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거롭지 않은 한 끼
그래서 불교는 번뇌가 곧 보리(지혜)라는 말을 강조한다. 번뇌가 어리석음에서 일어난다면 그 어리석음을 제거하면 어리석음이 바로 지혜로 변한다. 쉬운 예를 들어보자. 널리 알려진 비유이지만 유리컵에 반이 담긴 물을 보고 ‘물이 벌써 반이나 없어졌어’의 부정적인 시각은 번뇌이고 ‘물이 아직 반이나 남았네’로 보는 긍정적인 시각은 지혜이다. 다시 말해 ‘벌써’의 부정적인 시각을 ‘아직’의 긍정적인 시각으로 바꾸면 되는 것이다. 자신의 힘으로는 외부의 환경이나 사물을 바꿀 수 없는 것이 너무 많다. 바꿀 수 없는 것을 억지로 바꿔야 한다고 고집할 때 괴로움이 일어난다. 그러나 그걸 바꿀 수 있는 것은 결국 외부의 환경이 아니라 거기에 대응하는 자신의 마음이라는 것을 깨달을 때 지혜가 생기는 것이다.
출처 : 목석, "절집 이야기 31 - 번뇌(煩惱)", 법보신문, 2004.08.10, https://www.beopbo.com/news/articleView.html?idxno=25949
본 논문은 인도불교상에서 번뇌 개념의 변천과 번뇌생성의 구조를 살펴본 것이다. 먼저 煩惱로 번역되는 kilesa(범어; kleśa)는 탐욕과 진에 그리고 우치라고 하는 삼불선근을 포함하고 있으며, 漏로 번역되는 āsava는 욕루와유루 그리고 무명루를 포함하고 있다. 이러한 번뇌(kilesa)와 루(āsava)는중생들의 마음의 해탈을 장애하여 중생들로 하여금 윤회하게 하는 결정적인 요인이 된다. 『대비바사론』에서는 번뇌 즉 kleśa가 오염된 마음을통칭하는 용어로 사용되고 있으며, 번뇌와 번뇌의 습기를 구분하고 있다. 경량부는 번뇌가 잠자고 있는 상태를 수면이라 하고, 번뇌가 깨어있는 상태 즉 드러나 마음을 속박하고 있는 상태를 전(纏)이라 한다. 유가행파의문헌에서는 유루법을 분류하는 최상위 개념으로 잡염법이 쓰이고 있으며, 『섭대승론석』에서 잡염법의 종자가 아뢰야식과 동일하지도 다르지도 않다고 한다. 『맛지마 니까야』에서 무명과 번뇌는 상호의존적 관계에 있으며, 수행자에게 번뇌발생의 결정적 요인은 이치에 맞지 않게 정신을 쓰는 것[非 如理作意]에 있다. 『아비달마구사론』은 세 가지 조건을 말하고 있는데, 아직 끊어내지 못한 번뇌의 수면이 내면에 내재해 있고, 번뇌와 관련된경계가 현재 앞에 있으며, 그 경계를 연하여 이치에 맞지 않게 작의를하는 것이다. 유가행파의 문헌인 『유가사지론』의 경우는 번뇌 발생의 원인으로 앞의 세 가지에 불선한 이를 가까이하는 것과 정법이 아닌 것을듣는 것 그리고 먼저 키우고 자주 익힌 세력 등 세 가지를 추가하고 있다. 『변중변론』의 경우에는 삼계의 심과 심소는 모두 허망분별이며, 이러한 허망분별로 인해 잡염의 모습이 펼쳐진다고 한다. 결국 번뇌는 크게 표면적으로 드러난 것과 내면에 잠재되어 있는 것으로 장차 드러낼 가능성을 지닌 것으로 나누어진다고 하겠다. 이와 같은번뇌가 표면적인 것이든 잠재적인 것이든간에 번뇌를 소멸시키는 시작점은 이치에 맞게 작의하는 것임을 알 수 있다.
출처 : 김치온. (2025). 인도불교에서 번뇌개념의 변천과 번뇌 생성에 대한 고찰. 불교문예연구, 26, 267-295.
불교는 인간의 괴로움과 그 소멸에 대한 가르침이다. 붓다의 첫 번째 설법인 전법륜경1)에서 설명한 네 가지 고귀한 진리[四聖諦]가 바로 괴로움을 바탕으로 한 그 원인과 소멸과, 소멸에 이르는구조를 보여주는 불교의 핵심 가르침이다. 붓다는 중생들이 빠져 있는괴로움의 상태를 다음과 같이 말한다.
비구들이여, 이 윤회는 그 처음을 알 수가 없다. 최초의 시간은 알려질 수 없다. 무명(無明)에 의해 덮여 있고(avijjānīvaraṇānaṃ), 갈애(渴愛)에 의해 속박되어 있는(taṇhāsaṃyojanānaṃ) 중생들은 이 생사의 세계에서 이리저리 헤매며 삶과 죽음을 되풀이한다.2)
무명이라는 번뇌에 덮여있고3), 갈애라는 번뇌에 의해 속박되어 있는 중생들은 괴로운 윤회의 생존을 반복하게 된다는 점을 분명히 보여주고 있다. 무명과 갈애는 초기경전에서 가장대표적인 번뇌이며, 12연기의 첫 번째와 여덟 번째에 제시되는 번뇌4)이다.
1) SN V pp. 420-424, Vin I p. 10.
2) SN II p. 179.8-10. anamataggāyaṃ bhikkhave, saṃsāro pubbākoṭi na paññāyati avijjānīvaraṇānaṃ sattānaṃ taṇhāsaṃyojanānaṃ sandhāvataṃ saṃsarataṃ. 냐나틸로카(2008) p. 56.
3) Sn 1039게, 세상은 무명에 의해 덮여 있다. avijjāya nivuto loko
4) 사성제에서 괴로움의 원인 또는 발생의 집성제로 무명에서 시작되는 12연기 전체가 제시되는 경전도 있다. AN I p. 177.5-14. katamañ ca bhikkhave dukkhasamudayaṃ ariyasaccaṃ avijjāpaccayā saṅkhārā saṅkhārāpaccayā viññāṇaṃ, viññāṇapaccayā nāmarūpaṃ, nāmarūpapaccayā saḷāyatanaṃ, salāyatanapaccayā phasso, phassapaccayā vedanā, vedanāpaccayā taṇhā, taṇhāpaccayā upādānaṃ, upādānapaccayā bhavo, bhavapaccayā jāti, jātipaccayā jarāmaraṇaṃ, sokaparidevadukkhadomanassūpāyāsā sambhavanti. evam etassa kevalassa dukkhakkhandhassa samudayo hoti. idaṃ vuccati bhikkhave dukkhasamudayaṃ ariyasaccaṃ. 대림스님(2006) pp. 441-442.
출처 : 김재성. (2010). 초기불교의 번뇌. 인도철학, 29, 227-266.
우리는 식사를
점점 복잡하게 만든다.
고를 것, 준비할 것,
정리할 것까지 늘어난다.
붓다는 <전법륜경>에서 이렇게 말한다.
"번뇌에 의해 속박되어 있는 중생들은 괴로운 윤회의 생존을 반복하게 된다."
무번은 귀찮음을 피하겠다는 선언이 아니다.
번거로움을 굳이 만들지 않는 태도다.
그 번거로움이
먹기 전부터 지치게 한다.
무번의 식사는
과정이 짧다.
결정도 빠르고,
준비도 단순하다.
그래서
먹는 일에 에너지를 남긴다.
채식이 무번이 되면
의식은 줄어든다.
특별한 조합을 만들지 않고,
완벽한 균형을 계산하지 않는다.
그 단순함이
지속을 가능하게 한다.
못난이 농산물을 다룰 때
무번은 자연스럽다.
다듬을 부분이 명확하고,
꾸밀 필요가 없다.
손이 해야 할 일만 남는다.
무번은
성의 없음이 아니다.
불필요한 단계를
덜어내는 선택이다.
그 선택 덕분에
식사는 가벼워진다.
식탁에서 무번을 익히면
삶의 다른 자리에서도
복잡함을 덜 부른다.
굳이 어렵게 하지 않아도
되는 일들이
눈에 들어온다.
무번은
말한다.
번거로움은
필수처럼 보이지만
대부분 선택이라고.
덜 만들면
이미 충분하다고.
생활 속 실천
1. 일주일에 하루, 한 끼를 과정 하나 줄이기
2. 먹는 도중, 하지 않아도 되는 일을 하지 않기
3. 먹고 난 뒤 생각하기
"오늘 나는 무엇이 번거롭지 않았는가."
올랭프 드 구쥬를 생각하며
우리는 무엇을 차별하고 있었는가.
그리고 무엇을 받아들일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