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산어보

초의선사

by 룡하

(영화의 스포일러를 일부 포함하고 있습니다. 스포일러를 원치 않는 분들은 영화를 먼저 보신 후에 글을 읽기를 권장해 드립니다.)



이준익 감독의 영화 ‘자산어보’는 정약전과 그의 수제자 창대를 줄거리로 잡고 있다.


출처 : 박자영, "정약전과 창대에 필이 꽂힌 영화 ‘자산어보’", 아틀라스뉴스, 2021.04.11, http://www.atlas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3564


영화 ‘자산어보’는 정약전과 그의 수제자 창대를 줄거리로 잡고 있다.



먼저 정약전이 왜 <자산어보>를 쓰게 됐는지부터 살펴보자. 잘 알다시피 정약전은 조선 최고의 유학자이자 실학자 정약용의 형이다. 정약전은 정조 때 문과에 급제해 관직을 수행했다. 그러다가 정조 승하 후 순조 시절 천주교 탄압 사건인 신유박해와 그 여파로 외세의 군대를 끌어들여 천주교 박해를 막으려 했던 황사영 백서 사건에 연루돼 흑산도로 유배를 갔다. 정약전은 엄청난 인생의 시련을 서당을 열어 아이들을 가르치며 견뎠으나 흑산도 섬 사람들과 백성에게 도움이 되는 일을 하고 싶었다. 그때 흑산도에는 어족이 엄청나게 많으나 그 이름이 알려져 있는 것은 매우 적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정약전의 말을 들어보자.


“흑산도 해중에는 어족이 극히 많으나 이름이 알려져 있는 것은 적어 박물자(博物者)가 마땅히 살펴야 할 바이다. 내가 섬사람들을 널리 심방하였다. 어보를 만들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사람들이 제각기 다른 말을 하기 때문에 이를 좇을 수가 없었다.”


출처 : 홍종래, "관찰로 만든 실용 어류도감의 조상, 자산어보", 사이언스타임즈, 2021.04.30, https://www.sciencetimes.co.kr/nscvrg/view/menu/253?searchCategory=225&nscvrgSn=221152


정약전은 조선 최고의 유학자이자 실학자 정약용의 형이다.


강진으로 귀양간 다산 정약용이 초의선사로부터 차를 배웠다는 것이 일반에 알려진 ‘통설’이다. 혹은 아암 혜장 스님에게 차를 배웠다고도 전해진다. 그러나 이 책의 저자인 정민 교수(한양대 국문학과)에 따르자면 오히려 그와 반대다. 다산은 “귀양 오기 전에도 차에 대한 식견이 높았”으며, 초의선사는 1809년 다산초당을 처음 찾은 이후 다산의 학문과 인품에 빠져들면서 자연스럽게 차의 제법을 이어받았다는 것이다. 둘이 처음 만나던 해, 다산은 48세였고 초의는 24세였다. 다산이 아암 혜장에게 차를 전한 것은 이보다 오히려 앞선다. 1805년 “(다산이) 만덕산 백련사에 놀러갔다가 주변에 야생차가 많이 자라는 것을 보고, 아암 혜장 등 백련사 승려들에게 차 만드는 방법을 알려주었다”는 것이다.


출처 : 문학수, "다산·초의·추사가 꽃피운, 조선 차문화의 재발견", 경향신문, 2011.04.15, https://www.khan.co.kr/article/201104151917095#ENT


초의선사는 1809년 다산초당을 처음 찾은 이후 다산 정약용의 학문과 인품에 빠져들면서 자연스럽게 차의 제법을 이어받았다.



전 글에 채식 안내서를 쓰고자 한다고 적었다.


초의선사에게 영감 받은 것을 채식 안내서에 넣고자 한다.

이전 29화러브 레시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