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돈이(周敦頤), "애련설(愛蓮說)"

연꽃

by 룡하

‘水陸草木之花 可愛者甚蕃, 晉陶淵明 獨愛菊 自李唐來, 世人 甚愛牧丹’ (물이나 육지의 풀과 나무의 꽃으로 사랑스러울 만한 것이 매우 많은데, 진나라의 도연명은 오직 국화를 좋아하였고, 당나라 이후로 세상 사람들은 모란꽃을 좋아하였다.)


‘予獨愛蓮之出於淤泥而不染, 濯淸漣而不夭, 中通外直, 不蔓不枝, 香遠益淸, 亭亭淨植, 可遠觀而不可褻翫焉’ (나는 연꽃이 홀로 진흙에서 나왔으면서도 물들지 않고, 맑은 물결에 씻기면서도 오염되지 않으며, 속이 비어있고 겉이 곧으며 덩굴도 뻗지 않고, 가지도 치지 않으며, 향기가 멀수록 더욱 맑고, 우뚝이 깨끗하게 서있어, 멀리서 바라볼 수 있어 부담 없고 싫지 않기 때문에 사랑한다.)

‘予謂菊 花之隱逸者也, 牧丹花之富貴者也, 蓮花之君者也, 噫 菊之愛 陶後 鮮有聞, 蓮之愛 同予者何人, 牧丹之愛 宜乎衆矣’ (나는 생각하건대 국화는 꽃 중의 은자이고, 모란은 꽃 중의 부귀한 자이며, 연꽃은 꽃 중의 군자라고 여긴다. 아! 국화를 사랑하는 이는 도연명 이후에 또 있다는 말을 들은 적이 드물며, 연꽃을 사랑하는 이는 나와 같은 자가 몇이나 되는가? 모란을 사랑하는 이는 당연히 많으리라.)

애련설은 염계선생이 말년에 여산에서 지내면서 지은 산문이며, 전반부는 연꽃의 고결함을 묘사하고, 후반부는 연꽃과 국화와 모란을 비교하고 있으며, 모란은 부유한 자, 국화는 현명한 자, 연꽃은 군자로 평가하면서 국화와 연꽃을 좋아하는 사람이 없음을 아쉬워하고 있다. 애련설은 우리나라에도 창덕궁 후원의 애련지(愛蓮池)와 애련정(愛蓮亭)에 그 이름의 흔적이 남아 있고, 오늘날 우리사회에도 경종이 되고 있다.


출처 : 권해조, "[권해조 문화칼럼]주돈이(周敦頤)와 애련설(愛蓮說)", 경기데일리, 2019.07.17, https://www.ggdaily.kr/88600



네번째 격자틀 인식 모형, 영화2 8화 마담 프루스트의 비밀정원 편에서 화가 모네에게 받은 영감을 바탕으로 자화상을 그리고자 한다고 적었다.


모네는 1883년 프랑스 노르망디 지방의 마을 지베르니(Giverny)에 터를 잡고 40여 년간 정원을 가꾸며 살아갔는데, 1889년 파리박람회에서 수련이 발하는 은은한 향기와 형상에 매료된 이래로 자신의 집 연못을 수련으로 뒤덮어버리고 205여 점에 달하는 수많은 수련 연작을 그립니다. 수련은 수면 아래 진흙에 뿌리를 내리고, 줄기를 수면 위로 길게 뻗어 꽃을 피우는 수생식물(aquatic plant)입니다. 또한 수련은 날씨, 습도, 시간대에 따라 매 순간 다른 빛깔과 형태를 드러내며 변화무쌍한 매력을 자랑하지요. 한편으로는 외부의 자극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예민한 기질의 사람을 연상하게도 합니다. 모네에게 수련은 자연이 매 순간 빚어내는 찰나의 회화로 비춰졌을 것 같아요.


클로드 모네, <수련이 있는 연못(The Water-Lily Pond)>, 1899년, 캔버스에 유채, 88.3x93.1cm / 그림출처. © The National Gallery


순간의 아름다움을 기억하는 예술


모네는 백내장을 심하게 앓던 시기인 70대에도 수련을 그렸습니다. 노년에 화폭에 담은 수련은 마치 시련의 한복판에서 아름다움의 자취를 찾아내려는 듯한 마음으로 보입니다. 1908년부터 시력을 잃어가고, 3년 뒤인 1911년 아내 알리스가 세상을 떠났습니다. 불행의 파도는 몰아서 닥친다는 속설처럼 상실의 아픔을 겪은 3년 뒤인 1914년에는 소중한 첫째 아들을 잃게 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네는 매 순간 차오르는 슬픔을 이겨내며, 마치 마음을 수련하듯 수많은 수련을 그려냈습니다. 인생의 고통이 극심할 때, 예술이 도피처가 되어 준 경험이 여러분에게도 있을지 모릅니다. 아마도 모네는 수많은 수련을 그리며 스스로 위로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야속하리만치 화살처럼 빠르게 지나가 버린 세월을 돌아보며 그리운 이들을 만나지 못하는 슬픔을 달래면서 말이지요.


모네의 그림을 바라보면, 흘러가는 세월 속에서 마주한 생의 아름다움을 간절히 붙잡아 영원히 화폭에 남기려는 마음을 느낄 수 있습니다. 시간의 흐름을 막을 수는 없기에 끝내 좌절하게 될 시도일지라도 말이지요. 모네의 붓끝에 담긴 시간의 인상은 오늘날까지 우리에게 말을 건넵니다. 지나가는 순간도 아름다움을 발견하면 영원이 될 수 있다고 말이지요.


출처 : 김민지, "순간의 아름다움을 담다, 클로드 모네와 인상주의의 미학", 한국경제, 2025.05.22, https://www.hankyung.com/article/202505088957i


△연꽃과수련구분법

연꽃이 피면 물비린내가 사라지고 향기가연못에가득해진다. 대개 이른아침에 꽃잎을열었다가해가지면닫는다. 따라서 오전 6~11시 정도가 연꽃 감상하기 좋은때이다. 피어난지3일만에지는데, 이때 꽃잎이 하나씩 떨어진다. 연꽃과수련의가장다른점은잎에있다. 연꽃잎(사진 왼쪽)은물위로쑥올라와 물에 젖지 않는 반면, 수련의 잎(오른

쪽)은 수면 위에 떠 있다. 꽃도 마찬가지. 연꽃은허공에피고, 수련은잎과 함께물 위에 뜨면서 핀다. 줄기도 차이가 있다.수련 줄기에는 가시가 없지만 연꽃에는 있다. 또하나의차이점. 연잎은둥글지만 수련잎은갈라져있다. 수련은연꽃과달리 한낮에도날이많이흐리면펼친꽃을 닫아버리고잠에빠져든다. 물론햇살이 나오면 다시 피어난다.


출처 : 서원극, "같은 듯 다른 연꽃수〮련... ‘잎’만 보면 알 수 있어요", 소년한국일보, 2021.07.04, https://www.kidshankook.kr/news/articleView.html?idxno=49


처렴상정(處染常淨). 연꽃을 상징하는 사자성어이다. 더러운 곳에 있어도 항상 깨끗하다는 의미이다. 탐진치 삼독에 물든 중생들이 사는 사바세계에서도 깨달음의 향기를 잃지 않는 연꽃은 불교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꽃이다. 석가모니 부처님이 영산회상에서 연꽃 한 송이를 들어 가르침을 전한 염화미소(拈華微笑)는 ‘마음에서 마음으로 전하는 진리’를 나타낸다. <편집자>


연꽃은 곧 불교이다. 어머니 마야부인의 옆구리에서 태어난 고카마싯다르타가 사방으로 일곱걸음을 떼어 놓을 때마다, 연꽃이 피어났다고 한다. 불교의 시작이 그렇게 연꽃과 함께 했다. 아기 부처님과 연꽃의 인연은 후대인들이 각종 벽화나 불화에 연꽃을 그려 넣으며 이어졌다. 지금도 사찰 벽화나 불화 등에는 아기 부처님이나 동자들이 연꽃 위에 앉아 있거나, 뛰어 노는 모습을 표현한 사례를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다. 파주 보광사 대웅보전의 연화화생도 역시 그 가운데 하나다. 수십 송이의 연꽃 마다 불보살과 동자가 앉아 있는 그림으로, 불교와 연꽃의 깊은 인연을 보여주기에 충분하다.


또한 불상을 봉안하는 좌대를 연화대(蓮花臺)라고 하며, 불상 뒤 대부분의 광배도 연화화생(蓮華化生)으로 표현하고 있다. 부처님에게 귀의해 가르침을 받아들이고 실천하면 서방정토에 왕생할 때 연꽃 속에서 태어난다는 것이 연화화생이다. 즉 광배를 연화화생으로 표현하고 연화대에 불상을 모시는 것은 곧 불교에 귀의해 수행정진하겠다는 원력의 표시이다.


<화엄경탐현기(華嚴經探玄記)>에는 연꽃의 덕을 네 가지로 설명한다. 향(香, 향기), 결(潔,고결), 청(淸, 맑음), 정(淨, 깨끗함)이 그것이다. 비록 중생이 사는 세간이 무명과 탐욕으로 얼룩져 있지만, 진리를 상징하는 연꽃은 청정하고 깨끗하여 맑은 향기를 전한다는 의미이다. 이런 까닭에 부처님이나 불교 관련 성보를 모시는 자리를 연꽃으로 장엄하고 있는 것이다. 출가하여 수행하는 스님들이 착용하는 가사를 연화의(蓮華衣), 연화복(蓮華服)이라고 하는 것도 연꽃이 세간에 물들지 않고 청정함을 상징하기 때문이다.


연꽃은 불교 발생지인 인도 대륙에서 오래전부터 귀하게 여겼다. 상서로움을 지닌 것으로 이해한 사람들은 거룩한 부처님과 그 가르침을 연꽃에 비유했다. 이런 풍습은 중국, 한국, 일본, 동남아로 이어졌다. 불교의 전통을 지닌 동북아시아와 동남아시아 대부분 국가가 연꽃을 공유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들 지역의 상징이나 마찬가지다.


연꽃을 불교의 상징으로 여기는 이유는 여럿이지만 크게 3가지를 꼽는다. 첫째는 진흙에 뿌리 내리고 피는 꽃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더러운 곳에 있어도, 더러움에 물들지 않고 한송이 꽃을 피운다. 둘째는 진리를 상징한다. 연꽃은 꽃잎이 필 때 씨방도 함께 여문다. 즉 꽃이 자랄 때 꽃잎과 씨방이 같이 자란다. 인과를 상징하고, 과거 현재 미래 삼세가 하나로 연결되어 있음을 보여준다. 셋째는 불성(佛性)에 있다. 꽃을 활짝 피운 연꽃은 씨앗이 떨어져 아무리 오랜 시간이 흘러도 썩지 않는다. 그렇게 인고의 세월을 보내다 인연이 되면 다시 꽃을 피운다.


우리나라에서 불교의 상징이 된 연꽃의 역사는 매우 길다. 고구려 시대 벽화고분으로 북한 국보 제28호인 ‘안악3호분’에도 연꽃이 등장한다. 황해도 안악군 용순면 유순리에 위치한 안학3호분의 연꽃을 통해 고구려 소수림왕 시대, 즉 4세기 중엽 이전에 불교가 전래 했을 가능성을 보여준다.


불교와 연꽃의 인연은 대표적인 대승경전인 <묘법연화경(妙法蓮華經)>을 통해 확인 가능하다. 줄여서 <법화경>이라 불리는 <묘법연화경>의 연화가 곧 연꽃이다. 부처님 진리를 담은 경전 이름에 연꽃을 넣은 상징성은 매우 크다. 진흙에서 꽃을 피우는 연꽃처럼 중생의 무명을 걷어내고, 불법(佛法)을 실천해야 한다는 가르침을 담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사찰에서 가장 많이 사용하는 문양도 연꽃이다. 앞서 언급한 연화대 외에도 불단, 천장, 문살, 탑, 부도, 기와 등에 장식된 연꽃 문양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다. 지옥 중생에게 진리를 전하는 의미를 담은 범종(梵鐘)에도 연꽃이 등장한다. 종 치는 부분인 당좌(撞座)도 연꽃 문양을 하고 있다.


동국역경원에서 발간한 <불교성전>에는 연꽃이 지닌 의미를 잘 설명하고 있다. “세속에서 물러나 청정한 행을 닦는 수행자는 마음에서 멀리 떨어진 곳[寂靜處]을 즐겨 찾는다. 그가 생존의 영역 속에 자기를 드러내지 않는다면 그것은 그에게 어울리는 일이다. 성인은 아무것에도 매이지 않고 사랑하거나 미워하지 않는다. 또 슬픔도 인색함도 그를 더럽히지 못한다. 이를테면, 연꽃잎에 물방울이 묻지 않듯이, 성인은 보고 배우고 사색한 어떤 것에도 더럽혀지지 않는다.”


경전에 나오는 연꽃


소리에 놀라지 않는 사자와 같이,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과 같이, 진흙에 물들지 않는 연꽃과 같이,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숫타니파타>


여래 몸의 털 구멍마다 빛이 나와 빛줄기 하나하나 끝에 연꽃이 있고, 그 연꽃마다 화불이 있어, 이를 둘러싼 대중들에게 설법을 한다. <관무량수경>


정토에 나서 그 연태(蓮胎, 연꽃)에 들어가 모든 쾌락을 얻는다. <연종보감>


연꽃의 연하고 깨끗함으로써 신력(神力)을 나타내어 그 위에 앉는 것은 꽃이 상하지 않게 하고자 함이다. 또 묘법(妙法)의 자리를 장엄하게 하는 까닭이다. 다른 꽃은 모두 작고 연꽃같이 향기가 깨끗하고 큰 것이 없기 때문이다. … 부처님이 앉은 꽃은 이보다 크기가 백천만배 이다. 또 이같은 연화대는 깨끗하고 향기가 있어 앉을 만하다. <대지도론>


출처 : 이성수, "문화마당 / 연꽃의 의미", 불교신문, 2017.07.03, https://www.ibulgyo.com/news/articleView.html?idxno=158884


연꽃은 불교를 통해서 중국과 동아시아로 전래한 외래문화이다. 그럼에도 연꽃은 불교를 넘어 유교 등에서도 다양한 수용이 확인된다. 이런 연꽃의 외연 확대에 있어, 주목되는 문헌이 바로 「애련설」이다. 「애련설」은 신유학(新儒學)의 시조(始祖)로까지 평가되는 북송시대 주돈이(周敦頤)가 찬술한 문헌이다. 「애련설」에서 주돈이는 연꽃을 군자(君子)의 상징으로 재규정하고 있다. 이는 주돈이의 신유학 안에서의 위치와 더해져, 연꽃이 신유학 안에서 군자의 상징으로 수용되는 토대를 구축한다. 연꽃은 동아시아에서 불교의 상징으로 이해되지만, 그 내용과 이미지는 주돈이 이전에는 선명하지 못했다. 이 부분이 「애련설」의 연꽃에 대한 상징 정리를 통해 보다 분명해진다. 즉 「애련설」을 통해서 연꽃은 불교라는 틀을 깨고, 동아시아를 대표하는 꽃으로 재정립되는 것이다.


출처 : 염중섭. (2019). 동아시아의 연꽃 상징에 끼친 <애련설(愛蓮說)>의 영향 검토. 종교문화연구, 33, 101-126.


모네의 수련이 있는 연못을 참고하여 자화상에 연꽃을 그리고자 한다.



세번째 격자틀 인식 모형, 역사 14화 우즈베키스탄, "티무르" 편에서 아름다움(신이 현존한다는 증거, 신 = 일자 = 좋음의 이데아)을 인지하기 위해 아름다움에 대한 동서양의 철학과 세계관에 대해 책을 쓰고자 한다고 적었다.



인상주의는 19세기 후반 프랑스 파리에서부터 태동된 미술사조이다. 인상주의는 선적인 데생을 중시하고 보수적이었던 아카데미에서 벗어나 개인의 감정, 혹은 사물이나 풍경의 개인적 인상에 집중한다. 기존 미술에 대한 저항과 더불어 감각에 대한 새로운 인식의 변화를 가져왔다는 점에서 현대미술의 시작으로 보고 있다.


출처 : 원정민, "[인상주의 화가 열전 ②] 마네의 등장, 인상파와 현대미술의 시작", 데일리아트, 2026.02.05, https://www.d-art.co.kr/news/articleView.html?idxno=2530



인상주의를 책에 넣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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