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 부모자식관계는 부모가 자식에게 무조건적인 사랑을 일방적으로 주는 사랑과 희생의 관계라고 하지만 나는 별로 동의하고 싶은 마음이 없다. 부모 자식관계도 역시 거래관계다.
부모가 알지도 못한 한 생명을 이 세상에 빛을 보여주자! 하는 희생봉사정신으로 아이를 태어나게 하고 기르는 경우는 없을 것이다. 부모 자신이 자식을 가지고 싶은 욕심에 아이를 가지고, 자신들의 만족을 위해 자식을 기른다. 그래서 자신의 뜻과 달리 자라는 아이들을 보면 부모들은 화가 나서, 아이들이 버릇이 없다거나 훈육이라는 명분으로 혼을 내기도 하고, 벌을 주기도 한다.
그리고 부모들은 자식들을 낳아서 품에 안는 순간부터 기쁨으로 보상을 받는다. 그래서 주고 받는 거래 관계라고 주장하고 싶다. 절대적인 희생과 봉사의 정신으로 주기만 하는 일방적인 관계라면 자녀가 어찌 자라든 보상을 바라지 말아야 하는 것이나, 그런 부모는 거의 없다고 본다.
당연히 부모는 그 자녀를 키울 때 엄청난 희생과 정성과 눈물이 필요하지만, 자녀를 키우는 과정에서 행복을 선물로 받는다. 그래서 자녀가 다 자라나면, 내가 너희들을 이렇게 힘들게 키웠으니 앞으로 나에게 효도를 해야지 하는 것은 조금 잘못된 생각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이미 자녀들은 그 부모님의 원대로 세상에 태어나주어서 크나큰 기쁨을 드렸고, 부모들이 원하는 대로 말을 배우고 걸음마를 익혀서 웃음꽃을 듬뿍 주었으며, 그 힘든 의미없는 책읽기를 배우고, 부모가 원하는 대로 학교를 다니고, 회사에 취직을 하고 부모의 원대로 독립을 하기 위해서 아둥바둥 하면서 부모가 준 것에 자녀들은 태어나면서부터 매순간 이미 댓가를 지불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부모가 자식들을 키우기 위해 아둥바둥한다고 하지만, 자녀 입장에서는 부모를 위해 아둥바둥 삶을 시작했고, 부모의 바램대로 삶을 바둥거리며 사는 것일 수도 있다. 그래서 자녀들이 성장하여 독립을 한 후에는 쿨하게 거래관계가 종료될 필요가 있으며, 효도를 기대하는 것은 과한 욕심을 부리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투자한 것에 대한 보상을 키우면서 이미 다 받았는데 효도를 요구하는 것은 추가로 과한 이자를 요구하는 것과 다름없다고 본다.
만일 자녀들이 스스로 자기들을 이 세상의 빛을 보게 해주고 보살펴주신 부모에 대해서 감사의 마음을 가지고 있으며, 그 은공에 보답하기 위해 부모님을 자주 찾아뵙고 돌봐드리고 용돈도 자주 드리고 하면 좋겠지만, 만일 그러지 않는다고 해서 앞서 말한 논리로 부모는 자녀에 대해 서운해 할 일은 아닌 것 같다.
다 큰 자녀들은 그저 독립을 해서 자기 몫의 삶을 주체적으로 살아가주면 그저 감사할 일이지 내가 너희들 키우는데 이런 무한한 정성을 들였으니 이제 늙은 부모들을 위해 '효도' 내지 '인간적인 도리'라는 이름을 앞세워 보상을 바라는 것은 자식에게 투자한 정성에 대한 지나친 보상을 바라는 것이 아닌가? 싶다.
따라서 돈과, 정성과, 시간과, 눈물을 투자를 했으나 그에 대한 보상은 아이들이 자라며 기쁨과 행복 부모에게 좀 더 성숙할 수 있는 인간이 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 것이니 이미 거래는 다 끝난 것이니 그 이후는 각자의 삶을 잘 살기만을 바라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어제는 집에 가보니 상장이 두장이 테이블 위에 아무렇게나 널부러져 있다. 둘째 딸아이가 학교에서 받아온 것이다. 보는 순간 나는 큰 선물을 받은 것처럼 기뻤다. 내가 받은 상장도 아닌데 딸아이의 상장은 내가 받은 것 못지 않게 기뻤고, 그 선물은 딸아이의 의도와 상관없이 내게 선물을 해준 것이나 같다고 본다.
그리고 나는 딸아이가 내게 자녀양육에 대한 보상을 해준 것이라고 여겨야 할 것이다. 신나는 기분으로 내 침대에서 잘 보이게 상장을 안방 책장 위에 이쁘게 세워놓았다. 며칠전에 받아온 상장이랑 총 세장을 나란히 세워놓고 나니 흐뭇한 마음이 든다.
앞으로 딸아이가 어떻게 살아갈지는 잘 모르겠으나 오늘은 내 딸아이가 마치 미래에 큰 인물이 될 것 같은 행복한 착각에 빠진다. 이 행복감을 오래 지속하고 싶다.
둘째는 몇 주 전에 생뚱맞게 항공직업전문학교를 들어갈까? 이렇게 물었다. 자기는 사람들이 작업복을 입은 모습이 그리 멋져보인다고 했다. 내가 생각을 해보니 정말 멋진 일일 것 같다. 그래서 "우와! 멋지다. 해봐" 그랬다. 그러는 모습을 본 첫째는 "엄마! 얘는 그거 생각한지 이제 고작 이틀밖에 안되었어. 무슨 진로를 하루 이틀만에 결정해? 차라리 대학교에 항공학과를 들어가는 게 낫지." 하며 나를 한심해 한다. "그래? 그것도 좋겠네." 하니, 둘째 딸아이는 상담선생님과 진로관련 상담을 했는데 항공전문학교도 괜찮은데 항공관련 학과가 있는 대학교도 몇군데 추천을 해주었다고 한다. 그리고 일년전부터 생각하고 있던 다른 학과도 생각을 하고 있는 것 같았다. 올해 대학교 1학년인 첫째가 자기 동생이 진로에 대해 너무 경솔하게 생각한다며 우려를 표하고, 무조건 호응을 해주는 나를 보고 둘째는 이렇게 말한다.
"엄마는 내가 무엇이 되는 상관이 없나봐."
지혜로운 조언을 해주지 못하고 말하는 쪽쪽이 좋다고만 하는 내가 도움이 안되니 저런 서운함이 배인 말을 하는가 싶다.
그 날 이후로 나는 이렇게 하라, 저렇게 하라 말하는 대신 "어떻게 결정을 했어?"하고 묻는 것으로 대신했다. 그럴 수 밖에없는 것이 내가 아는 것이 없으니 그저 물어보고 기다릴 수 밖에..
고삼 딸아이는 항공직업전문학교는 안가기로 하고 항공관련 학과나 작년부터 생각해오던 이과쪽 과목을 선택해 지원해볼 생각이라고 한다. 이 무식한 엄마를 만나서 조언을 제대로 들어보지도 못하고 스스로 결정을 해야하니 부담스러울 만도 한데 워낙 어릴때부터 부모한테 숙식제공 외에 도움받은 일이 별로 없던 터라 딸아이는 스스로 결정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학교 담임으로부터 다른 부모들은 자녀가 항공직업전문학교 간다면 부모들이 핏대세우며 반대를 한다고 한다. 나는 그러지 않으니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타 부모들은 자녀의 취향과 달리 그곳은 일반 사년제 대학교에 비해서 배우는 것도 부족하고 오로지 직업을 갖기만을 위해 가는 곳이라 번듯하지 못해서 남보기 부끄러워서 반대를 한다는 것이다.
딸아이로부터 그 얘기를 듣고나니 갑자기 근거없는 자부심이 생기며 자신이 스스로 훌륭한 부모라는 착각에 빠지기 시작한다. 그렇지 않은가? 다른 부모들이 다 꺼려하는 곳을 나는 자녀가 하고싶어한다는 그 말 한마디에 적극 응원을 했으니....
이래서 세상 모든 일은 양면성이 있는 것이다. 나의 무식함이 자녀가 원하는 일에 태클을 걸 수 없게 만들었고 무엇을 하든 무한 응원을 하게 됨으로써 자녀에겐 득이 되는 것이 아닌가? 나의 무지함이 내가 행복하고 내 아이들이 만족하면 그곳으로 된 것이라 여기려고 한다.
종이 두장의 선물과 부족한 엄마에게 진로관련 얘기를 터놓고 해준 딸로부터 자녀양육의 보상을 크게 받은 하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