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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와 달과 풀 Jul 29. 2024

한밤중에

한밤중에 털레털레 아파트 옆을 돌아 계단을 올라가려니 어두컴컴한 화단 옆 계단 중간쯤 어떤 웅크린 사람 하나가 어슴프레 보인다.

"어?  언니~~"

내가 사는 아파트에 나를 언니라고 부를 사람이 없는데?

한 두 계단을 올라가니 나를 언니라고 부르며 웅크린 사람이 누구인지 알 수 있었다.

 요즘 나와 학원을 같이 다니는 같은 아파트에 사는 미진씨다.  타이트한 줄무늬 니트스커트와 적당히 넉넉한 흰색 남방 그리고 대충 묶은 머리카락이 삐져나와 그녀의 얼굴을 적당히 가리고 있다.

"거기서 뭐해요?"

"아 ~  얘가 뒤집어져서 똑바로 하지를 못해요."

내가 계단을 올라가서 같이 웅크리고 그녀가 들여다보고 있는 그 무엇을 들여다보니 숲속에 사는 곤충인데 그게 장수하늘소처럼 까맣고 꽤 커다란 곤충이다.   자정이 가까운 시간에 가던 길을 멈추고 뒤집어져서 버둥거리는 그 곤충을 만지지도 못하고 들여다보고 있는 그녀가 참 어이없으면서도 귀엽다.

내가 길다란 이어폰 줄을 그 곤충몸에 대충 두르니 그 곤충이 내 이어폰 줄을 꼭 잡는다.  그것을 들고 화단의 나무위로 들고 올리고 이제 이어폰 줄을 빼내려니 이놈이 도통 이어폰 줄을 놓질 않고 거꾸로 매달려서 버둥거리고 있다.   그녀가 그모습을 지켜보더니 나무가지 끝 이파리를 뜯어서 그 곤충이 이어폰 줄을 놓고 그 가지를 잡도록 애를 썼다.

그 나뭇잎을 잡기는 잡았는데 이 곤충이 뒤집어져서 똑바로 하지를 못한다.  그녀는 그것이 안타까운지 "아직도 뒤집어져있네"라며 기어코 똑바로 하는 것을 도와주고는 그제야 발걸음을 옮긴다.

호기심어린 아이도 아니고 마흔이 넘은 나이에 자정가까운 시간에 집에도 안가고 뒤집어져서 버둥거리는 곤충을 쪼그리고 들여다보고 있던 그녀가 나는 참 사랑스럽고 이쁘다. 

일주일 세 번을 그녀와 나는 학원에서 함께하는데 그 시간이 더 즐거워질 것만 같다.

나중에 내가 세상살다가 뒤집어져서 버둥대면 그녀가 지나치지 않고 똑바로 일어설 때까지 지켜봐주고 도와줄 것만 같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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