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이 섬을 나갈 때 멀미약을 구입하려고 약국을 찾았다. 아침9시에 배가 뜨는데 약국 문을 열었을리가 없었다. 그럼에도 무거운 여행가방을 들고 낑낑거리며 약국가는 내리막길을 따라 한참을 내려가니 약국문은 잠겨져있고 안은 깜깜했다. 헛걸음을 한 것이다.
할 수 없이 멀미약을 사지 못하고 배를 타기 위해 여객선터미널로 허둥지동 걸어갔다. 울퉁불퉁한 도로위를 캐리어를 끌고 한참을 걸어가니 캐리어 바퀴가 박살이 나지 않을까 염려는 되면서도 혹여 늦어질까 하는 두려움에 걸음을 재촉했다.
무사히 발권을 마치고 혹여 멀미약 파는 곳이 있을까 해서 여객선터미널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그러나 가게는 보이지 않았다. 커다란 짐가방을 여객선터미널에 두고 불편한 다리를 낑낑거리며 조심스럽게 이층으로 올라가 거리를 헤매기 시작했다. 근처 마트를 찾아헤매었는데 문을 연 곳이 없었다. 포기를 하고 다시 여객선 터미널에 와서 가방을 들고 배를 타고 나가려니 아주머니들께서 줄을지어 작은 오징어를 구워서 파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오징어나 사갈까? 하는 맘으로 그곳에 가보니 얼씨구나 멀미약을 팔고있었다. 기분좋게 오징어도 사고 멀미약도 사서 그 자리에서 꿀떡 삼켰다.
배에 올라타고 나의 짐가방을 내 자리 옆에 두고 어깨에 맨 작은 가방도 들고 편히 자리에 앉았다. 안도의 한숨을 쉬며 등을 의자에 기대어 앉았는데 갑자기 허전한 등이 느껴졌다.
내가 집에서 나올 때에는 커다란 캐리어 하나, 등에 맨 백팩 하나, 그리고 어깨에 맨 휴대폰 가방 세개를 들었었는데 자리에 앉고 나니 등에 있어야 할 빨간 가방하나가 없는 것이었다.
OMG
다시 배에서 내려 여객선 터미널로 가기는 늦은 시간이다. 머리속에 하예지면서 내가 집에서 가방을 가져나왔는지 두고 나왔는지부터가 생각이 안난다. 한참을 생각해보니 여객선터미널에서 오징어를 사서 빨간 가방에 넣었던 기억이 난다. 그 생각이 나기까지 한참의 시간이 걸렸다. 배는 이미 좌우로 움직여서 서서히 출발을 하고 있다. 그 빨간 가방안에는 무엇이 있었는지 곰곰이 생각해보니, 그리 중요한 것은 없는 것 같았다. 휴대용 칫술, 여객선 터미널에서 산 작은 구운 오징어 다섯마리, 그리고 멀미나면 먹으려고 넣어둔 귤 여섯개 정도, 그리고 다른 크게 중요치 않은 물건들이었다. 잃어버려도 크게 문제될 것이 없는 것 같아 안심은 되었지만 그래도 걱정이 되었다.
여객터미널에 전화를 하니 전화를 받지 않는다. 몇 번을 전화를 해도 받지 않았다. 염치없지만 직장 동료에게 전화를 걸어서 혹시 시간나면 여객선 터미널의 가방이 있는지 좀 가봐달라고 부탁을 했다.
다행히 친절한 직장동료 덕분에 육지를 다녀온 후에 나의 빨간 가방을 찾을 수 있었다. 여객터미널에 동그마니 남겨진 그 가방은 터미널 직원의 손을 거쳐 직장동료의 배우자의 손을 거쳐 직원의 손에 의해 내 책상위에 놓여져있었다.
추운 날씨탓인지 귤은 조글조글했지만 먹을만했고, 오징어는 조금 말르긴 했지만 상하지 않아 며칠동안 간식거리로 맛있게 먹었다.
지난주 다시 육지를 다녀올 일이 있어 일주일정도 다녀왔다. 집에 도착하니 수많은 작고 큰 택배물품들이 소복이 현관문앞에 쌓여있었다. 가방을 집에 넣어놓고 작고 큰 택배물품들을 즐거운 마음으로 집안으로 집어던졌다. 신나게 택배물품들을 열어볼 기대감으로 현관문을 닫으려고 하는데 나의 분신같은 빨간 휴대폰이 없다.
택배물품들을 다시 정리해서 탁자위에 얹어놓으며 혹시 그 밑에 깔렸는지를 확인하고 뒤지기를 한참을 했다. 그리고 나의 가방도 부질없이 열어보기를 몇 번, 한참을 그러고 있으니 옆집에 사시는 분이 아이스박스 택배물품을 보관했던 것을 전해주신다. 허둥지둥 그놈의 빨간 휴대폰을 찾느라 고맙다는 인사도 제대로 못했다.
또다시 머리속이 하예진다. 다만 생각나는 것은 그 빨간 휴대폰속에 있는 나의 신용카드, 자동자운전면허증, 주민등록증 등등이 그림을 그리듯 또렷이 떠오른다. 젠장. 떠오를 것은 그 휴대폰을 어디에 두었는지가 떠올라야 하는데 고작 떠오르는 것이 휴대폰 속의 중요물건들이었다. 허둥지둥 허둥지둥 아무리 찾아도 없다.
젠장~~~
마음을 진정하고 나는 신발을 신고 출입문을 꼭 닫고 배에 다시 가기 위해 길을 나섰다. 집 앞 복도부터 눈으로 바닥을 훓어가면서 왔던 길을 거슬러서 가기 시작했다. 좁은 복도를 지나 계단을 내려갔다. 행동은 천천히 했지만 마음은 부산하고 눈은 바삐 움직였다. 계단을 돌아서 내려가던중 1층 계단옆 낡은 못쓰는 학생용 책상위에 작고 빨간 물건이 하나 보인다. '앗 내 휴대폰이다.' 얼마나 반가웠는지 모른다.
그런데 내가 그곳에 휴대폰을 둔 기억은 며칠이 지나도 나지 않는다. 다만, 내가 계단을 오를 때 가방을 옮겨서 고쳐잡으면서 휴대폰을 잠시 두지 않았을까? 하는 짐작만 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