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상(無常)

매번 같은 맛을 기대하지 않기

by 룡하

1. 무상경(無常經)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세존께서 사위국(舍衛國) 기수급고독원(祇樹給孤獨園)에 계셨다.

그곳에서 세존께서 모든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색(色)은 무상하다고 관찰하라. 이렇게 관찰하면 그것은 바른 관찰[正觀]이니라. 바르게 관찰하면 곧 싫어하여 떠날 마음이 생기고, 싫어하여 떠날 마음이 생기면 기뻐하고 탐하는 마음이 없어지며, 기뻐하고 탐하는 마음이 없어지면 이것을 심해탈(心解脫)이라 하느니라.


이와 같이 수(受)·상(想)·행(行)·식(識)도 또한 무상하다고 관찰하라. 이렇게 관찰하면 그것은 바른 관찰이니라. 바르게 관찰하면 싫어하여 떠날 마음이 생기고, 싫어하여 떠날 마음이 생기면 기뻐하고 탐하는 마음이 없어지며, 기뻐하고 탐하는 마음이 없어지면 이것을 심해탈이라 하느니라.


이와 같이 비구들아, 마음이 해탈한 사람은 만일 스스로 증득하고자 하면 곧 스스로 증득할 수 있으니, 이른바 '나의 생은 이미 다하고 범행은 이미 섰으며, 할 일은 이미 마쳐 후세의 몸을 받지 않는다'고 스스로 아느니라. '무상하다[無常]'고 관찰한 것과 같이, '그것들은 괴로움[苦]이요, 공하며[空], 나가 아니다[非我]'3)라고 관찰하는 것도 또한 그와 같으니라."


모든 비구들은 세존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출처 : 실론섬, "잡아함경 제 1 권 (0001-0032)", 불광미디어, 2017.03.29, https://www.bulkwang.co.kr/news/articleView.html?idxno=30521


제행무상(諸行無常)은 삼법인(三法印) 가운데 하나다. 단순하게 이해하면 ‘모든 것은 항상하지 않다’, ‘모든 것은 변화한다’는 뜻이다. 보통 행을 사물의 변화, 운동, 움직임으로 이해한다. 그리하여 ‘세상 모든 것은 변화, 운동하는 것[제행]이니, 항상한 것이 아니다[무상]’로 받아들인다. 그래서 혹은 이렇게 말한다.


“제행무상은 변화하는 세상의 모습을 말한다. 겨울이 가면 봄이 온다. 해가 뜨면 해가 진다. 어린이는 청년이 되고, 노년이 된다. 모든 것은 다 변화한다. 세상은 이처럼 변화하는 것이니, 무엇을 붙잡아 두려고 하지 말라. 붙잡아 두려고 하니, 괴로운 것이다.”


맞는 말이다. 그런데 과연 제행무상을 제대로 이해한 것일까. 이러한 풀이를 볼 때 이런 생각을 한다. 과연 부처님 가르침이 이렇게 단순하고 쉬운 것일까. 물론 옛 스승은 깨닫기가 세수하면서 코 만지기보다 쉽다고 하지만.


행을 사물의 변화, 운동, 움직임으로 이해하여 ‘세상 모든 것은 변화, 운동하는 것[제행]이니, 항상한 것이 아니다[무상]’로 받아들인다면, 다음 게송은 이해하기 어렵다.


제행무상(諸行無常) 모든 행은 항상함이 없으니

시생멸법(是生滅法) 이는 생겨났다 사라지는 법이라.

생멸멸이(生滅滅已) 생겨나고 사라짐이 사라지면

적멸위락(寂滅爲樂) 고요함을 즐거움으로 삼네.

<(대승)대반열반경> 제13권


이 게송에서 ‘제행무상(諸行無常) 시생멸법(是生滅法)’을 ‘세상의 모든 것은 항상한 것이 없다. 세상 모든 것은 모두 생겨났다 사라지는 것이다’는 뜻으로 이해한다면, ‘생멸멸이(生滅滅已)’는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생겨나고 사라짐이 사라지면’은 무슨 뜻일까?


‘행’을 세상 모든 것의 운동, 변화를 뜻하는 생멸로 이해한다면 절대 풀리지 않는다. 행을 그렇게 이해한다면, ‘생멸이 사라진다(生滅滅已)’는 말은 생멸 즉 운동, 변화가 사라진다는 말이 된다. 그렇게 이해하면 앞에서 예를 든 ‘겨울이 가고 봄이 온다. 해가 뜨고 해가 진다. …’는 어떻게 되는가? 지금 겨울이 그냥 멈춰버린다는 말인가. 아침에 뜬 해가 그냥 중천에 멈춘다는 말인가. 설사 계절이 멈추고 해가 중천에 있게 되면 ‘고요함(열반)을 즐거움으로 삼’게 되는가?


행(行)에 대한 이해가 중요하다. 행은 세상 사물의 운동, 변화가 아니라 분별하는 마음 작용이다. 우리는 끊임없이 분별하며 살아간다. 지금 내 앞에 펼쳐진 세상은 내 마음과 별도로 있는 세상 그 자체가 아니라 내 마음의 분별로 인해 나에게 드러난 세상이다.


‘마음 작용으로 드러난 이 세상은 항상함이 없는 것이니[諸行無常], 이는 마음에 의해 생겨났다 사라졌다 하며 나에게 드러난 세상이라[是生滅法]. 이 생겨났다 사라졌다 하는 마음 작용이 일어나지 않으면[生滅滅已], 고요함(열반)을 즐거움으로 삼게 되는 것[寂滅爲樂]’이다.


출처 : 목경찬, "<6>제행무상(諸行無常) ①", 불교신문, 2024.02.16, https://www.ibulgyo.com/news/articleView.html?idxno=410939


와비사비는 우리에게 덧없고 무상한 것이 모든 자연의 본질임을 일깨워준다. 우리는 변화란 피할 수 없음을 인정하고 받아들여야만 한다. 그래야만 과거가 후회되고 현재가 만족스럽지 않아도 이것이 곧 지나가리라는 것을 알고 마음의 동요를 가라앉힐 수 있기 때문이다.


젊음도 예쁜 신발과 옷들도 시간이 지나가면서 세월에 바래진다. 억지로 세월을 거스르기 위해서 힘을 쓰는 대신에 이 과정을 음미하며 순간순간을 소중히 여기며 살아가는 삶의 태도를 선택하는 것이 정신 건강에도 좋다. 많은 사람들이 스트레스와 피곤으로 무엇을 위하는지도 모르게 시간을 날려 보내고만 있다.


와비사비가 다소 철학적이고 현실과 동떨어진 이야기인거 같지만 사실 너무 단순한 삶의 지혜이다. 삶은 계속 불완전하고, 이 불완전함을 완전함으로 바꾸기 위해 아등바등하는 대신 나에게 중요한 일에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변화하는 것을 음미하고 받아들이는 시간을 가져보자. 책 속의 많은 질문들이 이를 이끄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출처 : 최수진, "[Review] 완벽하게 불완벽한, 매일 매일, 와비사비!", 아트인사이드, 2019.04.10, https://www.artinsight.co.kr/news/view.php?no=41052



우리는 음식을 먹을 때
어제의 맛을 떠올린다.


지난번에 좋았으니
이번에도 같기를 바란다.


세존은 이렇게 말한다.

"모든 행은 항상함이 없다."

무상은 변화를 받아들이라는 말이 아니다.

같을 거라는 기대를 미리 내려놓는 태도다.

그 기대가
현재의 맛을 가린다.

무상의 식사는
매번 처음처럼 먹는다.


같은 재료여도,
같은 조리법이어도
결과는 다를 수 있음을
이미 알고 있다.


그래서 실망도 줄어든다.

채식이 무상이 되면
정답 레시피가 사라진다.


제철, 날씨, 컨디션에 따라
식단은 자연히 달라진다.


그 변동이
실패로 느껴지지 않는다.

못난이 농산물은
무상을 가장 잘 보여준다.


모양도, 수분도, 당도도
매번 다르다.


그 차이를 없애려 하지 않을 때
재료는 있는 그대로 쓰인다.

무상의 식사는

완벽하지 않다.


오늘의 최선으로 만들고,

남으면 다음을 준비한다.


흐름을 막지 않는 것이

무상의 지혜다.


우리는 음식을 통해

계속해서 배우고 있다.


붙잡으려 할수록

더 빨리 놓치고,

인정할수록

더 오래 함께한다는 것을.


채식은 무상을

받아들이는 훈련이 된다.


식물은 변화가 빠르고,

그 변화를 숨기지 않는다.


조금만 늦어도 색이 바뀌고,

식감이 달라진다.


그때 우리는 선택해야 한다.

버릴 것인가, 다른 방식으로 먹을 것인가.

무상은
포기하지 않는다.


집착을 내려놓을 뿐이다.
그래서 식사는
가벼워진다.

식탁에서 무상을 익히면
삶의 다른 장면에서도
결과를 덜 붙잡게 된다.


과정에 머물 수 있는 여유가
조금 생긴다.

무상은 말한다.
같기를 바라지 않을 때
지금이 더 잘 보인다고.


그때
맛도 마음도
제자리를 찾는다고.



생활 속 실천

1, 일주일에 하루, 한 끼를 같은 메뉴라도 비교하지 않기

2. 먹는 도중, 같기를 바라지 않기


3. 먹고 난 뒤 생각하기

“오늘 나는 무엇을 기대하지 않았는가.”



올랭프 드 구쥬를 생각하며


우리는 무엇을 차별하고 있었는가.

그리고 무엇을 받아들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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