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무르지 않는 만족
무주상보시(無住相布施)란 어떤 것을 줬다 안줬다는 기억의 문제가 아니다.보상심리가 없는 보시다.이 의미를 새기지 못하면서 금강경을 읽는 것은 그저 시끄러운 소음을 만들어 낼 뿐이다.빚 갚을때 맘처럼 본래 내 것이 아님을 내면에서 굳게 믿을 때만 이 보시를 할 수 있다.고마운 맘으로 베푸는 것이 무주상보시다.나의 보시를 받아주어 상대에게 고개숙이며 감사해 하는 것이 무주상보시의 전형이다.(이하 생략) 2002년 막사이사이상을 탄 법륜스님의'금강경이야기'에 나온 무주상보시에 관한 내용이다.
무주상보시는 집착없이 베푸는 것을 말한다.보시는 불교의 육바라밀(六派羅蜜)의 하나로서 남에게 베풀어 주는 일을 말한다.보시에는 3가지가 있다.재물을 베풀어 주는 재시(財施) 불법을 가르쳐 주는 법시(法施) 두려움을 없애 주는 무외시(無畏施)가 있다.우리나라에서는 고려 중기의 보조국사(普照國師)가 금강경을 중시한 뒤부터 이 무주상보시가 일반화됐다.조선 중기의 휴정(休靜)은 나와 남이 둘이 아닌 한 몸이라고 보는데서부터 무주상보시가 이뤄져야 하고, 이 보시를 위해서는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가는 것이 우리 인생의 살림살이라는 걸 알아야 한다고 전제했다.
일본의 백은(白隱)선사가 길가에 남루한 옷차림을 한 문둥병 환자가 추위에 떨고 있는 모습을 봤다.그 순간 불쌍하고 딱하여 자신이 입었던 누더기를 벗어서 입혀 주었다.그러나 그는 고맙다는 말 한마디 안했다.그래서 그에게 말했다."이 사람아!남의 신세를 짓고 도움을 받았으면 고맙다는 인사나 무슨 표정이라도 지을 일이지 어찌 그러한가?"그러자 말하길,"여보시오 대사! 내가 옷을 입어 주었으니,문둥이 님!보시를 받아 주셔서 고맙습니다.라는 말이나 아니면 표정이라도 좀 지어야 하지 않겠소"하며 도리어 야단을 치는 것이었다.이 순간 선사는 그만 땅바닥에 엎드려 큰 절을 올리면서 아직도 소승의 수행이 모자라 성현을 몰라뵈었다고 말했다.그제서야 선사는 그 문둥이가 바로 문수보살이라는 사실을 알고 다시한번 무주상보시의 참 뜻을 깨달았다고 한다.
출처 : "[오목대] 무주상보시(無住相布施)", 전북일보, 2008.07.22, https://www.jjan.kr/article/20080722276231
불가(佛家)의 용어에 ‘무주상보시(無住相布施)’라는 말이 있습니다. 집착 없이 베푸는 보시를 의미합니다. 이 ‘무주상보시’는 《금강경(金剛經)》에 의해서 천명 된 것으로서, 원래의 뜻은 법(法)에 머무르지 않는 보시로 표현되었습니다.
이 보시는 ‘내가’ ‘무엇을’ ‘누구에게 베풀었다.’ 라는 자만심 없이 온전한 자비심으로 베풀어주는 것을 뜻합니다. 그럼 어떻게 하는 것이 ‘무주상보시’ 일까요? 무엇을 베풀고도 마음에 베풀었다는 마음이 없어야, 하는 것입니다.
어느 날 멀리 떨어져 살던 아들을 보기 위해 어머니가 상경했습니다. 오랜만에 만난 모자는 밤새 정 다운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서로가 바쁜 삶을 사는 터라 이튿날 헤어져야 했지요. 아들은 힘들게 사는 어머니를 생각해 월세를 내려고 찾아 둔 20만 원을 어머니 지갑에 몰래 넣어 드렸습니다.
배웅하고 돌아와 지갑에서 뜻하지 않은 돈을 발견하고 놀라시는 어머니의 모습을 떠올리며 흐뭇해 했습니다. 그런데 그는 책상에 펴 놓았던 책갈피에서 20만 원과 어머니의 편지를 발견했지요. “요즘 힘들지? 방 값 내는 데라도 보태 거라.” 경제학 적으로 보자면 아들과 어머니 모두 이득도 손해도 없는 교환을 한 셈입니다.
그러나, 독일의 경제학자 ‘에리히 케스트너’는 이런 경제 방정식과 다른 ‘윤리 방정식’을 보여줍니다. 즉 아들은 어머니를 위해 20만 원을 썼고, 어머니가 준 20만 원이 생겼으니, 40만 원의 이득이 있었습니다.
어머니 역시 아들을 위해 20만 원을 썼고 아들이 준 20만 원이 생겼으니, 40만 원의 이득이 생겼습니다. 그러니, 모두 80만 원의 순 이득이 발생했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대가를 바라지 않으면서 남을 위해 무언가를 할 때 경제 방정식으로 나타나지 않는 순 이득이 발생합니다.
그리고 윤리 방정식이 표시하는 숫자에 다가 ‘기쁨’이라는 막대한 ‘이득’을 덤으로 줍니다. 참 아름다운 계산법입니다. 그렇습니다. 모든 사람으로부터 배울 수 있는 사람이, 가장 현명한 사람이고, 모든 사람을 칭찬하는 사람이 가장 사랑 받는 사람이며, 자기의 감정을 조절할 줄 아는 사람이 가장 강한 사람이라고 합니다.
출처 : 김덕권, "무주상보시(無住相布施)", 뉴스프리존, 2024.02.22, https://www.newsfreezone.co.kr/news/articleView.html?idxno=549925
베풀며 사는 사람들의 얼굴은 뭔가 달라보인다. 걱정, 근심, 우울함 대신 환한 행복감으로 가득 차 있다. 베푸는 사람들은 주변 사람들까지 행복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
베푸는 사람들의 또 하나의 특징은 베품을 ‘끊지’ 못한다는 것. 마치 중독된 것처럼 자신의 처지와 상관없이 베풀고 또 베푼다. 베품의 이유를 묻는 질문에 ‘행복해서’라고 하는데 베풀면 행복해진다는 것이 과학적으로도 증명됐다.
출처 : 준 최, "'베풀면 행복해 진다' 과학적으로 입증 - 미주 한국일보", 미주한국일보, 2017.10.05, http://www.koreatimes.com/article/20171004/1079858
우리는 가끔
잘 먹은 한 끼에
붙잡힌다.
오늘은 괜찮았다는 감각을
내일도 반복하고 싶어 한다.
백은(白隱) 선사는 큰 절을 올리며 이렇게 말했다.
"소승의 수행이 모자라 성현을 몰라뵈었다."
무주는
만족하지 말라는 뜻이 아니다.
만족에 머무르지 않는 태도다.
그 기대가
다음을 무겁게 만든다.
무주의 식사는
끝나면 지나간다.
좋았던 맛도,
아쉬웠던 감각도
붙들지 않는다.
그래서
다음 식사가 새로워진다.
채식이 무주가 되면
성공과 실패의 구분이 흐려진다.
잘한 날도 없고,
못한 날도 없다.
그저
먹고 지나간 하루만 남는다.
못난이 농산물을 다룰 때
무주는 자연스럽다.
같은 모양을 기대하지 않기에
결과에 집착하지 않는다.
그날의 상태로
그날의 역할을 마친다.
그 내려놓음이
다음 선택을 가볍게 한다.
식탁에서 무주를 익히면
삶의 다른 자리에서도
여운이 짧아진다.
잘된 일에 취하지 않고,
어긋난 일에 오래 머물지 않는다.
무주는 말한다.
만족은 잠시 머물러도 되지만
거처가 될 필요는 없다고.
지나가게 두는 것이
가장 자연스럽다고.
생활 속 실천
1. 일주일에 하루, 한 끼를 식사 후 평가하지 않기
2. 먹는 도중, 붙들지 않기
3. 먹고 난 뒤 생각하기
"오늘 나는 어디에 머무르지 않았는가"
올랭프 드 구쥬를 생각하며
우리는 무엇을 차별하고 있었는가.
그리고 무엇을 받아들일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