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석증 수술을 하다.

모유수유와 젖 고문

by 도이

2002년 5월 둘째를 순산한 나는 출산한 몸 같지 않게 무척이나 가뿐했다.

그런 내 몸에 변화가 온 것은 고작 출산 후 한 달이 되어가던 어느 날이 밤이었다.

나는 갑자기 극심한 배의 통증을 느꼈다. 침대에 누워서 숨이 원활하게 쉬어지지가 않았다. 숨을 쉴 때마다 가슴 갈비뼈 밑에서 통증이 있어 호흡이 어려웠다. 앉아서 허리를 구부리니 조금 숨쉬기가 나았다. 그래도 숨 쉬는 것은 쉽지가 않았다. 잠시 그러다 말겠거니 했는데 통증은 지속되고 잠을 잘 수가 없었다.

할 수 없이 밤중에 종합병원 응급실을 찾았다.

응급실 의사가 엑스레이를 촬영해보자고 하는데, 영상실에 가서 나는 허리를 펼 수가 없었다. 의사는 정확한 것은 결과를 봐야 알 수 있지만, 담석증 같으니 입원을 하라고 했다. 그리고 그다음 날 아침 담당의사가 출근을 하여서 진단 결과 담석증 맞으면 수술을 해야 한다고 했다.

나는 시골의 이름 없는 의사를 신뢰할 수가 없어서 그냥 집으로 가자고 떼를 써서 집으로 오고야 말았다. 그런데 통증은 줄어들지 않았고 침대에 기대어 숨을 쉬려고 애를 썼으나 가슴까지 깊이 숨을 못 쉬고 겨우 목구멍으로 할딱거리며 앉아있으니 답답하고 잠도 잘 수 없고 통증은 계속 지속되었다.

나는 남편에게 내가 한 달 전 출산한 병원으로 가자고 말을 해서 대구의 종합병원으로 향했다.

내가 출산한 그 병원에서도 의사의 판단은 동일한 것이었다.

역시 엑스레이를 촬영했고 입원 다음날 검사 결과 담석증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그리고 차가운 수술방에서 수술을 받았다. 수술을 마친 나는 회복실에서 의식을 회복했을 때 엄청난 추위를 느껴 오들오들 떨었다. 이불속에 열풍기를 넣어놓았지만 나의 추위는 엄청난 것이었다.

그렇게 출산한 지 한 달째 차가운 수술방에서 수술을 한 후 내 몸 상태는 엉망이 되어버렸다.

퇴원을 하고 집으로 온 나의 몸은 그때 이후로 시리기 시작했고 다리는 많이 아팠다. 바람이 불지 않아도 나의 다리는 찬 바람이 불어 뼛속을 통과하는 시린 기분이 들었고 흡사 내 뼈마디는 살 없이 차가운 남극에 서있는 것 같았다.

게다가 통증까지 있어서 일어서서 설거지를 하는 것이 힘이 들어 의자를 가져다 놓고 하기도 했다.

그 다리의 시림과 통증은 이불을 덮고 편히 자는 밤에도 지속되었고, 밍크담요로 다리를 돌돌 말고 잠을 자야 했다. 그러나 통증 때문에 나는 새벽녘까지 뜬눈으로 앓아야 했고 쉽게 회복되지 않았다.

한여름 얼굴은 더운데 다리는 시리고 그런 현상은 세월이 흐를수록 조금씩 좋아지기는 했으나 몇십 년이 지난 지금도 완전히 회복된 것은 아니다.

그래서 옛 어른들은 산후 몸조리의 중요성을 그리 강조하셨나 보다.

나는 둘째 딸아이를 꼭 모유를 먹여 키우고 싶었다. 모유를 먹고 자란 아이들이 엄마와의 애착관계가 더 잘 형성되어 모유를 떼고도 엄마와의 친밀도가 높고 엄마의 젖을 만지작거리며 자는 것을 나도 느껴보고 싶었다.

그래서 퇴원을 해서 둘째 딸의 모유를 계속 먹이려고 애를 썼다. 그런데 그럴 수 없었다.

둘째 딸은 내가 병원에 입원하고 있는 동안, 그리고 퇴원해서 내 몸의 항생제가 빠져나갈 때까지 기다린 두 주 정도 사이에 우유의 맛과 편리함을 알아버렸다.

배가 고파 칭얼대는 딸아이의 작은 입에 내 가슴을 들이대면 고개를 뒤로 힘껏 젖히며 자지러지게 울며 나의 가슴을 거부하는 것이었다. 그래도 나는 끊임없이 딸아이에게 모유 먹일 것을 시도를 했다.

그러나 그때마다 딸아이의 모유 거부운동은 계속되었고 남편은 나의 부단한 모유먹이기 시도와 자지러지게 울며 엄마의 가슴을 거부하는 딸을 보며 '젖 고문'이라는 표현을 했다.

나는 며칠 시도하다가 포기를 하고야 말았다. 그렇게 나는 쪼끄만 딸아이에게 최초로 지고야 말았다.

출산 후 한 달 담석증 수술을 하기 전까지 모유만 먹은 둘째가 살이 포동포동까지는 아니어도 제법 단단한 살을 만지며 얼마나 뿌듯했는지 모른다.

그리고 나는 최소한 일 년은 꼭 모유를 먹이리라 결심을 했었는데, 나의 계획은 출산 한 달 후 담석증 수술로 인해 실행될 수 없었고 많은 아쉬움을 가지고 나는 둘째를 소젖으로 키워야 했다.

나의 가슴은 그날부터 쓸모없는 것이 되었고 부풀었던 가슴은 조금씩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갔다.

역시 삶은 내 뜻대로 흘러가는 것만은 아난가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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