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엔 분명 허리디스크라고 했다

허리디스크란 이름이 주는 공포감

by 림보

엉덩이가 욱신거렸다. 툭 튀어나온 엉덩이 옆 부위. 하루 종일 스터디카페에 앉아 있다 저녁이 되면 누가 엉덩이 양옆을 막대기로 쿡쿡 찌르는 듯했다. 유튜브에 엉덩이 통증이라고 검색하니, 고관절 통증, 좌골신경통, 이상근 증후군 이런 이름들이 연달아 나온다. 뭐 이 정도야 무섭진 않은 이름들이다. ‘집에서 따라 할 수 있는 이상근 증후군 5분 스트레칭’하나를 클릭해 본다. 저녁 먹고 다시 ‘스터디카페’에 들어가기 전 주변 공원에서 스쿼트도 좀 해봤다. 효과가 있는지 며칠 꾸준히 하니까 진짜로 아픈 게 줄었다.


그렇게 그 통증은 잊어버렸다.


알고 보니 그 녀석이 가장 약체였다. 도미노 쓰러지듯 몸 곳곳이 비명을 질렀다. 다음 타자는 발목이었고 5개월을 헤매다 결국 허리까지 나가버렸다.


정형외과 가는 길에서 난 손발이 차가워질 정도로 바짝 긴장됐다.


“니 그거 허리디스크라 카면 골치 아프데이”


내가 정형외과 간다는 말에 인상을 잔뜩 찌푸리고 말하시던 아빠다.


엑스레이로 몇 번 찍고 코로나 백신 증서를 보여주는 단계를 거치고(아직도 코로나라는 마수가 뻗쳐있던 시절이다.) 진료실에 들어가니 결국 내게 허리디스크라는 이름을 붙여주신다.


그런데 문장이 조금 이상하다.


허리디스크가 ‘조금’ 있는 것 같네요.


어떻게 질병이 조금 있고 많이 있을 수가 있는지 의아했지만 일단 알겠다고 끄덕였다. (이때까지만 해도 허리 디스크가 척추와 뼈 사이에 있는 몸의 부위를 지칭하는 단어인지도 몰랐다.)


병원을 빠져나오니 참 날씨가 써늘하다. ‘결국 그렇게 됐구나’ 싶으면서도 착잡했다. 초조해지려는 마음을 애써 무표정하게 감췄다. 집에 가면 나보다 더 놀라며 걱정 어린 잔소리를 받는 상황이 그려져서 벌써 아득해졌다.


엄마는 역시나 듣자마자 큰소리를 내버린다. 뭐라고? 허리디스크라고?


아빠는 쯧쯧 혀를 찼다.


어차피 누워야 한다는 핑계에 감사해하며 방에 들어와서는 문을 꼭 닫아버렸다.

허리? 그냥 삐끗할 수 있지. 조금 아파질 수 있지. 그런데 디스크라는 거? 그건 절대 돌이킬 수 없는 큰 병 같다. 그러니까 허리 수술 1,700만 원짜리 사진을 쓸 때 그 디스크! 김종국이 운동밖에 모르는 바보가 된 질병! 내게 디스크라는 이름이 주는 느낌이 그랬다.


진정하고 허리디스크란 자식에 대해서 좀 찾아보기 시작했다. 아까 언급했듯 허리디스크는 척추 사이에 있는 젤리 같은 완충제를 말하는데, 수핵과 이를 감싸는 섬유 테로 구성돼 있다. 그런데 외부 자극이나 나쁜 자세로 섬유 테가 찢어지면서 수핵이 밀려 나오고, 그게 신경을 건드리면 통증이 발생하는 거다.


그런데 나쁜 자세로 앉아 있는 건 누구나 다 하는 거 아닌가? 지하철 탈 때 다른 사람들 한 번만 둘러봐도 정자세로 앉아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다들 들쭉날쭉, 수그리고 휴대폰에 고개 박고 있던데, 나처럼…. 아휴 억울하다. 억울해.


심지어 인터넷 글들은 나를 공포로 밀어 넣기 시작했다. 다리 힘 빠짐, 마비, ‘철심’ 박는 수술 (글자만 봐도 아파져 온다) 이런 무서운 글자들이 파도처럼 밀려드는 틈에 안전해 보이는 단어를 부표처럼 잡아냈다. 걷기 운동, 수영, 신전운동, 맥켄지 운동.


그래, 이런 걸 꾸준히 한 달 정도 하면 나아지겠지? 아직 내게 다가온 불행이 어느 정도 깊이인지 가늠하지 못한 채 막연한 기대감을 안고 잠을 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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