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란 황금물결
스쳐 가는 차창 밖 벌판과 야산 기슭에는 개나리처럼 생긴 서양골담초가 노란 황금물결을 이루고 있었습니다. 그 사이사이 아까시나무처럼 생긴 노란 꽃을 달고 있는 꽃나무가 함께 어우러져 한창 꽃을 피우고 있었습니다. 산야에 넓게 펼쳐진 황금 꽃나무, 바로 뉴질랜드 나라꽃 코와이(Kowhai)라 합니다.
코와이는 콩과 식물로서 뉴질랜드와 칠레 남쪽에 분포하는 상록수입니다. 10월이나 11월 개화 직후에 대부분의 잎을 잃지만 신속하게 새잎을 만듭니다. 높이는 10m에 달하고 꽃은 황색으로 가지 끝에 총상꽃차례로 달려 커다란 황금 꽃 더미처럼 보입니다. 하천 옆과 숲 가장자리, 저지대 또는 산기슭 등 전국 어디에서나 흔히 볼 수 있는 꽃나무라 합니다.
출처 : 박대문, ""무궁화, 나라꽃으로 관습화돼 있지만 전형적인 표본이 없다."", 제주환경일보, 2019.12.26, https://www.newsje.com/news/articleView.html?idxno=212759
수년간의 협상 끝에 뉴질랜드 타라나키 산에 사람과 동일한 법적 권리가 부여됐다. 이 산은 지역 부족과 정부의 대표가 협력해 관리하게 된다.
31일(현지시간) BBC에 따르면 타라나키 산에 사람과 동일한 법적 권리를 부여하는 협의가 법률로 제정됐다. 이는 식민지화 기간 동안 타라나키의 마오리족 등 부족이 겪은 광범위한 토지 몰수를 포함해 그들에게 가해진 불의에 대한 보상 조치다.
과거 1840년 마오리족이 토지의 소유권을 갖되 사회에 대한 통치권은 영국왕실이 갖는다는 내용을 담은 ‘와이탕이 조약’이 체결됐다. 이 조약에 따라 영국은 마오리 원주민을 통치하지만 땅·숲·수산자원·문화 등 ‘타옹가’로 불리는 각종 자원에 대한 마오리족의 권리는 인정됐다.
하지만, 영어와 마오리어로 각각 쓰인 조약 내용이 미묘하게 달라 그동안 여러 차례 분쟁이 벌어지기 일쑤였다.
또, 새로운 정부가 들어서면서 마오리어 활성화 차단과 와이탕이 재판소의 기능을 축소하는 등 마오리족의 이익에 반하는 입법 변화가 발생하면서, 새 정부의 정책방향에 심각한 우려가 제기되기도 했다.
이번 협상을 담당한 폴 골드 스미스 정부 장관은 “우리는 과거의 잘못으로 인해 발생한 상처를 인정해야 한다. 산을 포함한 자연적 특징이 조상이자 살아있는 존재라는 부족의 세계관을 인정한다”며 ‘타라나키 마웅가 합의’를 결정했다.
이 합의에는 1860년대에 타라나키 산과 100만 에이커(4047㎢)가 넘는 땅을 마오리족에게서 몰수한 것에 대한 정부의 사과도 포함됐다.
이에 따라 산에 합법적인 이름이 붙고 주변 봉우리와 땅은 보호받게 됐다. 타라나키 산은 18세기 영국 탐험가 제임스 쿡에 의해 ‘에그몬트’라는 공식 명칭으로 불려왔지만, 대신 타라나키 마웅가(산)로 불리며 주변 국립공원에도 마오리 이름이 붙을 예정이다.
타라나키 지역 부족 출신인 아이샤 캠벨은 “산은 우리를 연결하고, 우리를 국민으로서 하나로 묶어주는 것”이라고 표현했다.
다만 이번 ‘타라나키 마웅가 합의’로 산에 대한 접근성은 변경되지 않을 전망이다. 마오리족은 “모든 뉴질랜드인이 앞으로도 여러 세대에 걸쳐 이 가장 웅장한 장소를 계속 방문하고 즐길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타라나키 산은 뉴질랜드 자연 지형 가운데 처음으로 법적 인격권을 부여받은 것은 아니다. 지난 2014년 우레웨라 자생림이 최초로 이러한 지위를 얻었고, 2017년에도 왕가누이 강이 지위를 부여 받은 바 있다.
출처 : 정상훈, "뉴질랜드山, 사람과 동일한 법적 권리 부여", 위클리서울, 2025.01.31, https://www.weeklyseoul.net/news/articleView.html?idxno=82189
뉴질랜드 수도 웰링턴 의사당 앞에 19일 수만명이 시위했다. 아흐레 동안 마오리족 출신 시민들이 뉴질랜드 북섬 수백㎞를 걷는 평화행진(히코이)을 하고 이날 의사당 앞에서 항의 집회를 한 것이다.
발단은 ‘와이탕이(와이탕기) 조약’을 우파 정당들이 무력화하려고 한 것이었다. 1840년 영국이 마오리 부족 지도자들과 합의해 체결한 이 조약은 전문과 3개 조항으로 구성돼 있다. 마오리족의 땅과 소유물, 그리고 영국 신민으로서의 권리를 인정해주는 대신 주권을 영국 왕실에 이양한다는 내용이다. 다른 식민지들과 달리 영국 왕실과 마오리 부족장들이 ‘파트너’의 성격을 갖는다는 것이 핵심이다.
하지만 조약의 성격을 놓고 해석이 엇갈려 5년 뒤 전쟁이 일어났다. 근 30년간 저항했지만 결국 영국이 원주민들 땅을 몰수하거나 강압적으로 매입했다. 중남미에서 그랬듯이, 마오리도 유럽에서 온 질병에 노출돼 80만명 넘는 인구가 20세기 초 한때 5만명으로까지 줄었다.
언어와 문화가 사라질까 우려한 마오리족의 자각이 커졌다. 마오리 정치운동에는 뉴질랜드 원주민 마오리족의 인권 신장에 크게 기여한 아피라나 응가타라는 걸출한 지도자가 있었다. 20세기 전반기 내내 하원의원을 하면서 마오리를 위한 토지 정책을 추진했다. 뉴질랜드 50달러 지폐에 그의 얼굴이 그려져 있다.
뉴질랜드가 1947년 영국으로부터 독립한 이후 원주민의 자각과 정치 운동은 ‘마오리 르네상스’로 이어졌다. 마오리족이 빼앗긴 권리를 되찾기 위해 독립 전 정부들이 무시했던 조약을 헌법적인 근거로 내세우면서 와이탕이 조약은 더욱 중요한 위상을 갖게 됐다. 원주민들은 와이탕이의 날(2월6일)을 기념하기 시작했고, 1973년 공식 국경일이 됐다. 1973년 의회는 와이탕이 조약법을 통과시켜 정부의 위반 사례들을 조사하고 피해를 배상하도록 했다. ‘와이탕이 재판소’가 만들어졌고 정부가 여러 마오리 집단에 총 10억달러 규모의 배상금을 줬다. 와이탕이 조약이 현대 뉴질랜드 불문헌법의 기초가 된 것이다.
언어와 문화를 되살리려는 움직임도 컸다. 1970년대에 오클랜드대 학생들이 결성한 ‘나 타마토아’(젊은 전사들)라는 그룹이 대표적이다. 마오리들은 유럽계를 ‘파케하’라고 부르는데, 마오리가 문화를 잃고 ‘가짜 파케하’가 되어가는 것에 저항하고 삶을 개선하기 위한 운동을 조직했다. 뉴질랜드의 지명이 마오리 말과 영어로 표기되게 만든 것도 마오리 부흥운동이었다. 1979년 주요 ‘백인’ 정당들은 인종적 다양성을 인정하고, 마오리가 ‘파케하’의 관습에 매몰돼서는 안 되며 고유의 문화를 지킬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을 받아들였다. 특히 1980년대 노동당 정부 때에 이러한 ‘이중문화적 접근’이 자리를 잡았다.
그 시기 마오리족은 자기네 말인 ‘테레오’를 살리기 위해 코항가 레오(언어 둥지 운동)라는 이름으로 돈을 모아 교육기관을 열고 토착 언어를 가르쳤다. 1987년에는 마오리 언어법을 통해 공용어로 지정됐고, 정부 산하 ‘마오리 언어 위원회’가 설치됐다.
오스트레일리아(호주)에서 원주민들이 절멸되다시피 한 것과는 대조적이다. 호주에도 애버리지니, 토레스해협 원주민, 태즈메이니아 원주민 등으로 불리는 토착민 집단들이 있었지만 이들은 대륙처럼 큰 땅에 흩어져 살고 있었기에 각개격파됐다. 호주 식민통치 당국은 조직적으로 이들을 학살하고 부모에게서 아이들을 강제로 떼어내 백인 가정이나 학교에 집어넣으며 문화와 언어를 말살했다. 원주민 인구는 현재 80만명, 호주 전체 인구의 3.2%에 불과하다.
반면 마오리족은 예전부터 강력한 부족사회를 운영해 왔다. 이들은 원래 폴리네시아 원주민인데 14세기에 카누를 타고 뉴질랜드에 이동해 정착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마오리는 영국과 협상하고, 전쟁하고, 저항과 부흥운동을 계속했다. 지금 뉴질랜드의 마오리 인구는 약 100만명에 이른다. 뉴질랜드 인구 540만명 중 68%가 유럽계이고 마오리가 18%다. 그와 비슷한 규모인 17%는 아시아계다. 인구조사에서 상당수 주민이 유럽계와 마오리와 아시아계 중에서 복수의 정체성을 고른다.
뉴질랜드가 호주와 달리 포용적인 사회로 경로를 잡은 데에는 마오리라는 큰 규모의 소수집단이 있었던 게 엄청난 영향을 미쳤다. 역대 정부들은 차별 철폐 조치(어퍼머티브 액션)를 통해 마오리와 유럽계의 사회경제적 격차를 줄이기 위해 애써야 했고, 쟁점이 생기면 와이탕이 조약을 바탕으로 부족 지도자들과 협상을 했다. 현재까지 이중문화적 접근은 긍정적인 평가를 받는다. 정치적 대표성을 놓고 보자면 지난해 총선으로 구성된 현 의회에서는 마오리 의원이 33명으로 전체 의석의 27%를 차지하고 있다. 인구 비례보다 더 많다.
그럼에도 유럽계에 비하면 열악한 조건에서 살고 차별을 받아온 게 사실이다. 빈곤 지역에 몰려 있고, 실업률도 높다. 인구의 20%도 안 되는데 교도소 수감자 절반 이상이 마오리다. 미국 흑인들처럼 형사 절차에서 차별이 심하다. 기대수명은 마오리족이 아닌 이들과 마오리 사이에 7년 이상 차이가 난다.
그럼에도 마오리가 아닌 사람 중에는 과거 선조들이 저지른 잘못을 갚아준다는 이유로 정부가 마오리에 끌려다닌다 생각하는 이들이 적잖다. 세금으로 배상해주는 것에 대한 불만도 있었다. 2000년대 이후 고등교육 분야나 관리직, 전문직 일자리에서 마오리인의 비율이 올라가며 생겨난 유럽계의 반발도 저변에 깔려 있다. 이런 불만을 발판 삼아 우파 정당인 뉴질랜드행동당은 “와이탕이 조약이 국민을 인종적으로 분열시켰다”는 주장을 펼쳤다. 2세기 전 조약은 여러 나라에서 온 이주민이 늘어가는 시대에 맞지 않는다, 마오리를 위한 할당제들은 “평등권 원칙에 위배된다”고 주장한 것이다. 여러 민족-인종집단이 사는 나라에서 한 집단만 배려해주는 것은 역차별이라는 얘기다.
그래서 와이탕이 조약을 ‘재해석’하기 위한 법안을 내놓았다. 최근 시위는 거기에 반대해서 일어난 것이었다.
2019년 3월 크라이스트처치의 모스크에서 극우파가 총기를 난사해 51명이 숨졌다. 뉴질랜드에 아시아 무슬림 이민자가 늘어난 것에 대한 적대감이 백인 우월주의자의 테러로 표출된 것이다. 점점 입지가 줄어가는 유럽계의 반발심이 우경화를 부르고, 역사적으로 피해를 입어온 마오리족을 상대로 ‘공정성’을 외치는 상황이 됐다.
한국계 인구 비율이 한국 다음으로 높은 나라가 뉴질랜드라고 한다. 한국계 뉴질랜드인은 약 3만6천명. 우리 입장에선 많지 않은 것 같아도 뉴질랜드 전체 인구의 1%에 좀 못 미친다. 이민자 시대가 불러온 여러 풍경 속에서 토착민의 지위는 어떤 것이어야 하는지, 역사적 피해에 대한 배상과 책임의 한계는 무엇인지를 마오리들은 묻고 있다.
출처 : 구정은, "호주와는 달랐던 뉴질랜드 ‘마오리 르네상스’의 위기 [.txt]", 한겨레, 2024.11.30, https://www.hani.co.kr/arti/international/international_general/1170017.html
뉴질랜드의 사회는
서구 법체계와
원주민 세계관이
만나는 지점에서
계속해서 균형을 찾아왔다.
그 과정은
항상 순탄하지 않았다.
역사 속에는
충돌과 상실,
불평등의 기억이 남아 있다.
그러나 이 나라는
그 기억을 지우지 않았다.
대신
그 위에 새로운 법을 세웠다.
뉴질랜드의 헌법적 질서에는
특별한 개념이 있다.
자연을 단순한 자원이 아니라
권리를 가진 존재로 인정하는 사고.
실제로 이 나라에서는
왕가누이 강이 법적으로
'인격’을 가진 존재로 인정되었다.
강은 더 이상 소유물이 아니라,
함께 살아가는 주체가 된 것이다.
여기서 권리란
‘지켜야 할 것’이 아니라
‘함께 살아야 할 리듬’이다.
이 사상의 뿌리는
마오리 세계관에 있다.
그들에게 자연은
분리된 대상이 아니라
가족이다.
강은 조상이고,
산은 혈연이며,
나무는 형제다.
존엄은 인간만의
것이 아니다.
이 땅의 사람들은 오래전부터
그 진리를 알고 있었다.
이 나라는 자연의 일부가 아니라,
자연이 나라를 이룬 곳이다.
코와이는
아래로 늘어진다.
위로 솟지 않고,
겸손하게
땅을 향해 열린다.
그 모습은
지배가 아니라
관계의 태도를 닮았다.
강해진다는 건
위로 올라가는 게 아니라
더 많이 연결되는 것이다.
이 꽃은
자신만을 위해 피지 않는다.
늘 다른 생명과 함께
존재한다.
뉴질랜드가 보여준
자연권의 개념은
바로 이 연결에서 시작된다.
이 연결은 단순한 장식이 아니라
세대 간의 약속이었다.
조상들이 남긴 자연의 언어,
그 언어를 이어받은 후손들의 책임.
겉이 아닌 ‘속’에서 피어나는 빛,
그것이 진정한 평화이자 존엄일지도 모른다.
그 빛이 바로,
뉴질랜드가 지켜온 평화와 존중의 빛이었다.
말보다 오래된 약속.
법보다 깊은 공존.
그 빛은 마치 숨결처럼,
자연과 인간의 사이를 잇는 다리처럼 보였다.
인간이 자연을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과 함께 하나의 공동체를 이루는 것.
존엄은 혼자 살아남는 힘이 아니라,
함께 살아갈 수 있는 관계다.
자연은
연결을 회복하는 존재를 통해
다시 살아난다.
우리는 자연을 보호하는 게 아니라
자연과 함께 살아가고 있을 뿐이다.
자연은 배경이 아니라,
함께 살아가는 존재다.
이곳에서는 인간이
자연 위에 서지 않는다.
인간은 나무의 형제요,
강의 자매이며,
산의 숨결을 나누는 존재였다.
모든 뉴질랜드인, 그리고 세계시민들에게
코와이는 인간은 대지를 빌려 쓰는 존재일 뿐,
소유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