튀르키예, "튤립"

사랑의 고백

by 룡하

그런데 이 튤립의 원산지는 유럽이 아니라 중앙아시아다. 그것도 파미르고원이라고 한다.


이 꽃이 유럽에 소개된 것은 처음 이 꽃을 관상용으로 재배한 터키를 통해서다. 꽃의 모양이 이슬람권의 남성들이 머리에 쓰는 터번을 닮았다고 해서 튤립이라는 이름을 갖게 됐다.


그래서 지금도 튤립은 터키의 국화다. 물론 네덜란드도 튤립을 국화로 삼고 있지만, 튤립에 대한 사랑은 터키가 훨씬 빨랐다고 말할 수 있다.


출처 : 김승호, "튤립은 어떻게 네덜란드를 사로잡았나 - 대한금융신문", 대한금융신문, 2022.05.29, https://www.kbanker.co.kr/news/articleView.html?idxno=204936


우아하고 아름다운 튤립은 많은 이들에게 사랑받는 꽃들 중 하나다. 튤립 꽃말은 사랑의 고백, 매혹, 영원한 애정, 경솔이다.


출처 : 홍승범, "아름다운 '튤립 꽃말', '사랑의 고백'에서부터 '사과와 용서'까지", 리서치페이퍼, 2020.01.23, https://www.research-paper.co.kr/news/articleView.html?idxno=56788



출처 : 김한별, "터키 ‘민주화 개헌’ 통과 … EU가입 한 발 앞으로", 중앙일보, 2010.09.14, https://www.joongang.co.kr/article/4453428



대륙과 대륙,

종교와 종교,

문명과 문명이 만나는 지점.


아시아의 숨결과 유럽의 음성이

같은 바람에 섞여 흐르는 튀르키예.


튀르키예 헌법에는

"국민 사생활 보호,

아동·노인·장애인 보호,

여성에 대한 차별 철폐"

등이 존재한다.

여기서 자유는
개인의 과시가 아니라
공동체 속에서의 절제로 이해된다.


대륙의 경계에서 살려면

자유는 선택이 아니라 생존의 원리였다.


튤립은
이 자유의 식물적 번역이다.

높이 피지 않고,
서로를 가리지 않으며,
같은 방향으로
질서를 만든다.


이 나라 사람들의 영혼은

하나의 신념만으로 설명되지 않았다.


그들은 역사와 전쟁, 제국과 공화국,

세속주의와 전통,

수많은 층위가 겹쳐 있는 정체성 속에서

자신만의 중심을 잡아왔다.


이념, 종교, 정치가 끊임없이 충돌하는 이 땅에서
그 자유는 때로는 투쟁이었고
때로는 회복이었으며
항상 ‘정체성의 선택’과 맞닿아 있었다.


신앙의 깊이가 정치적 선택을 넘어

삶의 존엄을 지탱하는 힘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사람들의 마음에서

그 선택의 무게를 읽을 수 있다.


튤립은 아름답고 단단하지만

기온이 급격히 변하면 쉽게 상처받는다.


튀르키예에서의 삶은 항상

전환의 흐름 속에 있었다.


전환기에 흔들리는

사람의 마음도 그와 같았다.


전환을 겪는다는 것은

약해지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모양을 찾는 과정이다.


정체성은

하나의 색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튀어오를 듯한 튤립의 형태처럼

넘나드는 시간, 흔들리는 정체성,

두 세계가 만나 새로운 기적을 만들어내는 순간.


전환을 통과하며 여러 빛이 섞일 때
비로소 진짜 자신이 드러난다.


전환은 혼란이 아니라
새로운 조화를 탄생시키는 힘이라는 것을
이곳 사람들은 이미 알고 있었다.


전환기에도

중심을 잃지 않는 마음처럼.


대륙의 경계에서 피어나는 빛,

전환을 살아가는 마음의 기술을.


그들 스스로도 경계 위에서

태어났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이 나라의 정체성이
단일한 것이 아니라
수많은 전환과 혼합의 결과라는 것을.


튀르키예의 문화는
충돌이 아니라 혼종의 미학이었다.


튤립 군락 역시
하나의 꽃을 강조하지 않는다.


질서는
개별이 아니라
배치에서 나온다.


튤립은
고개를 숙인다.


화려하지만
결코 고개를 들지 않는다.


튀르키예에서
튤립은 보여주기 위한 꽃이 아니라
자세를 가르치는 꽃이다.


모든 튀르키예인, 그리고 세계시민들에게

튤립은 질서를 통해서

겸허한 아름다움을

얻을 수 있다고 알려준다.

수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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