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 무비패스 9.
칸 황금종려상.
이창동 감독의 <버닝>이 최고 점수를 받아 유력하다고 한창 언론이 설레발 쳤을 때, 정작 주인은 따로 있었다.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어느 가족". 일본 영화라 또 뻔한 댓글들이 올라왔지만, 감독 이름을 듣는 순간 고개가 끄덕여졌다.
아카데미와는 다르게 칸이나 베니스 영화제에서 대상을 받는 것은 매우 난해하거나, 잔인하거나였던 것 같아 정말 예술은 그들만의 것인가 반감이 있었는데 이번에 많이 깨뜨려졌다.
'걸어도 걸어도',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딱 두 편 밖에 보지 못했지만, 잔잔한 가족 영화 하면 떠오르는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 이번엔 대놓고 제목에 '가족' 이 들어가서 더 기대가 되었다.
일본어 원제는 <만비키 가족(万引き家族)>인데, 굳이 풀자면 도둑질 가족, 날치기 가족? 정도가 되겠다. 어감이 이상하니 '어느' 라고 붙였을테지만, 그냥 소리 그대로 붙여넣었으면 어땠을까. 언제나 금기시 되는 일본어.
연금을 받는 할머니. 에 기생해서 살아가는 가족들.
알고보니 모두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같이 살고 있으면 연금을 못 받으니 방문조사를 나올 때마다 숨어야 하는 신세. 부모가 돌아가셨어도 연금을 받기 위해 사망 신고를 하지 않는다는 오래 전부터 나왔던 일본의 문제를 해학스럽게 끄집어 냈다.
이전 고레에다 감독 영화에 여러번 출연했던, '할머니' 하면 이제 일본에서 이 배우 밖에 떠오르지 않는 키키 키린. 엄청난 연세에도 불구하고 기 막힌 연기력은 소름이 돋았다. 물론 출연한 모든 배우의 연기가 대단했지만.
왜 예명으로 활동하는지 궁금한 '릴리 프랭키'도 고레에다 감독과 궁합이 잘 맞는 듯.
'쇼타' 역의 죠 카이리는 어린 아이인데 너무 잘생겨서 깜짝 놀랐다. 연기력도 괜찮아서 나중에 키무라 타쿠야 급으로 대성할 듯하다.
출연진 중 백미는 안도 사쿠라인 듯. 연기인지 실제인지 구별이 안되는 연기가 아닐까.
살인, 절도, 횡령, 성매매, 유괴. 치명적인 사회의 치부를 갖고 있는 사람들 간에 말도 안되게 서로를 위하는 끔찍한 정.
할아버지의 전 부인한테 얹혀산다는 정말 영화 같은 설정의 '아키' 역의 마츠오카 마유! 리틀 포레스트에서 너무 이쁘다고 생각했는데 한참 동안 못 알아봤다. 단아한 이미지였는데 파격적 노출 연기를 할 줄은... 최근 봤던 드라마에 출연한 '이케마츠 소스케'가 까메오로 나와서 반가웠다.
손녀처럼 대하는 아키 집으로 찾아가서 꼬박꼬박 용돈을 타오는 영악한 할머니처럼 보였다가도, 그 돈을 하나도 쓰지 않고 남겨두었다는 것이 가장 와닿은 부분.
학대 당한 과거로, 또다른 학대를 보지 못하고 어린 아이를 자기 딸처럼 대하는. 가르칠게 도둑질 밖에 없었던, 끝내 아버지 소리를 듣지는 못하지만 가족보다 더 깊은 유대 관계. 직장을 잃으면서까지 이들을 지키려고 했던 모성애.
도둑질을 눈감아 주는 '야마토야'의 단골 조연 '에모토 아키라'. 본인의 초상이 아니기를 바란다.
기승전결에서 기-결을 바꿔 배치하는 편집을 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다.
관객은, 완전히 사회로부터 지탄 받을 범죄자라고 비난하다가 극적으로 마음이 바뀌는 영화가 되지 않았을까. 물론 지금도 충분히 좋았다. 흥행할 수 있을까? 허스토리의 참패를 보았기에. 또 이 영화가 잘되면 모순인가.
가족이란 무엇인가?
올해 최고의 영화. 시바타 가족의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