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과 평화
1450년 백장미를 문장(紋章)으로 하는 영국의 봉건귀족 요크가(家)와 빨간 장미를 문장으로 한 랭커스터가 사이의 30년 전쟁은 장미전쟁으로 불린다. 헨리 7세가 ‘튜더 왕조’를 열며 장미전쟁은 끝났다. 빨간 장미와 백장미를 합친 튜더 왕조의 왕기(王旗)는 오늘날 영국 왕실의 문장으로 이어졌다. 그래서 ‘튜더 장미’의 꽃말은 물과 불의 결합, 즉 통일과 평화를 의미한다.
출처 : 김현기, "파란 장미", 중앙일보, 2008.02.10, https://www.joongang.co.kr/article/3036426
대헌장은 13세기 초 영국의 존 왕이 귀족과 성직자에게 무거운 세금을 부과하자 이에 불만을 품은 귀족들이 왕에 대항하여 왕으로부터 받아낸 문서이다. 원문에는 조문 번호가 없으나 18세기 이래 63개 조로 정리되었다.
영국의 존 왕은 프랑스와의 전쟁으로 프랑스 내의 영국 영토를 많이 상실하였고, 교황 인노켄티우스 3세에 맞섰다가 굴복하는가 하면, 백성에게는 무거운 세금을 부과하는 등 실정을 거듭하였다. 이에 귀족과 성직자들이 들고일어나 왕에게 63개의 요구 조항에 서명하도록 강요하였는데, 이 문서가 대헌장(마그나 카르타)이다.
<대헌장 일부>
제1조 영국 국교회를 신봉하는 것은 자유이다.
제12조 국왕은 과세나 봉건 공납을 부과할 때 봉신 의회(성직자, 귀족만 참가)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
제39조 자유인은 합법적인 재판이나 국법에 의하지 않고는 체포, 감금, 처벌, 추방, 기타 방법으로 침해당하지 않는다.
대헌장은 교회의 자유, 부당한 세금의 징수 금지, 국민의 생명과 재산의 안정 등 63개 조에 이르는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귀족들의 이익을 옹호하기 위하여 왕권을 제한한 역사상 최초의 문서이다.
본래는 귀족의 특권을 재확인한 봉건적 문서였으나 17세기에 이르러 왕권과 의회의 대립에서 왕의 전제에 대항하여 국민의 권리를 옹호하기 위한 최대의 전거(典據)로 이용되었다. 특히 일반 평의회의 승인 없이 봉건 공납을 부과할 수 없다고 정한 제12조는 ‘대표 없는 곳에 과세 없다.’라는 주장의 근거로서, 또 자유인은 재판이나 국법에 의하지 않고 체포·감금할 수 없다고 정한 제39조는 배심 재판의 보장으로 해석되는 명 조항이 되었다.
이처럼 대헌장은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지키는 투쟁의 역사 속에서 인용되는 가장 중요하고 기본적인 문서로, 영국 헌정뿐만 아니라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옹호하는 근대 헌법의 토대가 되었다.
출처 : "대헌장(마그나 카르타) Magna Carta, 大憲章 - :: 티칭백과 ::", 티칭백과, https://dic.kumsung.co.kr/web/smart/detail.do?headwordId=9397&findCategory=B002002&findBookId=27
1215년 6월 15일 잉글랜드 템스강 유역의 러니미드라는 초원에서는 영국 왕 존과 반란을 일으켰던 귀족들(barons) 사이에 63개 조항의 규약을 정하고 왕이 이를 의리로써 지킬 것을 맹세하는 의식이 이루어졌다. 이 때 서명된 라틴어로 쓰여진 문서가 세계사에서 가장 중요한 문서 중의 하나인 마그나 카르타(Magna Carta, 영어로는 The great Charter of Freedoms)이다.
마그나 카르타는 법의 지배(rule of law)를 천명한 최초의 문서라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가지며, 특히 39조는 배심재판과 영장주의 등 법의 적정절차(due process of law)의 근거조항으로, 12조 및 14조는 의회주의와 조세법률주의의 원천조항으로 주장되어 왔다.
마그나 카르타는 권리청원(1628), 권리장전(1689)으로 이어져 영국 헌법의 기초가 되었고, 뉴잉글랜드 식민지 개척자들이 제정한 최초의 법인 매사추세츠 자유법(1641), 버지니아 권리장전(1776), 미국 독립선언문(1776), 미국 수정헌법(1789)의 근간으로 인정되며, 세계인권선언(1948), 유럽인권협약(1950)에도 큰 영향을 끼쳤다. 또한 캐나다, 오스트레일리아를 비롯한 영연방 국가와 세계 제2차 대전 후 독립한 아시아와 아프리카의 여러 국가들의 헌법도 직접 혹은 간접적으로 마그나 카르타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 결과 마그나 카르타라는 단어는 오늘날 자유와 권리를 상징하는 용어로도 사용되고 있다.
출처 : 황한식. (2019). 마그나 카르타. 법조, 68(1), 7-41.
영국에는
성문 헌법이 없다.
대신
마그나 카르타,
관습법,
판례,
의회 전통이
겹겹이 쌓여 있다.
영국에서 장미는
왕가의 문장 속에서,
전쟁의 상징으로,
화해의 징표로 반복해 등장했다.
즉, 권력과 책임,
전통과 법의 얼굴이 되었다.
영국은
모든 것을 부수고 새로 세우는 대신
조금씩 고치며 버텨온 나라다.
왕을 죽이지 않았고,
헌법을 한 장으로 만들지 않았으며,
법을 선언보다 관습으로 쌓았다.
영국이 인류에게 남긴 가장 큰 유산은
즉각적인 해방이 아니라
지속 가능한 자유의 형식이었다.
마그나 카르타에서 의회 민주주의로 이어지는 흐름은,
인간의 욕망을 억압하기 위한 법이 아니라
욕망이 폭주하지 않도록 서로를 지키는 장치였다.
장미 정원처럼,
무성해지면 가지치기가 필요하고,
추우면 덮개를 씌워야 한다는 것을
영국은 알고 있었다.
매일 지켜지는 작은 규칙,
침범하지 않는 경계,
그리고 서로의 권리를 존중하는 태도.
붉은 장미와 흰 장미가 맞섰던 장미전쟁은
단지 왕위 다툼이 아니라,
“누가 이 질서를 계승할 자격이 있는가”라는 질문이었다.
결국 두 장미는 하나로 엮였고,
영국은 깨달았다.
질서는 승리로 완성되지 않고,
타협과 제도로 지속된다는 사실을.
장미의 가시는
바로 이 지점을 상징한다.
권리는 달콤하지만
침범하면 찔린다.
장미는 아름답지만
가시를 숨기지 않는다.
영국의 권리도 그렇다.
부드럽게 보이지만
경계를 분명히 한다.
영국은 세계사에서
극단을 완화하는 역할을 해왔다.
자본주의와 복지의 조정,
자유와 규제의 균형,
전통과 변화의 타협.
영국적 권리는
한 문장으로 선언되지 않는다.
사건이 일어날 때마다
법원이 조금씩 조정한다.
이 권리의 핵심은
“모두가 법 앞에 서야 한다”는 원칙이다.
왕도, 정부도, 시민도 예외가 없다.
모든 영국인, 그리고 세계시민들에게
영국의 장미는 이렇게 속삭인다.
자유는 외침이 아니라 약속이며,
권리는 요구가 아니라 책임과 함께 자란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