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의 삶은 타인의 삶이고, 나의 삶은 나의 삶인 것이기에 각각 별개의 삶을 연관지어 생각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그것이 생각만으로 그칠 때가 종종 있다.
며칠전 친구로부터 오랜만에 전화가왔다.
부동산을 하는 그 친구는 나에 대해 이런 저런 얘기를 하다가, 어찌 그리 섬지방에 갔는지 나의 아이들은 어찌하는지 물어서, 둘 다 대학에 입학해서 내 손이 별로 필요없음을 얘기하였다.
나에 대해 물어오니 나역시 그 친구와 그 친구의 이들에 대해서 묻게되고, 그러다보니 자연스레 친구의 아이가 공부를 곧 잘 했는지 의대에 진학해서 의사가 되기 위해 공부를 열심히 하고 있는 것을 알게 되었다.
친구는 의대를 보내니 아이 얼굴보기가 힘들다는 투정아닌 투정을 하기에 그럼 대충 공무원시켜서 옆에 두지 그랬어? 했더니 아니나 다를까 둘째는 공무원이라서 함께 있다고 한다.
아들은 의사, 딸은 대도시의 공무원! 아이들이 훌륭히 잘 자란 모양이다. 게다가 그리 엄마와의 애정도 돈독하고 사랑스럽기까지 하다니 만인이 부러워할 만하다.
자식들이 다들 잘 자라고 있으니 앞으로 들어올 며느리에 대한 욕심도 있는 모양이었다.
그러면서 어떤 이가 자신에게 자식자랑을 하는 것을 보고, 후진 지역에서 전교일등은 잘하는 것도 아니라고 한다. 후진 지역? 음...... 나의 딸아이는 시골마을에서도 전교 일등 한 번 못해봤는데......
하는 생각에 미치니 전화를 끊고 났는데 씁쓸한 기분이 드는 것은 왜인가?
나는 나의 딸아이들에게 불만이 없었는데 왜 이런 기분이 드는 것인가?
세상을 보는 기준은 자기 자신인 것 같다. 그 친구는 자식들이 잘되다보니 기준이 자기 자식인 모양이다. 자기 자녀들이 잘나가는 도시에서도 공부를 잘해 수도권대학교 의대를 진학을 하고 많은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공무원이 되니, 그 이하의 사람들은 잘 하는 것이 아닌 모양이다. 그러니 자신의 자녀보다 덜 잘나가는 지역에서 일등하는 아이들은 공부를 잘하는 것이 아니라는 말을 서슴치 않고 하는 것이 아닌가? 그 친구는 나의 아이들이 그리 잘나가는 아이가 아니란 것을 알면서도 그리 용감하게 말하는 데는 아마도 자신의 아이에 대한 자부심이 판단력을 흐리게 한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여하튼 그렇게 사람은 세상의 잣대가 꼭 자기자신과 자신이 처한 주변환경이 된다.
내가 집도 절도 없는 떠돌이 신세라면 작은 오두막이라도 가진 사람을 보게 되면 부러움의 대상이 되고 세상 다가진 것처럼 보일 것이다. 그러나 상위 5%이내 재벌이라도 더 큰 재벌을 보게 되면 자신이 부족하다 여길 것이다.
그리고 나는 내가 있는 이 시간 이 자리 이 환경이 내 삶의 기준이다.
그래서 나는 가끔 말한다. '세상의 중심은 나'라고.....
세상의 중심에 내가 서있다고....
이 세상은 무한한 공간이며 그 어디가 중심이라고 말하기 어렵다. 이 시공간의 중심을 말하라면 어찌 말할 수 있을까?
억겁의 흐르는 시간속에 나는 현재 존재하고, 무한한 우주공간속에 먼지보다 작은 내가 이 섬에 존재한다.
이런 나를 누구와 어찌 비교하겠는가?
그래서 나는 세상의 시공간의 중심에 존재한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누구와 비교하는 내가 아니고 주관적으로 나를 보며 저녁에 내 한몸 포근히 누울 수 있는 따스하고 포근한 작은 침대가 있는 방이 있고, 스스로 내 삶을 독립적으로 살 수 있는 직장이 있고, 나 스스로 누구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며, 아주 드물고 작은 일이지만 누군가를 조금은 도와줄 여력이 있기에 나는 행복한 사람이 되기위한 필요조건이 충족되었다고 생각한다.
'누구누구랑 비교해서 내가 이만하니 부자이다.'
'누구누구랑 비교해서 내가 이정도니 행복하다.'가 아니고
내 스스로의 절대적인 기준을 세워서 이정도이면 나 스스로 적당한 경제적 능력을 가지고 있고, 능력이 있으니 행복하다 이리 기준을 삼으면, 타인의 기준이 아니고 나만의 기준에 충족되니 만족을 할 수 있다면,
쉬이 타인의 상황에 내가 영향을 덜 받을 것이 아닌가?
얼마전 나의 지인이 "내 재산을 대충 계산해보니 10억이 안된다."며 자신이 가난하다고 말을 한 것을 들은 적이 있다.
'엉? 나는 10억이 아니고 몇억도 없는데?'
그 사람은 아마도 10억도 되지 않는 재산에 대해 마음이 고픈가보다. 나는 그 재산이 없을 뿐더러 꼭 가져야겠다는 생각도 없다. 당연 그 돈이 있으면 행복지수는 더 올라갈 것 같지만... 쩝~
그 사람과 달리 기준이 낮은 나는 오히려 내 삶에 만족할 수 있는 가능성이 높고 그리고 만족도가 높으면 행복할 수 있는 가능성이 또한 더 높은 것이다.
돈이 없어도 행복해질 수 있다면 남이 보기 초라해도 행복해질 수 있는 길을 택할 것이다
살면서 힘들어도 오늘을 참고 견디는 것은 결국 행복해지기 위함이 아닌가?
기준을 낮게 설정하면 삶의 최종목표인 행복을 쉽게 가질 수 있는데, 행복의 기준을 높여놓고 바둥대면서 목표치에 미달한 자신이 못마땅해하면 스스로 불행을 자초하게 되는 것이라고 본다.
그래서 나는 행복하기 위해 내 삶의 목표를 낮게 설정하고자 한다.
그리고 저녁 소박한 저녁 봄나물로 만족한 하루를 보내련다.
엉겅퀴 나물국과, 부지깽이 나물무침으로..........
오늘 아침 직장동료가 통화하는 소리를 들었다. 자매들이 공동으로 금목걸이를 맞추기로 했나보다. 엄청난 양의 순금으로 목걸이를 할 모양인가보다. 그리고 그녀의 목에는 이미 커다란 굵은 순금 목걸이가 현재도 반짝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