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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와 달과 풀 Dec 14. 2022

D-day 27

2022-12-4

이 섬의 바람은

거칠지만 포근하다.  매섭지만 촉촉하다.

그런 바람이 많이 부는 날이다.

 울릉도에 있는 대부분의 산에는 예전 도로가 뚫리기 전 울릉도 주민들이 다니던 오솔길이 군데 군데 있다. 그 오솔길은 좁으며 고불고불하다.  그리고 예전 울릉주민들이 다니던 일부 오솔길은 위험하여 폐쇄되었다.  지금은 울릉도 순환도로가 뚫려있어 사람들이 차량을 이용해 다녀서 예전보다는 덜 다닌다.  보통 등산이 목적이거나 나물캐러 가는 사람들이 다니는 듯 하다.

예전 울릉도 주민들은 이 산길로 다녔기에 삶이 얼마나 힘들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바람부는 날도 많고 비오고 눈오는 날도 많다.  눈이든 비든 바람을 동반하면 우산을 쓰기도 힘들다.  한 번은 비바람이 불던날 우산을 앞으로 들고 힘을 줘가며 간신히 앞으로 걸아가는데 우산살이 접혀져 꺽어져 고장이 나고말았다.  그날 이후로 난 그 고장난 우산을 쓴다.  새 수동우산이 몇 개 더 있지만 그 고장난 우산은 자동우산이고 색깔이 고운 핑크빛이라 그 우산에 정이 간다.  그래서 꼭 우산살이 살짝 굽어진 그 우산을 사용한다.


오늘은 예전 가다가 만 석포에서 내수전 전망대로 넘어가는 길을 가기로 했다.

예전에는 내수전 전망대에서 석포가는 길로 가다보면 조난발생우려 표지판이 있는 폐쇄된 구역인 와달리 가는 길이 나온다.   그곳으로 내려갔다가 길이 산사태도 났고 나무가 넘어지면서 사라진 길이 나를 공포로 몰아넣었었다.  다행히 무사히 그곳을 빠져나와 집으로 돌아왔지만 산을 내려온 나의 온몸엔 초록색 벌레와 나뭇잎이 덕지 덕디 붙어있었고, 내 손은 산사태난 곳에서 미끄러지지 않으려고 아무 것이나 잡다가 가시나무에 찔린 상처가 영광스럽게 나있었다.  

 몇 주전 지인이 놀러와서 내수전 전망대에서 석포가는 길로 가다가 날이 저물 것 같아 되돌아갔었는데, 이번에는 아침일찍 출발해서 멋진 가이드 선생님과 씩씩하게 길을 나섰다.

일단 저동 약국앞에서 7시 15분에 석포로 가는 버스를 타야하는데 버스정류장에 친구랑 가보니 선생님이 아직 안오신 모양이었다.  나는 등산화를 신지 않아 집으로 가서 등산화로 갈아신을까? 하는 고민을 했었는데 잠시후 오신 선생님이 가는 길이 험하지 않아 운동화로 충분히 다녀올 수 있다고 안심시켜주셔서 그대로 버스에 올랐다.  

바람이 쎄게 불고 파도는 춤을 추다가 길위로 물방울을 안개처럼 흩뿌린다.   쎄게 부는 바람에 출렁이는 등산이 조금 걱정은 되었지만, 바람이 쎄게 불어도 맵고 차지 않고, 파도가 춤을 추어도 그 빛깔이 너무 이뻐 그 또한 생명력 넘치고 활기차보이기만 하다.  무엇때문에 못하는 것이 아니고 바람에도 불구하고 나는 등산을 간다.   

 저동에서 출발한 버스는 이십분정도 가서 석포로 올라가는 삼거리에서 우리를 내려주었다.  골바람이 우리가 있는 그곳에 쎄게 불어와 산절벽 뒤에 몸을 숨겼다.  삼거리에서 석포로 올라가는 사람은 우리 세 명 밖에 없다.   지금은 관광객들도 별로 없고 이렇게 바람이 부는 날 밖에 다니는 사람도 그리 많지 않다.

얼마쯤 시간이 지났을까?   꽤 기다렸는데도 버스가 오지 않으니 선생님은 사람이 없어서 석포가는 버스가 운행을 안하는 것이 아닌가? 하며 걱정을 하신다.   걱정을 하던 중에 차에 저쪽에서 버스가 코너를 돌아오는 것이 보인다.

무척이나 반갑다.  버스에 올라타니 운전기사분이 천부에서 다른 기사를 통해 석포가는 승객 세 명이 있다는 얘기를 듣고 왔다며 어디로 가냐고 물으신다.

오호라!

이렇게 운전기사분들이 서로 승객의 소식까지 소통하시는구나!

바람직하다.

우리는 석포에서 출발해 내수전 전망대로 등산을 할 예정이라고 하니 잘 다녀오라는 말씀을 해주신다.

버스가 십여분간 산을 고불고불 올라가서 석포에 내리니 바다가 내려다보인다.  그 바다 중간에는 죽도가 동그랗게 바다 중앙에 있다.  이쁘다.

섬도 이쁘고 산도 이쁘다.  그런데 겨울철 울릉도의 산은 나뭇잎은 졌으나, 풀들은 싱그러운 초록색이다.   바다에서 불어오는 촉촉한 해풍이 겨울에도 풀들을 먹여살린다.

석포 길 입구 바람이 쎄게 부는 그곳에 개 한마리가 묶여있다.  개 주인집인 듯한 집은 오십미터정도 떨어져있다.  그 개는 혼자 그 차고 강한 바람을 맞으며 버티고 있었다.  얼마나 외로웠는지 처음 보는 낯선 사람에게 짖지도 않고 꼬리를 흔든다.   안타까운 마음이 들지만 그저 사진에 담고 동행한 분들을 따라 총총히 그곳을 지나쳐왔다.

석포에서 내수전 둘레길로 가는 길은 완만하다.   내가 하도 호들갑스럽게 위험하고 경사진 길은 못간다고 엄포를 놓아서인지 선생님이 안내하는 그 길은 완만하고 겨울철인데도 황량하지 않고 아름답다.

가는 길에 종종 동백꽃이 시들지 않고 송이째 떨어져서 길을 수놓고 있고, 언덕에는 새찬 바람에 건강하고 푸른 커다란 고사리들이 떼로 몸을 바람에 이리 저리 춤을 춘다.

얼마쯤 갔을까?

산 골짜기에서 아주 작은 물이 졸졸 흐른다.   울릉도는 물이 참 풍부하다.  땅위에서 솓아오르는 용출수가 있어 계곡의 물이 마르지 않고 맑게 흐른다.

그곳에서 가까운 곳에 신기하게도 인가가 있다. 절벽같은 그곳에 바다를 보고 집을 지어놓았다.  집은 이층 집인데 한 층은 주인집으로 한 층은 팬션을 운영하고 있었다. 집 입구에는 털이 무성한 진돗개가 늠름하게 컹컹짖으며 반긴다. 

내가 개띠라 그런지 개들이 나를 보면 반긴다.  몇초만에 친해진 나는 그 진돗개를 쓰담쓰담하고 있다.  그 개는 연신 내 몸에 달려들고 좋아라 한다.

겨울이 되어서 그런지 털은 윤이 나고 빼곡하게 나 탐스럽다.   개짖는 소리에 주인 아주머니가 나오셨다.  주인아주머니께 집구경해도 되는지 양해를 구하고 집 구경이 끝나고 커피를 사서 마셨다.  그곳 주인은 그렇게 인적이 드문 곳에 외따로 집을 지어놓고 팬션을 운영하고 차를 파신다.  카페라고 하기에는 테이블이 없고, 그저 팬션같은 그곳에서 차를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파는 모양이다.  그 주인아주머니와 몇 마디를 나누다보니 이 좁은 동네에 내가 아는 사람을 두 사람이나 알고 계신다.  정말 좁은 세상이다.

진한 아메리카노를 다 마시질 못해 손에 들고 진돗개와 이별인사로 쓰담쓰담 몇 번을 더 해주고 다시 길을 나섰다.  가는 곳곳에 드문 드문 울릉도지역 식물들의 생태에 대한 안내 표지판 혹은 울릉도 지역 식물에 대한 안내 표지판도 더러 보인다.

한참을 걸어가니 예전 와달리로 내려갔던 통제된 길 입구가 나오고 그곳은 몇 달전 내가 갔을 때보다 풀이 더 무성하게 자라있었다.   오솔길을 따라 자박자박 한참을 걸어가니 작은 정자가 나오고 길다란 다리가 나온다.   그곳 정자옆에 있는 키가 큰 나무에는 아직 단단한 땡감이 홍시가 되지 않고 주황색으로 조롱조롱 달려있다.  어떻게 아직 홍시가 되지 않았는지 의아하다.

  그곳에서 선생님은 홍시를 바닥에서 주워서 하나 맛있게 드시고 그리고 친구는 쫀득쫀득한 박하젤리를 나눠먹었다.  산에서 먹는 음식은 아주 꿀맛같다.

간식을 먹고 다리를 지나 내수전 전망대 입구로 나왔다.  산길이 끝나니 그곳은 시멘트 포장길이 몇백미터 이어져있다.  그리고 시멘트 포장길을 지나 다시 산길 계단으로 내려오니 계단에 동백꽃이 송이째 떨어져서 꽃계단이 되어있다.   그렇게 우리는 저동으로 걸어왔다.

 다 내려올 즈음에 오후 또 어디를 갈까요?  하고 선생님께 여쭈니 잘 걷지 못하고 거북이걸음 걷는 나는 이제 더이상 움직이면 무리가 될 것 같다고 하시며 오후는 쉬자고 하신다.

 할 수 없이 그날 일정은 이것으로 마무리하였다.    

 오후는 친구와 함께 저동 목욕탕으로 갔다.   울릉도 물은 육지물에 비해서 부들부들 미끈미끈하다.   목욕탕에 다녀와서 따스한 방에 두 다리를 집어넣고 있으니 몸이 노곤노곤하다.   나른한 낮잠을 잔다.  낮잠도 무지 달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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