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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와 달과 풀 Jun 17. 2024

로봇에게 배우다.

위이잉~~  "필터를 청소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한참을 돌아다니다가 위이잉~~~~  "필터를 청소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청소를 완료하였습니다."   "충전 중입니다."

쫑알쫑알 잔소리를 하며 집안을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청소를 마친 로봇청소기가 내게 하던 잔소리를 멈추고 고요히 충전모드로 들어갔다.

4년 전쯤 내가 다리 수술을 하게 되어서 한쪽 다리에 전체 깁스를 하게 되었었다.  수술한 다리로 집에 혼자 있으면서 청소, 요리, 샤워 등 어떻게 살아낼지 막막했었다.

도와주는 사람이 없이 한 달을 통깁스로 버텨내야 했었는데 그때 나를 도와준 고마운 것이 로봇청소기였다.  지인의 소개로 로봇청소기를 구입했는데 사람과 달리 불만이 있어도 신경질을 내지 않는 로봇청소기가 어찌나 고맙고 사랑스럽던지...  

내가 생각한 로봇의 가장 큰 장점은 내가 눈치 볼 일이 없게 짜증을 내지 않는다는 것이다.  

로봇청소기를 가동하기 위해서는 턱이 없어야 하고, 바닥에 청소기가 빨아들이면 안 되는 양말 등을 두면 안 된다.  기본적인 환경을 만들어놓고 로봇청소기 버튼을 누르면 '청소를 시작하겠습니다'라는 가벼운 맨트를 날리고 빙글빙글 돌면서 집안 곳곳을 돌아다니며 청소를 해준다.  내가 정말 하기 힘든 침대밑에도 가뿐히 들어가서 윙~ 하고 청소를 깔끔하게 하고 나온다.

처음 침대밑으로 들어갔다가 나온 로봇청소기의 까만 몸뚱이에는 뿌연 먼지와 일부 거미줄까지 덕지덕지 등에 묻히고 나왔었다.

'침대 밑에 거미줄이 있었구나?'

먼지를 뒤집어쓰고서도 툴툴거림이 없었다.

그 로봇청소기 덕분에 나는 통깁스를 한 다리로도 한 달을 잘 살 수 있었다.  한쪽 다리를 쩔뚝거리면서 로봇청소기에게 가서 버튼을 꼭 누르면 언제라도 신경질 내지 않고 충실한 신하처럼 꼬박꼬박 청소를 해주는 그 충성스러움에 나는 반하고 말았다.

 그저 장애물이 있으면 간단명료하게 그 장애물에 대해서 쫑알쫑알 이야기하며 장애물에 대해서 치워달라고 하고 잠시 멈추고 기다린다. 그러면 내가 가서 장애물을 없애주고 버튼을 누르면 "청소를 시작합니다."라며 다시 청소를 시작한다.

만일 내가 누군가의 집에 가서 청소를 해야 한다면 내가 원한 조건을 집주인이 갖추어두지 않았으면 속으로 비난하면서 짜증을 냈을 것 같다.  그럼 볼멘소리를 하며 "이거는 이렇게 치워주셔야 제가 청소를 하지요." 하며 말을 했을 것이고 집주인은 그때부터 내 눈치를 봤을 것이리라..

여하튼 이런 로봇청소기의 특징이 나를 심리적으로 얼마나 편하게 하는지 모른다.

지난 주말 로봇청소기가 안방을 여전히 윙~ 소리를 내며 청소를 하는 모양을 보면서 그 친구에게서 내가 배울 점이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떤 장애물이 나타나면 그저 치워달라고 하면 되고, 벽이 나오면 돌아가면 되고, 장애물이 치워지지 않으면 잠시 기다리면 되고, 에너지가 다 되면 충전기까지 가서 에너지를 충전하면 되는 것이다.

그런 삶을 산다면 나는 누군가에게 화가 나서 신경질을 낼 일이 없는 것이다. 환경이 내가 살기에 적당하지 않으면 그에 맞추어서 살면 되는 것이다.

그런데 나는 내 뜻과 맞지 않으면 일단 화가 나고 신경질이 나서 얼굴이 찌푸려지고 내 세포 하나하나가 수분이 마르고 주름이 지는 것이다.

그래서 로봇에게도 배워야겠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가끔 나는 로봇처럼 감정 없는 사람이 되고 싶다.  물론 인간이 살면서 필요한 동정심, 사랑, 웃음, 기쁨 이런 긍정적인 감정들은 나의 행복에 도움이 되지만 그 외에 부정적인 감정은 내 인생에 별 도움이 되지 않고 사는 것이 힘이 들고 지치게 된다. 이때는 로봇이 되고 싶다.

내 옆에 없는 사람 그리워하면서 괴로워하기

내 뜻에 맞지 않는 사람과 함께 일하기

내게 가끔 폭언을 하는 다른 사람들

싫어하는 사람과 한 공간에서 일하기

기타 등등 살면서 참아내야 하는 많은 것들!

내가 로봇이 되면 그러한 것들을 참아낼 필요가 없는 것이 아닌가?

그저 내 삶에 장애를 만나면 넘으려고 애쓰다가 그저 멈추면 되고, 쉬면 되고, 영혼 없이 장애물을 치워달라고 요청하면 되는 것을 마음을 써가며 미간을 찌푸리고 심장을 쿵쾅거리며 큰 소리로 화를 내는 것은 나의 인생에 그리고 정신건강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것이 아닌가?

오늘은 영혼 없는 로봇이 되고 싶은 날이고, 로봇에게서 무언가 배우는 날이 되었다.

번잡스러운 불필요한 감정으로부터 자유로운 로봇이 부럽고 그래서 그에게서 배움을 얻는 날이 되었다.

나의 충직한 부하이자 나의 소중한 가정부이자 짜증 내는 법을 모르는 나의 소중한 청소기가 오랜 시간 내 옆에 있어주길 바라는 마음으로 청소통을 비우고, 필터를 씻어서 말려두고, 물통을 비웠다.

나의 지인 중 한 명은 그런 로봇청소기에게 이름을 지어주고 막내라고 표현을 했다.  청소를 도맡아 하는 그 친구를 막내라고 하기엔 대접이 너무 소홀하여 나는 그저 내 소중한 가정부라고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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