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미취

나의 삶 돌아보기

by 도이

결혼을 하고 초기에 남편에게 직장생활에서처럼 업무분장을 하자고 반농담 반진담을 했다.

남편은 웃으며 "밤일은 내가 도맡아 할께"했다. 나는 그것을 우스개소리로 여겼지만, 그것은 우스개소리가 아니고 현실이었다. 실재로 남편은 가사분담에 대한 개념 자체가 없었다.

내가 식사를 준비하니 설겆이를 좀 하라고 했더니, "우리 엄마도 안시키는 일을 너가 시키냐?"라며 화를 내었고, 아무 일도 하지 않았다.

결혼을 하던 그 해에 임신을 했고, 나는 야간대학교 3학년 재학중이었다.

직장생활과 야간대학교 그리고 집안살림까지 힘이 드는 날의 연속이었다.

2000년 4월에 결혼을 하고 2001년 3월에 첫째를 낳았으며 내게 신혼의 달콤함은 없었다.

그저 결혼이란 나의 삶에 짐이 더 늘어난 것일 뿐이었다. 낮에는 직장, 밤에는 대학교 밥차려줘야 하는 사람 하나 늘었고, 임신이라는 짐이 더해진 것이었다.

그렇게 힘이 든다고 해서 야간대학을 포기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때 그만두면 나는 영원히 내 손에 대학졸업장을 쥘 수 없을 것 같았다.

지금 생각해보니 힘이 드는데도 포기를 하지 않고 있었으며 내 능력밖의 것들을 놓지 않았던 것은 욕심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때 나는 나의 고된 삶을 누구에게 털어놓고 싶었다.

아무리 친한 사이여도 나의 가정생활을 털어놓는 데는 주저가 되었다. 그래서 익명의 모르는 사람이 때론 속마음을 털어놓는데 더 편할 때가 있다.

어느날 나는 사무실에서 점심후 휴식시간에 체팅에 접속을 했는데, 그곳에 '개미취'라는 대화명을 쓰는 사람을 알게 되었다.

개미취는 아이가 두명이며, 첫째는 외국에서 낳았고, 둘째는 한국에서 낳았다고 했다. 외국에서 첫 아이를 가정분만으로 낳았으며 아내가 분만하는 옆에서 함께하며 출산을 직접 도왔다고 했다. 그렇게 아내의 출산의 힘듦을 지켜보면서 알았고 도움을 주러 방문한 산파의 도움을 받아 아내의 분만을 함께하였고 첫 아이를 품에 안을 수 있었다고 했다.

그렇게 낳은 첫 아이에 대한 애정이 남다르다고 했다. 아이가 나온후 태반을 집 앞 화단에 묻었다고 했다. 그곳에 나무를 심고 그 나무는 첫째아이의 나무가 되었다고 했다. 둘째 아이는 한국에서 일반 병원에서 출산하였으며 출산하는 순간 아내와 함께 하지 못하였다고 했다.

두 아이중 직접 출산에 참여한 첫째 아이에 대한 애정이 둘째에 비해서 남다르다는 내가 경험해보지 못한 이런 생소한 경험담을 재미나게 들었고, 힘이 드는 나는 개미취로부터 조금의 위로를 받을 수 있었다.

나는 알지도 못하는 그에게 나는 나의 고민을 하소연했다. 남편이 있으나 전혀 가사분담을 하지 않고 아내를 위해줄 줄 모른다고 하소연을 하니, 개미취는 조언을 해주길 두주의 시간을 갖고 남편에게 잔소리를 하지 말고 그저 잘 해줘보라는 거였다. 그러면 남편이 느끼는 것이 있어 아내에게 잘 해줄 것이라는 것이었다.

아무튼 나는 개미취의 조언대로 남편에게 희생과 봉사정신을 가지고 두주를 잘 해보기로 결심을 했다.

앞으로 두주다.

두 주동안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것을 잔소리없이 잘 해주면 남편이 변할 것이라는 개미취의 조언을 접수했다.

"한 번 해볼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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