어줄 수 있대이." 하시기에 "네 그것도 해주세요."라며 거절하지 않았다.   사실 배가 고프지도 않았고 딱히 수제비를 그리 강렬하게 먹고싶지도 않았지만 할머니의 솜씨가 궁금해서 먹어보기로 했다.

 할머니가 김밥을 다 말고 탁자를 지우고 나는 자리를 옮겨 김밥을 먹기 시작했다.  할머니는 "니 저기 가가꼬 반찬 좀 담아라." 하신다.  할머니가 가르키신 곳으로 가보니 흰 반찬그릇과 집게 그리고 뚜껑덮인 반찬통이 놓여있다.  나는 뚜껑을 열고 골고루 반찬을 담았다.  그중 단무지는 딱 두개만 담으라고 하신다. 남으면 버려야 한다고 하시며...

나는 참기름 냄새가 솔솔 나는 김밥을 꼭꼭 씹어먹고 있으니 할머니가 내 맞은 편에 와서 나를 가만히 들여다 보시더니 이런 저런 얘기를 마치 막내딸 대하듯이 하신다.   그 소리가 어찌나 정답게 들리던지 나는 그만 눈에 눈물이 나는 것이었다.    그 사이 동네 할머니 한 분이 놀러와서 내 앞에는 할머니 두분이 앉아계신다.   그 두분을 앞에 두고 나는 김밥을 먹는데 할머니는 "김치 이거 아까 내가 먹던건데 니 묵어라. 내 깨끗게 먹었데이"  하시며 그날 버무린 김장김치를 내앞으로 내미신다.   그리고 할머니가 드시던 칼치도 맛있다며 주신다.

 그렇게 자꾸만 무엇을 내밀며 먹으라 하시는 모습이 마치 돌아가신 엄마가 앞에 계신 듯 하여 자꾸 눈물짖게 했다.   엄마가 돌아가시고 나는 엄마를 그리 많이 그리워하지 않았다.    한번은 꿈에 엄마가 나왔는데 내가 사준 옷을 입고 환하게 웃으시는 행복한 모습이었다.  

내가 밥을 먹으면 내 앞에 앉아서 밥을 많이 먹고 살 좀 쪄야 한다며 더 먹기를 바라셨다.  그런 엄마에게 "엄마 소식하는 것이 천천히 늙고 장수한대"라며 엄마의 생각을 바꿔주려고 했는데 엄마의 생각은 좀처럼 바뀌지 않았다.

그런 나의 엄마처럼 그 할머니가 내 앞에서 내가 밥먹는 것을 다정하게 지켜보시며 이것 저것 더 먹으라며 말씀을 하시니 뜻하지 않게 엄마가 생각나서 눈물이 나니 당황스러웠다.   눈물을 감추려고 나는 일부러 휴대폰을 켜고 뉴스를 읽었다.  잠시후 할머니는 매밀수제비를 그득이 가져오셨다.  얼마나 양이 많은지 반을 먹고 나머지는 포장을 해달라고 부탁을 드려서 집으로 가져왔다.   할머니는 다음날 선지국을 끓이신다며, 선지국은 항상 끓여놓고 안 떨어뜨린다고 하시기에 나는 다음날 저녁에 선지국 먹으로 다시 오겠다고 말씀드리고 그 가게를 나왔다.


다음날 나는 퇴근후 도동으로 갔다.  가서 몇가지 볼일을 보고 다시 안동할매 식당을 찾았다.  문을 열고 "저 선지국 먹으러 왔어요."말하며 조용히 웃고 들어가니 할머니가 나를 보고 반가워하시며 부엌에 들어가신다.  할머니는 연세가  많으셔서 다리가 불편해 보이시는데 선지국을 뚝배기에 듬뿍 담아나오시는 모습이 힘쓰여 얼른 다가가 내가 받아왔다.    여전히 반찬은 나에게 담으라 하신다.   

역시 양은 많다.  다 먹지못할 정도이다.   한참을 먹고 있는중에 남자손님 둘이 들어오며 뭘 먹을지 고민을 한다.   내가 조금 큰 소리로 "여기 선지국 해요" 라고 말하니 선지국 두 개 주세요 한다.   할머니를 따라 부엌에 들어가서 쟁반을 들고 기다렸다가 테이블에 선지국을 배달했다.  그리고 반찬도 담아서 배달... 흡사 할머니의 종업원처럼 음식을 배달하고 밥이 필요하다기에 밥도 두 그릇을 가져다드리니 한 공기만 필요하다고 해서 다시 밥솥에 부었다.

 선지국을 반은 남기고 할머니께 싸달라고 부탁을 드리고 그 남자손님이 가신 후 테이블도 치웠다.  나는 밥을 다 먹었음에도 나가지 않고 뭘 할지 여쭤봤다.  

어떤 남자분이 한 분 문을 열고 "라면 되요?" 하신다.  할머니가 "라면은 안팔아요.  먹고싶으면 사오덩가" 하시니 그 분이 다시 밖으로 나가셨다가 라면을 들고 들어오신다.  내가 그 라면을 받아서 할머니께 드리니 손잡이가 길다랗게 달린 커다란 냄비에 물을 받아서 끓이신다.   그리곤 나한테 라면을 넣으라고 하시며 다른 야채도 좀 넣어야 맛있다고 하시며 야채를 준비하신다.   라면이 보글보글 끓으니 내가 할머니옆에 쟁반을 들고 기다렸다.   할머니가 두 그릇에 라면을 담아주신다.  내가 그것을 손님테이블로 옮겨다 드리고 반찬도 가져다 드렸다.

그렇게 나는 한시간정도 그 할머니의 종업원이 되어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할머니는 내게 누군가를 주려고 담아놓았던 미역국과 조림콩을 주시며 가져가 먹으라고 하신다.   거절하지 않고 고맙게 받아들고 그곳을 나왔다.   흐뭇한 날이 저물고 길에는 어둠이 내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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