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을 한 이후 아이들의 육아와 직장과 살림을 하면서 오로지 나만을 위한 시간을 여유롭게 보낸 기억이 거의 없다. 눈을 뜨고 있었던 시간은 늘 바삐 허덕이는 세월이었던 것 같다.
그런 바쁘고 지친 생활을 하다가 이곳에 홀로 사는 퇴근후의 시간은 오로지 나만을 위해 펼처진 선물인 것 같다.
자고싶으면 자고, 먹고싶으면 먹고, 산책하고싶으면 산책하고, 그림그리고 싶으면 그림그리고, 책읽고 싶으면 읽고, 수를 놓고싶으면 수를 놓으면 된다. 그리고 나만의 공간을 함부로 어지럽히는 생명체 또한 존재치 않아 내가 해놓은 그대로 물건들이 놓여있다. 이것이 내게는 얼마나 큰 평화를 주는지 모른다.
처음 이곳에 왔을 때 이 집의 상황이 걱정스럽긴 했다.
열평도 안되는 공간에 작은 방이 두개 있는데 사람이 살았던 곳 같지 않게 방안에는 거미줄과 곰팡이가 사방으로 있었고, 베란다와 장판밑에서는 지네 시체와 바퀴벌레 시체, 그리고 세면대가 없는 화장실에는 고장난 세탁기와 더러운 먼지만 가득했다.
그런데 히얀하게도 그렇게 못살것 같던 이 공간이 그리 싫지만은 않았다.
많이 더럽고 좁고 곰팡이와 거미줄 투성이였지만, 아무에게도 방해빋지 않는 나만의 아지트가 된다는 생각에 나는 흡족한 마음을 가질 수 있었다.
지금 이 집은 거미줄은 걷어냈지만, 벽지를 새로 하지 않아 곰팡이가 그대로 있고, 붉은 빛깔의 이상한 장판은 그대로 바닥에 있다.
이제 화장실에는 세면대가 설치되었고, 고장난 세탁기를 버리고 새 세탁기를 넣었고, 현관에는 크기에 딱 맞는 신발장을 놓고 유리컵에 지천에 널려져 있는 흰 전호남루 꽃과 노란 유채꽃을 꽂아놓았고, 방문에는 가림막 광목커텐을 달았고, 부엌벽에는 내가 직접 수놓은 프랑스 자수 휴지케이스와 보자기 하나를 장식으로 걸어두었다.
하나 하나 조금씩 조금씩 이 집을 꾸며나가는 것이 또한 재미가 난다.
예전 나는 넓은 집을 선호했었는데, 이 작은 집에 살면서 작은 집이 아늑하고 좋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살아가는 데는 구지 큰 공간이 필요없겠다는 생각이 든다. 침실은 침대하나와 수납공간이 조금 들어갈 공간이면 충분하고 씽크대는 가스렌지 놓을 공간과 그릇 정리대 그리고 개수대 하나 정도만 있어도 살만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그동안 필요이상의 넓은 공간에 살았었고, 욕심을 부렸다는 느낌이 든다.
작고 부족한 공간이 이리 내게 아늑하게 다가올 지는 예상하지 못했다.
참으로 만족스러운 삶이다.
사람이 무조건 많이 있다고 만족된 삶을 사는 것은 아닌가보다. 이리 작은 공간에서도 기존 넓은 집에 살때 못지 않게 만족을 느끼는 나자신이 놀라우면서도 무조건 넓은 집을 좋아했던 것은 내가 뭘 잘못알아서 그랬지 싶다는 생각까지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