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쾌하면서 씁쓸한 미국 현대사 다큐
이전에 경제 공부한답시고 모기지론 붕괴를 예측해서 떼돈을 버는 이야기, <빅쇼트> 라는 영화를 의무감에 보았는데 재미는 있는데 뒷끝이 떨떠름한 기분이었다. 같은 감독, 아담 맥케이 작품. 이번엔 증권가에서 백악관으로 넘어왔다.
감독의 성향인 것인지, 한 번 마음에 들면 다른 캐릭터를 찾는 것보다 그 배우를 원하는 캐릭터로 만드는 게 더 쉬운 것인지. 이번에도 크리스찬 베일과 스티브 카렐이 출연. 여전히 멋지지만, 확실히 나이가 들었다는 게 느껴졌다. 74년생이면 마흔 다섯인데, 확실히 백인이 유전적으로 빨리 늙는 것 같다. <브루스 올마이티>에서 짐 캐리보다 더 인상 깊었던 카렐은 이제 어두운 역할도 잘 어울린다.
슈퍼맨 여자친구인 에이미 아담스와 배트맨이었던 베일이 부부로 나오는 게 아이러니했지만, 각자의 배역에 충실했던 듯.
전혀 예상도 못했는데 바이스vice는 직책인 여기서 '부통령'인 딕 체니를 뜻하지만, 중의적으로 범죄, 악惡을 의미하니 참 제목을 잘 지었다. 번역을 할 수가 없는 제목이다. 나처럼 영어 못하는 사람들을 위해, 포스터에 사전 기호를 표현해주었으면 좋지 않았을까, 너무 직접적인가?
우리나라나 미국이나, 원래 미국이 더 심했지만, 굳이 자극적일 필요가 없는데 사람이 떨어져서 다친 장면이나 교통사고가 나는 모습을 있는 그대로 잔인하게 묘사하는 부분이 정말 끔찍하게 싫지만 그것도 상업적 영화의 한 장치라면 받아들여야 하는가.
2001년 9월 11일 중학교 2학년 때, 국어 수업시간 중 갑자기 TV를 틀고 중계를 보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영화가 아니라 실제로 비행기가 건물을 연속해서 들이받아 무너지고, 사람이 엄청나게 사망했다는 소식은 지구 반대편 이야기라도 너무나 마음이 아팠다. 별의별 음모론이 나돌았고, <화씨 9.11>이나 대학 수업 때 본 <시대정신zeitgeist> 등을 접하고 나도 단순 음모론이 아니라 이건 미국 수뇌부의 자작극일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했는데, 이번 영화를 통해 거의 확신하게 되었다.
달에 가지 않았다는 것과, 9.11은 당시 부시 행정부의 연출이라는 게 나의 생각. 딕 체니를 필두로 조지 부시, 콜린 파월, 콘돌리자 라이스, 도널드 럼스펠드 등 당시 세계사는 수업시간 말고는 관심도 없었으나 뉴스에서 하도 언급을 많이 해 미국 정치인임에도 얼굴과 이름을 기억하는 인물들이, 실제로 많이 닮은 배우들을 잘 캐스팅해서, 그래픽으로 당시 뉴스까지 합성하여 잘 만든 인물들이 대거 등장하여 반갑다고 하기는 좀 부끄러운 감정.
권력을 위해 얼마나 잔인해질 수 있는가. 잔인함은 타고나는 것인가, 후천척으로 만들어지는 것인가.
세계 최강대국의 권력 구조가 마치 유치한 게임처럼 진행되는 것에, 한 명의 욕심 때문에 수백만 명이 고통을 받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끝없이 일어나는 지긋지긋한 현실. 이런 현상이 너무나 당연한 보편적인 만고불변의 진리라면. 권력을 피해 운둔해서 칩거하는 것이 가장 현명한 것이 아닐까.
뭐 익히 알고는 있었지만, 우리나라 정부도 언론도 미국의 계산대로 움직여준 것 같아 분하다.
참 바보같다.
중간에 엔딩 크레딧을 올려버려, 벌써 끝났어? 하고 시계를 보게 만드는 감독의 센스. 딕 체니의 마지막 인터뷰에 이어 극중 등장하는 토론회 영상에서 진보와 보수를 아주 코믹하게 연출하는. 보수라는 것이 존재하는가? 좀 더 잔인하고, 부유하며, 본인 욕심을 우선하고, 국익을 핑계로 자기 편만 챙기며, 학벌에서의 성적은 높으나 다른 부분에서는 완전 무식하고 대중의 상태를 이해 못하는, 전혀 보수가 아닌 그들이 말하는 '보수'가 어디에나 존재하는 게 아닌가 한다.
매우 좋은 영화였다. 6개 부분 골든글로브 노미네이트는 합당하다.
가장 아쉬운 것은, 연기력은 탁월하나 분장 기술이 아무리 뛰어나도 크리스찬 베일은 딕 체니와 전혀 닮지 않았다는 것. 이 외에 마땅히 단점이 없는 깔끔하고 경쾌한 영화다. 교육용으로 인기를 끌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