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준해야하는데 허리가 왠 말이야

아픈 것 조차 내 탓을 하던 취준시절

by 림보

뭐든 잘해야 했다. 말도 안 되는데 그러고 싶었다. 어렸을 땐 그럴 수 없다는 걸 몰랐고, 대학생이 되어서야 차츰 내가 닿을 수 없는 이상향을 만들었다는 걸 깨달았다. 하지만 안다고 해서 이십몇 년 길들어온 마음이 단번에 변하진 않았다. 여전히 100점짜리 성적표만 받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다.


그런데 취업을 준비하는 내게 0점도 아닌 낙제가 쏟아졌다. 원래 100번 넣어서 1번 될까 말까 한 취업 시장이니 당연한 일이지만, 그 한번 한번이 모두 끔찍했다. 매번 1등 꼭대기를 향해 달려갔으니, 떨어지는 것도 항상 번지점프 높이였다. 서류를 낼 때마다 다시 더 잘 쓰려고 시간을 보냈고 또 죽였다. 그렇게 아예 내지 못하는 일도 꽤 많았다.


많아도 너무 많아.

실수가 계속되면 실수가 아니야 림보야.


당시 만나고 있던 사람은 내게 이런 말도 했다.




서울에서 라디오 PD 시험을 준비해 보겠다고 바둥거릴 때부터 그렇게 밀려오는 실패에 나가떨어졌다. 본가에 돌아온다고 해서 달라진 건 없었다. 부모님과 갈등, 바뀌지 않는 현실의 우울감, 또 떨어진 거리만큼 멀어진 연인과의 관계. 뭐 그런 것들이 추가 메뉴로 들어왔을 뿐이었다.


그러다 어느 날 허리가 아팠다. 허린지 어딘지도 모르게 갑자기 서 있을 수가 없었다. 빨리 주저앉고라도 싶었지만 안타깝게도 여긴 샤워기 앞이었다. 겨우 물기를 닦고 옷을 입고 지성인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마음 같아서는 1살 조카 따라 기어서 방까지 가고 싶었지만 겨우 참았다.


거실에 있는 엄마 아빠한테 내가 아픈 걸 들키지 않아야 해서.


내가 아프면 엄마는 좀 과하게 걱정했고 난 그 불안을 그대로 흡수했다. 그러면 내가 뭔가를 잘못한 것 같았다. 누가 뭐라 하지 않아도 종종 난 혼날 것 같은 감각에 시달렸다. 잘못한 것 같은 느낌을 또 느끼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어제와 다를 바 없는 것처럼 슬슬 걸어 나와서 (하지만 최대한 안 아프기 위해선 머리에 물컵이라도 있는 양 아주 조심해서 걸어야만 했다) 방 문을 닫고 그제야 끙끙 소리를 냈다. 엄마 아빠께 지금 물어봐도 내가 아프던 첫날을 기억하지 못하신다. 같은 한 공간에 같은 시간에 있었으면서도. 비련의 여주인공이 돼서 바깥 텔레비전 소리를 배경음으로 혼자 정신없이 아파했다.




나도 안다. 아픈 건 내 잘못이 아니라는 걸. 동시에 이런 생각도 든다. 내가 잘못했다고. 완벽주의는 완벽함을 추구한다기보다 불완전을 불편해 하는 사람이라고 한다. 조금의 실수나 실패도 도저히 참을 수 없어서 완벽하려고 한다. 난 아픈 것에서도 잘못을 기어이 발견하고 또 기어이 숨긴다고 난리였다. 이렇게 해야 내 마음이 편할 줄 알았다. 그래야 나도 이유 모를 죄책감에 시달리지 않고, 부모님은 걱정 안해서 좋고. 그런데 마음이 더 슬펐다. 숨긴 내 아픔을 몰라주는 부모님이 미워하는 더 더 이상한 짓을 했다.


그렇게 북 치고 장구치던 나는 겨우 자고 일어났다. 나름 괜찮은 것 같았다. 그래도 누워는 있었다. 오늘은 공부 쉬는 날 하지 뭐. 스터디 카페 가봤자 별 하는 거 없이 돌아올거면서 괜히 있는 척 했다. 이것저것 검색해보고 허리에 수건도 깔고, 무릎 밑에도 깔았다. 금세 저녁이 된다.


완벽주의가 발동한다. 뭐가 중요한 지를 또 모르고 몸이 들썩거린다. 몇 달 전에 하면서 효과를 본 이상근 증후군 스트레칭을 다시 켰다. 이걸 하면 빨리 낫겠지. 그때처럼 엉덩이를 통통 쳐주고 엉덩이 근육도 수축 시켜준다. 그다음 자세로 넘어갔다. 이번엔 앞다리를 기역으로 만들고 뒷다리를 쭉 펴주고…


악!!!


순식간에 허리가 찢어지는 느낌이 났다. 아니 이거 허리가 분명 찢어졌다.


며칠 전이랑 같이 기어서 겨우 침대 위로 올라갔다. 아프지 않게 몸을 누이는 건 또 다른 단계였다. 겨우 몸이 일직선이 되어서야 눈물을 질질 흘렸다.


그리고 생각했다. 지금 취준이 중요한 게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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