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출근을 서두르며 아파트 1층 현관을 나서다 흠칫 놀랐다. 흡사 내눈에는 뱀만큼이나 크다. 이렇게 커다란 지렁이가 현관 입구에서 몸을 비틀어대며 있는 것이다. 몸이 메말라가고 있는데 거의 내 발밑에 깔릴 뻔 했다. 그 지렁이는 현관 입구에 있어서 오늘 중으로 누군가의 발밑에 깔려 죽든지 아니면 낮이 되어서 뙈약볕에 말라죽을 것 같다. 그런 지렁이의 모습은 그야말로 뱀처럼 징그럽고 끔찍했다. 나는 발이 없거나 지나치게 많은 동물들은 징그럽고 끔찍하다. 지렁이야 말라비틀어져 죽든지 말든지, 사람들 발밑에 깔려 죽든지 말든지 내 알바 아니다.
어서 그 자리를 벗어나 출근길을 재촉해 가는데 불교책의 한 이야기가 머릿속을 스쳐 지나가며 내 발길을 멈칫하게 한다.
큰 스님과 동자승이 있었다. 스님이 어느 날 보아하니 그 동자승의 명이 일주일밖에 남지 않았다. 그래서 큰스님은 어린 동자승에게 죽기 전 엄마 얼굴은 보는 것이 좋을 듯하여, 오랜만에 집에 다녀오라고 했다. 동자승은 엄마를 보러 간다는 생각에 신이 나서 작은 봇짐을 싸고 어깨에 매고는 신나게 산을 내려갔다. 산을 총총 내려가는 동자승의 뒷모습을 지켜보며 큰스님은 그 모습이 마지막이 될 것이라고 예상하고 씁쓸한 마음을 감출 수가 없었다.
일주일쯤 지났을까? "스님! 다녀왔습니다." 하는 동자승의 목소리가 들렸다. 깜짝 놀라 문을 열어보니 해맑게 웃는 동자승이 인사를 한다. 사주를 보면 가고 돌아올 수 없는 아이였는데 어찌 돌아왔는지 의아한 생각이 들어 헛기침을 한 번 하고 "그래 잘 다녀왔느냐? 다녀오면서 무슨 일은 없었느냐?" 물으니 "예, 아무 일도 없었습니다. 스님!. 그런데 비가 온 후라 도랑을 건너는데 나뭇잎이 떠내려오기에 보았더니 나뭇잎 위에 새까맣게 소복이 개미들이 떠내려오고 있었어요. 제가 그걸 주워서 둑에 올려놓고 왔어요. 헤헤."
그제야 깨달았다. 그 동자승의 짧은 명이 수많은 생명을 구해준 것으로 인해 길어졌구나!
가던 길을 재촉하다가 발길을 돌렸다. 아파트 화단에 있는 짧은 나뭇가지 하나를 찾아서 집어 들고 그 지렁이에게 갔다. 그리고 지렁이를 들어 올리니 가만히 고통을 참고 있던 지렁이는 몸을 비틀고 뒤집고 난리도 아니다. 내가 저를 해코지 한다고 여겼는지 도망가려고 발버둥을 친다. 지는 살려고 발버둥 치는데 나는 그 모습이 더 끔찍하고 소름 끼친다. 간신히 들어 올리니 몸을 비틀어대는 지렁이가 몇 번 바닥에 떨어지길 반복하다가 마지막엔 성공을 했다. 위태위태하게 들려진 커다란 지렁이를 화단 쪽으로 나뭇가지와 함께 휙 집어던졌다. 속이 후련하다.
그리고 드는 생각
그 수억 마리의 개미를 구해준 동자승의 명이 길어졌으니, 한 마리의 지렁이를 구한 나의 생명이 일분이라도 길어졌을까? ㅎㅎ 지렁이의 몸이 커다랗고 길었으니 한 오 년? 오예!!!!!!
이런~ 대가를 바라면 헛거라고 했는데.......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