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이 앞서지 않는 순간
<도덕경 49장>
聖人無常心 성인무상심
以百姓心爲心 이백성심위심
善者吾善之 선자오선지
不善者吾亦善之 불선자오역선지
德善 덕선
信者吾信之 신자오신지
不信者吾亦信之 불신자오역신지
德信 덕신
聖人在天下歙歙焉 성인재천하흡흡언
爲天下渾其心 위천하혼기심
聖人皆孩之 성인개해지
성인에겐 고정된 마음이 없다
백성의 마음을 자신의 마음으로 삼는다
선한 사람에게 선으로 대하고
선하지 않은 사람에게도 선으로 대한다
그러면 세상의 덕이 선해진다
신의 있는 사람에게 신의로 대한다
신의가 없는 사람에게도 신의로 대한다
그러면 세상의 덕이 신의로 가득찬다
성인은 세상에 임할 때
자신의 의지를 거두어 들이고
모든 것을 포용한다
그의 마음에는 일체의 분별심이 없다
그러면 백성들은 그들의 눈과 귀를 그쪽으로 돌리니
성인은 그들을 아이의 상태로 회복하게 한다
수행의 근원은 마음에서 비롯된다
노자가 도덕경 49장에서 말하는 고정된 마음이란 정해진 기준을 두고 생각함을 뜻한다. ‘성인에겐 고정된 마음이 없다’라는 노자의 말은 인간이 가야할 길인 도에 특정한 의미를 부여하지 않고 ‘도’라고 그대로 내버려 둠에도 잘 나타나 있다.
출처 : 손정, "[老子 리더십] 성인에게는 고정된 마음이 없다", https://www.ksam.co.kr/p_base.php?action=story_base_view&s_category=_2_&no=2451
도덕경 49장에 성인무상심(聖人無常心)이란 구절이 나온다. 성인(聖人)은 항상 변하지 않는 고정된 마음, 즉 상심이 없어야 한다는 것이다.
오늘 하루 만이라도 모든 사물을 열린 자세로 대하고, 고정관념을 버리는 생활을 실천하는 무상심(無常心)의 날이 되었으면 좋겠다. 성인은 오늘날의 리더다. 리더가 아집과 고집스러운 마음을 가지면 다른 마음을 가진 사람을 용서할 수 없게 된다.
출처 : 조춘식, "금일시무상심지일 (今日是無常心之日)", 대한노인신문, 2022.06.07, https://www.seniorpeople.co.kr/news/articleView.html?idxno=1145
무위와 유위를 마음에 적용한다면 무심(無心)과 유심(有心)이 될 것입니다. 무심(無心)은 마음(心) 없음(無)이고 유심(有心)은 마음(心) 있음(有)입니다. 무심은 마음이 비워져 있는 상태이고, 유심은 마음이 채워져 있는 상태라 할 수 있습니다.
노자(老子)가 “그 마음을 비우라.(虛其心)”고 말했듯이, 마음을 텅 비운 상태가 무심(無心)입니다. 마음을 텅 비웠다는 말은 무슨 뜻인가?
천지는 불인(不仁)하여 만물을 추구(芻狗)로 삼고, 성인도 불인(不仁)하여 백성을 추구(芻狗)로 삼는다.(天地不仁以萬物爲芻狗聖人不仁以百姓爲芻狗)
추구(芻狗)는 제사(祭祀)에 쓰기 위해 짚(芻)으로 만든 개(狗)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제사 때 정중하게 쓰이다가 제사가 끝나면 버려지는 천한 물건인데, 천지는 불인(不仁)하여 만물을 추구(芻狗)로 삼는다는 겁니다.
이게 무슨 말인가? 인(仁)은 생명을 사랑하고 사물을 아끼는 마음이니, 천지(天地)가 불인(不仁)하다는 것은 천지(天地)한테 그런 마음이 없어서 만물을 하찮게 여긴다는 말인가? 아닙니다.
천지는 하나의 자연(自然)으로, 의지를 갖고 있지 않는 비인격자(非人格者)입니다. 비인격자인 까닭에 인자(仁慈)한 마음으로 만물을 낳고 기르지 않습니다. 그저 도(道)의 작용에 따라 만물이 저절로 나서 자라다가 시들어 떨어지게 합니다. 제사 때 귀하게 사용되다가 제사가 끝나면 미련 없이 버려지는 추구(芻狗)처럼 말입니다. 천지는 만물이 저절로 생성하고 소멸하게 할 뿐 아무일도 하지 않습니다. 아무 마음도 쓰지 않습니다. 그것이 바로 무위(無爲)이고 무심(無心)입니다.
출처 : 김삼덕, "[온고지신] 무위는 텅 빈 상태로 만드는 것", 전민일보, 2015.12.18, https://www.jeonmin.co.kr/news/articleView.html?idxno=143368
우리는 먹기 전부터
판단을 끝낸다.
이건 몸에 좋고,
이건 덜 좋고,
이건 오늘의 기분에 맞지 않는다는 식으로.
노자는 <도덕경>에서 이렇게 말한다.
"성인에게는 항상 변하지 않는 고정된 마음이 없다."
무심은 아무 생각이 없는 상태가 아니다.
생각이 먼저 나서지 않는 상태다.
그 판단이
맛을 앞질러 간다.
무심의 식사는
설명이 없다.
먹으면서 해석하지 않고,
의미를 붙이지 않는다.
그 덕분에
감각이 늦지 않는다.
채식이 무심이 되면
윤리도, 습관도
잠시 뒤로 물러난다.
지금 씹히는 질감과
지금 느껴지는 온기만 남는다.
그 순간
식사는 명상이 된다.
못난이 농산물을 다룰 때
무심은 더 자연스럽다.
기대가 적기에
비교도 줄어든다.
그저 손이 움직이고
조리가 진행된다.
좋은 선택이라는 말보다
지금의 선택이라는 말이
더 정확해진다.
판단이 줄어들면
비교도 줄어든다.
비교가 줄면
불안도 줄어든다.
식사는 다시
휴식이 된다.
무심은
무관심과 다르다.
의미를 제거한 뒤에
남는 집중이다.
그 집중이
오히려 더 깊다.
식탁에서 무심을 익히면
삶의 다른 자리에서도
생각이 한 발 늦어진다.
즉각적인 반응 대신
잠깐의 여백이 생긴다.
무심은 말한다.
모든 것을 이해하지 않아도
충분히 살아갈 수 있다고.
생각이 비켜설 때
삶은 더 또렷해진다고.
생활 속 실천
1. 일주일에 하루, 한 끼를 의미 붙이지 않기
2. 먹는 도중, 좋고 나쁨을 말로 하지 않기
3. 먹고 난 뒤 생각하기
“오늘 나는 무엇을 생각하지 않았는가.”
올랭프 드 구쥬를 생각하며
우리는 무엇을 차별하고 있었는가.
그리고 무엇을 받아들일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