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먹고 싶지 않은 순간
첫째 무탐無貪은 탐욕의 반대로 애착이 사라진 마음이다. 탐욕이 없는 무집착無執着 또는 집착하지 않는 비집착非執着의 마음이 무탐이다. 호법護法의 『성유식론』에 따르면 무탐이란 “윤회의 삶[有]과 그 원인[有具]에 대해서 탐착 없음[無著]을 체성으로 삼고, 탐착을 잘 다스려[對治] 선을 행하게 함을 업으로 한다[作善為業].”고 했다. 무탐이란 윤회의 삶과 윤회의 삶을 초래하는 원인에 대해 탐내거나 집착하지 않는 것을 본성으로 삼고, 선을 행하게 만드는 작용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출처 : 서재영, "삼선근, 마음을 풍요롭게 하는 뿌리 > 월간고경", 백련불교문화재단, 2020.06.22, http://sungchol.org/bbs/board.php?bo_table=magazine&wr_id=1083&sfl=mb_id&stx=jak_013&location=main&page=3
탐(貪) 진(瞋) 치(痴) : 불교에서는 이 세 가지를 ‘삼독(三毒)’이라고 한다. 악의 대표자 3인방으로서 인간의 본성을 망가뜨리고 니르바나와 깨달음을 가로막는 성질을 가지고 있다.
탐(貪)은 정신적 물질적 욕망과 욕심을 뜻한다. ‘탐’의 특성은 ‘만족’이라는 단어를 모른다. 진(瞋)은 증오와 분노, 노여움이다. ‘진’은 누가 조금만 충고 비판해도 발끈한다. 역시 ‘인내’라는 어휘를 모른다. 치(痴)는 어리석음, 무지(無知), 무명(無明)이다. ‘치’는 모든 현상을 무조건 영원한 것으로 보는 특성을 갖고 있다. 공(空)과 무아에 대한 개념이 없다.
탐진치 삼독을 통제하지 못하면 그는 아직 니르바나에 도달한 것이 아니다. 깨달음을 이룬 것이 아니다. 우리가 겪는 정신적 현실적 고통과 괴로움, 그리고 고뇌와 번민도 모두 무지로부터 비롯된다. 그러므로 첩경은 무지를 추방하고 지혜를 영입하는데 달려 있다고 하겠다
출처 : "‘탐(貪)’ ‘진(瞋)’ ‘치(痴)’", 불교신문, 2009.04.11, https://www.ibulgyo.com/news/articleView.html?idxno=95270
탐(貪)이라는 말은 이제 금(今)과 조개 패(貝)가 합쳐진 말입니다. 한자의 구성을 보고 저는 무릎을 쳤습니다. 패는 돈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지금 눈앞에 있는 돈에 마음이 가 있는 게 욕심입니다. 여기에서 돈은 다른 것으로도 바꿀 수 있습니다. 눈앞에 갖고 싶은 것, 취하고 싶은 것에 얽매여 앞을 보지 못한다면 깨달음은 이미 끝난 겁니다. 나는 무엇을 그리 손에 꼭 쥐고, 놓고 싶지 않은지 살펴봅니다. 그것을 남들은 모를 거라 생각하고 때로 늘 초조해 하며 때로는 미소 지으며 말입니다.
출처 : 조현용, "[우리말로 깨닫다] 한자로 본 탐진치(貪瞋痴) 세상", 재외동포신문, 2023.1.25, https://www.dongponews.net/news/articleView.html?idxno=47028
우리는 식사에서
끝을 놓친다.
배는 이미 찼는데,
입은 계속 찾고,
마음은 다음 한 입을 상상한다.
호법은 <성유식론>에서 이렇게 말한다.
"윤회의 삶과 윤회의 삶을 초래하는 원인에 대해 탐내거나 집착하지 않는다."
무탐은 욕망을 억누르는 일이 아니다.
욕망이 더 커지기 전에 멈출 수 있는 감각이다.
그 탐이
만족을 밀어낸다.
무탐의 식사는
충분함을 알아본다.
아직 먹을 수 있어도
더 먹지 않아도 된다는 신호를
놓치지 않는다.
그 신호가
식사의 마침표가 된다.
채식이 무탐이 되면
양은 자연히 줄어든다.
참아서가 아니라
필요가 사라져서다.
그 가벼움이
몸을 편안하게 만든다.
못난이 농산물을 다룰 때
무탐은 더 또렷해진다.
과시할 요소가 없기에
과하게 만들 이유도 없다.
딱 필요한 만큼으로
충분해진다.
무탐은
절제가 아니다.
욕망을 적으로
삼지 않는 태도다.
그 태도 덕분에
식사는 평온해진다.
식탁에서 무탐을 익히면
삶의 다른 자리에서도
멈출 수 있는 지점이 보인다.
더 가지려는 순간보다
이미 충분한 순간을
먼저 알아본다.
무탐은 말한다.
더 먹고 싶다는 생각보다
이제 됐다는 감각이 훨씬 정직하다고.
그 감각을
믿어도 된다고.
생활 속 실천
1. 일주일에 하루, 한 끼를 더 먹을 수 있어도 멈추기
2. 먹는 도중, 아쉬움을 이유로 더 담지 않기
3. 먹고 난 뒤 생각하기
"오늘 나는 무엇을 탐하지 않았는가"
올랭프 드 구쥬를 생각하며
우리는 무엇을 차별하고 있었는가.
그리고 무엇을 받아들일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