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고칠 필요 없는 상태
다음은 ‘죽간본’ 8-1이다. “爲亡爲, 事亡事, 味亡味.”(위무위, 사무사, 미무미) “함이 없는 일을 하고, 일 없는 일을 일삼으며, 맛이 없는 맛을 맛보라.”
여기에는 노자 사상의 주요 용어 셋이 나란히 나온다. 亡爲(무위)와 亡事(무사), 亡味(무미)! 무위는 도의 본질이자 원리다. 무사는 사람이 일상에서 도를 따라 또는 함이 없이 사는 방식이다. 무미는 무위와 무사를 맛에 빗댄 것으로, 다음에 자세하게 말하겠지만 미학적 용어라 할 수 있다.
무위나 무사는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어떤 일도 없어야 한다는 말이 아니다. 요컨대 無(무)라고 했지만, 참으로 아무것도 없는 상태를 가리키지 않는다는 말이다. 절대적 무가 아니라 有(유)를 전제로 한 상대적 무다. 그리고 그 유는 사람의 인식과 행위, 그 결과로 이루어진 것을 두루 이른다. 새가 날고 바람이 불고 나무가 자라고 산이 우뚝하고 강이 흐르는 것을 유위라 하지 않는다는 점을 생각해보라.
‘문자’ ‘道德(도덕)’에 나온다. “無爲者, 守靜也. 守靜能爲天下正. 處大, 滿而不溢; 居高, 貴而無驕. 處大不溢, 盈而不虧; 居上不驕, 高而不危. 盈而不虧, 所以長守富也; 高而不危, 所以長守貴也. 富貴不離其身, 祿及子孫, 古之王道具于此矣.”(무위자, 수정야. 수정능위천하정. 처대, 만이불일; 거고, 귀이무교. 처대불일, 영이불휴; 거상불교, 고이불위. 영이불휴, 소이장수부야, 고이불위, 소이장수귀야. 부귀불리기신, 녹급자손, 고지왕도구우차의)
“무위란 고요함을 지키는 것이다. 고요함을 지키므로 천하의 마루가 될 수 있다. 큼에 머물 때는 가득 차도 넘치지 않고, 높음에 있을 때는 고귀해도 교만함이 없다. 큼에 머물면서 넘치지 않으면 그득해도 줄지 않고, 높음에 있으면서 교만하지 않으면 윗자리에 있어도 위태롭지 않다. 그득해도 줄지 않는 것이 부유함을 길이 지키는 방법이고, 높아도 위태롭지 않은 것이 귀함을 오래 지킬 방법이다. 부유함과 귀함이 그 몸을 떠나지 않고 봉록이 자손에게 이르는 것은 옛날의 왕도가 이 몸에 갖추어져 있기 때문이다.”
출처 : 정천구, "정천구의 도덕경…민주주의의 길 <159> 無爲者守靜", 국제신문, 2018.07.11, https://www.kookje.co.kr/news2011/asp/newsbody.asp?code=2000&key=20180712.22027005204
無爲(무위)와 無事(무사)와 無味(무미), 이 셋은 그대로 온갖 것들이 가게 마련이며 또 그렇게 가는 ‘自然之道(자연지도)’다.
“爲亡爲, 事亡事, 味亡味”(위무위, 사무사, 미무미) 곧 “함이 없음을 하고, 일 없는 일을 일삼으며, 맛이 없는 맛을 맛보는 것”은 자연의 길을 따라 사람이 가야 마땅한 길로서 ‘當然之道(당연지도)’다. 마땅히 가야 한다는 當然(당연) 이 말에 이미 결코 쉽지 않다는 뜻이 담겨 있으나, 그 길을 가지 않고서는 결코 뜻대로 길이길이 즐겁게 살기 어렵다는 뜻도 아울러 담겨 있다.
무엇보다도 자연지도와 당연지도를 대립되는 것, 반대되는 것으로 여겨서는 안 된다는 사실이다. 사람이 결코 어찌할 수 없는 것 두 가지가 태어남과 죽음이다. 가장 명명백백한 자연이요 자연지도다. 사람의 당연지도는 태어남과 죽음 사이 곧 삶의 길이다. 그 삶의 길이 괴로움이 되는 까닭은 욕심과 어리석음으로 버둥질하며 자연지도를 거스르기 때문이다.
우리 삶을 돌아보라. 별것이 없다. 먹고 싸고 자고 일하고. 단순하고 소박하다. 그런데 이에 무엇을 더하려고 그토록 아등바등하는가?
아니, 일도 하지 않고 살란 말이냐고 반문할 수 있다. 맞다, 일을 해야 한다. 일을 하는 것도 엄연히 자연지도다. 일을 하면서 괴롭고 짜증나는 것은 事亡事(사무사)하지 않고 事有事(사유사)하기 때문이다. 이는 무사를 잘못 알고 있는 데에 원인이 있다.
흔히 아무런 일도 하지 않는 것이 무사라고 여기는데, 이는 오해다. 무사란 일을 하면서도 탐욕으로 하지 않는 것, 억지로 꾀하지 않고 고집을 피우지 않는 것이다.
하지 않아도 될 때에 하지 않는 것은 무사지만, 해야 할 때에 하지 않거나 하면서 짜증내는 것은 懶怠(나태)라는 有事(유사)다.
‘논어’ ‘학이’편에서 공자는 “敏於事而愼於言”(민어사이신어언) 곧 “일을 재바르게 하고 말을 삼가서 하라”고 했는데, 일을 재바르게 하는 것도 무사다.
바라던 일이든 아니든 간에 지금 맞닥뜨린 일을 기꺼이 받아들이고 전혀 짜증 내지 않으며 즐겁게 한다면, 그 일은 곧 ‘일 아닌 일’이 된다.
출처 : 정천구, "정천구의 도덕경…민주주의의 길 <171> 當然之道", 국제신문, 2018.07.25, https://www.kookje.co.kr/news2011/asp/newsbody.asp?code=2000&key=20180726.22024012567
어느 날 고등학교 교사가 노자를 찾아와 물었습니다.
“선생님, 저에겐 교육이라는 것이 일종의 일입니다. 저는 이 일을 잘해서 성과를 많이 내고 싶습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담임 맡은 애들 대학을 잘 보내면 두루두루 칭찬을 받고 일을 잘한다고 존경을 받습니다.
혹시 일 잘하는 비결 같은 건 없을까요? 듣자 하니 선생님도 은근히 어마어마한 일들을 해내셨다고 하던데요.” 이 말을 듣고 노자가 답했습니다.
일잘 하는 비결이요? 있지요. 제 말씀 찬찬히 들어보시겠습니까?
(1) 억지로 함이 없이 일을 하시고, 일을 일로 생각지 말고 하십시오. 맛이 없는 것을 맛으로 즐기시고, 작은 것을 크게 여기고, 적은 것을 많다 여기고, 덕으로 원수를 갚으십시오.
(2) 어려운 일을 만나거든 쉬운 일부터 풀어나가고, 큰일을 이루려거든 작은 일부터 꼼꼼히 챙기십시오.
(3) 세상에 가장 어려운 일도 반드시 쉬운 일에서 시작되고, 천하의 가장 큰 일도 작은 일에서 시작되거든요.
(4) 그래서 성인은 큰일을 벌이지 않기에 큰일을 이룰 수 있다고 합니다.
(5) 어떤 약속이든 가볍게 승낙하면 반드시 신뢰를 잃게 되고, 만사를 쉽게 여기면 만사가 어려워집니다.
(6) 그래서 성인은 오히려 모든 일을 어렵게 여기니, 그래서 결국 어려운 일은 없게 됩니다.
(1) 爲無爲(위무위) 事無事(사무사) 味無味(미무미) 大小(대소) 多少(다소) 報怨以德(보원이덕) (2) 圖難於其易(도난어기이) 爲大於其細(위대어기세) (3) 天下難事(천하난사) 必作於易(필작어이) 天下大事(천하대사) 必作於細(필작어세) (4) 是以聖人(시이성인) 終不爲大(종불위대) 故能成其大(고능성기대) (5) 夫輕諾(부경낙) 必寡信(필과신) 多易(다이) 必多難(필다난) (6) 是以聖人(시이성인) 猶難之(유난지) 故終無難矣(고종무난이)
출처 : 장용창, "[노자 도덕경-68] 일 잘 하는 비결", 순천광장신문, 2015.05.22, https://www.agoranews.kr/news/articleView.html?idxno=4016
우리는 늘
조금 더 바꾸려 한다.
조금 더 나은 선택,
조금 더 옳은 방식.
노자는 <도덕경>에서 이렇게 말한다.
"일을 없앰으로써 일을 이룬다."
무사는 아무 일도 없다는 뜻이 아니다.
고칠 일이 없다는 상태에 가깝다.
그러나 그 마음은
삶을 끝없이 미완으로 만든다.
무위가
삶을 가볍게 했다면,
무사는
삶을 안심시킨다.
이미 잘 가고 있다고.
이미 충분히 살아내고 있다고.
이미 이루어지고 있는 삶을
굳이 검증하지 않는다.
무사는
그 멈춤의 자리다.
무사는
그 과잉을 멈춘다.
이미 하고 있는 선택을
사건으로 만들지 않는다.
더 나아지려 애쓰지 않아도,
지금 이대로 충분히 작동하고 있다는 감각.
오늘의 식사가
이 정도면 괜찮다고 느껴지는 순간.
누구에게 증명하지 않아도,
스스로에게 변명하지 않아도 되는 상태.
채식이 무사가 될 때
더 이상 정체성이 되지 않는다.
설명할 필요도 없고,
지켜야 할 규칙도 아니다.
그저
익숙한 생활의 일부가 된다.
무위가
‘애쓰지 않는 선택’이라면,
무사는
‘애쓰지 않는 지속’이다.
못난이 농산물을 고르는 일도
이 단계에서는 의미를 잃는다.
환경을 위해서도,
윤리를 위해서도 아니라
그냥 그렇게 사는 사람이 되었기 때문이다.
무사는
게으름이 아니다.
이미 방향이 잡혀 있어서
힘을 쓰지 않아도 흘러가는 상태다.
물살을 거슬러
헤엄치지 않는 것.
식탁에서 무사를 느끼는 순간은
아주 소소하다.
오늘도 무사히 먹었고,
무사히 넘겼고,
무사히 하루를 이어갈 수 있다는 감각.
삶이
더 나아질 필요는 없다.
이미 살아지고 있다면,
이미 충분히 이어지고 있다면,
그 자체로 무사다.
이미 하고 있는 삶을
조금 더 믿어도 된다고 말하고 싶다.
생활 속 실천
1, 일주일에 하루, 한 끼를 이미 하고 있는 대로 하기
2. 먹는 도중, 조금 더 믿기
3. 먹고 난 뒤 생각하기
“오늘 나는 무엇을 고치지 않았는가.”
올랭프 드 구쥬를 생각하며
우리는 무엇을 차별하고 있었는가.
그리고 무엇을 받아들일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