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면이 아름다운 화랑의 정체성
다양한 철학에 대해 공부하면서 "한민족의 정체성을 나타내는 철학이 무엇이 있을까?"라는 질문을 던졌고 최치원의 "풍류" 사상에서 답을 찾았다.
풍류라는 말은 ≪삼국사기≫ 진흥왕조에 화랑제도의 설치에 관한 기사 가운데 나온다. 그 기사는 최치원(崔致遠)이 쓴 난랑비서문(鸞郎碑序文)을 인용한 것인데 내용은 다음과 같다.
“나라에 현묘한 도(道)가 있으니 이를 풍류라 한다. 이 교(敎)를 베푼 근원에 대하여는 ≪선사 仙史≫에 상세히 실려 있거니와, 실로 이는 삼교(三敎)를 내포한 것으로 모든 생명과 접촉하면 이들을 감화시킨다(國有玄妙之道 曰風流 設敎之源 備詳仙史 實乃包含三敎 接化群生).”
즉, 신라 당시에 있었던 현묘지도(玄妙之道)가 곧 풍류인데 그것은 유·불·선 삼교를 포함하였다는 것이다. 이것은 우리가 가지고 있던 재래의 고유신앙을 대륙으로부터 들어온 삼교사상(三敎思想)을 설명한 것으로 보인다.
유교의 본질은 아욕(我慾)에 찬 자기를 버리고 인간본성인 예로 돌아가는 데 있고[克己復禮], 불교의 본질은 아집(我執)을 버리고 인간의 본성인 한마음[一心], 곧 불심(佛心)으로 돌아가는 데 있으며[歸一心源], 도교의 본질은 인간의 거짓된 언행심사(言行心事)를 떠나 자연의 대법도를 따라 사는 데 있다[無爲自然].
이렇듯 삼교의 본질은 다 같이 야욕에 사로잡힌 자기를 없애고 우주의 대법도인 천부의 본성, 곧 참마음으로 돌아가는 데 있다. 우주적인 참마음이란 하느님이 주신 마음이요 하느님의 마음이다. 그러므로 하느님과 하나가 되는 풍류도는 삼교의 본질을 모두 포함하고 있다고 하겠다.
실제 상고시대의 우리 조상들은 봄·가을에 하느님에게 제사를 드리되 노래와 춤으로써 하였다. 여기에서 그들은 하느님과 하나로 융합하는 강신체험을 가졌고, 이것을 사상화한 것이 풍류도이다.
풍류도란 하느님을 섬기는 천신도(天神道) 요, 그 핵심은 하느님과 인간이 하나로 융합되는 데 있다. 내가 없어지고 내 안에 신이 내재한 상태의 ‘나’가 풍류의 주체가 되는 것이다[天人合一].
신과 하나가 된 풍류객은 새로운 존재양식을 가진다. 자기중심의 세계에서 벗어나 다른 사람과 관계의 세계로 옮겨간다. 그리고 사람들에게도 본연의 인간으로 되돌아가도록 교화한다. 이것은 실로 우리 안에 있는 하느님의 본성이기 때문이다. 그는 널리 사람들을 유익하게 하는 분으로 믿어왔다[弘益人間].
요컨대 풍류도의 본질은 하느님과 하나가 되어 많은 사람들과 사랑의 관계를 맺게 하는 데 있다. 이러한 풍류도를 몸에 지닌 사람을 가리켜 화랑(花郎)이라 한다.
출처 : 한국민족문화 대백과사전, 풍류(風流),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60373
성 아우구스티누스는 존재를 근본적으로 본질로 이해함에 따라 신을 최고의 본질로 이해한다. 이것이 그를 자신의 마음 안에서 신을 만나는 것으로 이끌어 간다. 이에 따라 그는 신을 관념적으로 그리고 실제적이고 현실적이 아닌 방식으로 규정한다.
출처 : 장욱. (2007). 아우구스티누스와 토마스 아퀴나스의 창조에 대한 이해. 가톨릭철학, 9, 222-278.
화랑의 철학이었던 풍류(풍류도의 본질이 하느님과 하나가 되어 많은 사람들과 사랑의 관계를 맺게 하는 데 있다.)와 성 아우구스티누스의 신에 대한 철학(존재를 근본적으로 본질로 이해함에 따라 신을 최고의 본질로 이해한다. 이것이 그를 자신의 마음 안에서 신을 만나는 것으로 이끌어 간다.)을 통해 화랑은 신과의 합일이라는 최고의 경지를 목표로 내면이 아름다워지기 위한 수행을 하였다고 생각한다.
나의 이상형은 내면이 아름다운 여성이다. 내면이 아름다운 여성을 만나기 위해선 내가 먼저 내면이 아름다운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여자를 만나고 싶어서 내면이 아름다워지려고 하는 건 아니지만) 내면이 아름다운 사람이 되는 것을 목표로 노력하기 위해 풍류를 참고하려고 한다.
4월 9월 왕이 임해전(臨海鎭)에서 여러 신하와 만났을 때 왕족 응겸(膺 廉)은 15세 나이로 참석하였다. 왕이 응겸의 뜻이 어디에 있는지를 알아보 기 위해 “네가 얼마 동안 사방으로 돌아다니며 견학을 하였을 터이니 착한 사람을 본 일이 더러 있느냐”라고 갑자기 물었다. 이에 응겸은 “신이 일찍 이 선행을 베푸는 세 사람을 보았습니다”고 대답하였다. 이번에는 왕이 그 들은 어떤 사람들이냐고 되묻자 응겸은 다음과 같이 답하였다. “한 사람은 귀한 집 자제로서 남과 교제할 때 무엇이든 자기를 내세우지 않고 남의 밑 을 자처하기를 좋아하였습니다. 다른 사람은 부자이어서 사치스러운 의복 을 입을 수도 있는데도 늘 베와 모시로 된 옷을 스스로 즐겨 입었습니다. 또 한 사람은 세력과 영화를 누리면서도 남을 누르려고 한 적이 없었습니다. 신 의 본 바는 이와 같습니다.” 왕은 가만히 듣고 있다가 왕후와 귀속말로 짐 이 많은 사람을 겪어보았으나 응겸과 같은 이는 없다고 하였다. 그리하여 왕은 자기의 딸을 응겸에게 시집을 보려고 하였다.68)
68) “四年 秋九月 王會群臣於臨海殿 王族膺廉 年十五歲 預坐焉 王欲觀其志 忽 問曰 汝游學有日矣 得無見善人者乎 答曰 臣嘗見三人 竊以爲有善行也 王曰 何如 曰 一高門子弟 其與人也 不自先 而處於下 一家富於財 可以侈衣服 而常 以麻紵自喜 一有勢榮 而未嘗以其勢加人 臣所見如此 王聞黙然 與王后耳語曰 朕閱人多矣 無如膺廉者 意以女妻之”(김부식, 「경문왕」, �삼국사기�(권제 11, 신라본기 제11).
출처 : 신운용. (2013). 최치원 사상의 종착점과 ‘풍류’의 발현. 仙道文化, 14, 177-217.
위의 글에 나오는 응겸은 신라의 제 48대 국왕 경문왕이다. 경무왕은 ‘겸손(한 사람은 귀한 집 자제로서 남과 교제할 때 무엇이든 자기를 내세우지 않고 남의 밑 을 자처하기를 좋아하였습니다.)’⋅‘근검절약(다른 사람은 부자이어서 사치스러운 의복 을 입을 수도 있는데도 늘 베와 모시로 된 옷을 스스로 즐겨 입었습니다.)’⋅‘절제된 권력행사(또 한 사람은 세력과 영화를 누리면서도 남을 누르려고 한 적이 없었습니다.)’를 깨우쳤음을 알 수 있다. 나 또한 겸손(낮추기), 근검절약(과시소비하지 않기), 절제된 권력행사(나중에 사업을 하여 ceo가 된다면 직원 효용 극대화를 위해 노력하는 ceo 되기)를 실천할 것이다.
또한 부산의 신선대에서 최치원은 신선처럼 노니었다고 한다. 그가 신선처럼 노닌 데에는 그가 주장한 사상인 "풍류"가 한몫했으리라고 본다. 나도 최치원이 신선처럼 노니었듯이 풍류를 즐길 줄 아는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