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위(無爲)

애쓰지 않아도 되는 선택

by 룡하

(原文)


爲無爲事無事 味無味 大小多少 報怨以德 圖難於其易 爲大於其細.


天下難事必作於易 天下大事必作於細 是以聖人 終不爲大 故能成其大.


夫輕諾 必寡信 多易必有難 是以聖人猶難之 故終無難


토(吐) 달아 읽기


1) 爲無爲(위무위)하고 事無事(사무사)하며 味無味(미무미)하고 大小(대소)하고 多少(다소)하며 報怨以德(보원이덕)한다.


2) 圖難於其易(도난어기이)하고 爲大於其細(위대어기세)하나니, 天下難事(천하난사)는 必作於易(필작어이)하고, 天下大事(천하대사)는 必作於細(필작어세)한다.


3) 是以(시이)로 聖人(성인)은 終不爲大(종불위대)하니 故(고)로 能成其大(능성기대)한다.


4) 夫輕諾(부경낙)은 必寡信(필과신)하고 多易(다이)하면 必多難(필다난)이니 是以(시이)로 聖人(성인)은 猶難之(유난지)하나니. 故(고)로 終無難矣(종무난이)하느니라.


圖=그림 도. 그림, 꾀하다, 그리다, 베끼다.


諾=대답할 낙, 승낙할 낙.


猶=‘오히려 유’로 ‘오히려 어렵게 본다’ 의 생략.


1) 하는 것 없이 하고, 일 없음으로 일을 삼고, 맛없음을 맛으로 삼고, 작은 것을 크게 여기고, 적은 것을 많게 여기며. 원한(怨恨)을 덕(德)으로써 갚는다.


2) 어려운 일은 그 쉬운 데서 꾀하고, 큰일은 그 작은 데서 해야 하나니, 세상의 어려운 일은 반드시 쉬운 데서 비롯되고, 세상의 큰일은 반드시 작은 데서 시작되기 때문이다.


3) 이런 까닭에 지혜로운 사람은 결코 큰일을 벌이지(만들지) 않으니 그래서(어려움이 없이) 큰일을 이루게 되는 것이다.


4) 대저 쉽게 하는 승낙은 믿기 어렵고, 너무 쉽게 보면 반드시 많은 어려움에 처하게 된다. 이런 까닭에 지혜로운 사람은 (쉬운 일이라도)오히려 어렵게 여기는지라, 그래서 끝내 어려움을 겪지 않는다.


출처 : 장태원, "노자(老子) 63장(章) - 爲無爲事無事 味無味 大小多少 報怨以德", 울산저널, 2009.10.26, https://m.usjournal.kr/news/articleView.html?idxno=49000


장자의 사상을 이해하려면 먼저 노자를 알 필요가 있다. 흔히 ‘노장(老莊)사상’이라 일컫는 것처럼 이 두 사람의 사상의 근간이 매우 밀접하게 상통(相通)하기 때문이다. 아니 오히려 장자의 사상이 ‘무위(無爲)’의 개념에 더 충실하고 명쾌하기도 한듯하다.


유가(儒家)의 관점을 깨뜨리는 데 있어 장자가 더 과감하다. 노자는 배움을 중시하지 않았다. 그가 강조한 도(道)는 학습으로 취득되는 것이 아니라 ‘있는 그 자체’, ‘꾸밈이 없는 사물과 인간의 본성’에서 우러나오는 것이라고 봤기 때문이다. 노자는 일체의 인위적 노력을 극도로 경계했다.


장자의 인생관 역시 확고하게 ‘무위자연(無爲自然)’을 궁극적인 목적으로 삼았다. 자연의 만물이 모두 같은 본체에서 발원한다는 생각에서 볼 때 인간과 자연의 동화는 자연스런 상호 회귀에 의해 이뤄진다. 여기에 ‘인위(人爲)’가 개입되면 인간은 자연의 본성과 어긋나게 된다.


장자는 인간의 처세에서 각자의 분수를 깨닫고 그에 맞게 처신하는 것이 보신(保身)의 제일철학이 돼야 함을 강조한다. 세상의 일반적 가치 기준과 명분을 따르기 위해 쓸데없는 노력으로 자신을 수고롭게 하기보다 자유롭게 살기를 권고한다.


‘쓸데가 없는 무용(無用)’이 가장 크게 쓰일 수 있다는 역설의 인생철학은, 늘 경쟁에 내몰려 무언가 더 많은 것을 성취하려 애쓰고 있는 현대인에겐 당혹스럽게 다가온다.


장자에게는 재능이 뛰어난 사람이나 부족한 사람이나 차별이 없다. 심지어 사람과 자연과의 사이에도 구별이 없다. 그가 나비 꿈을 꾸면서 나비가 자신의 꿈을 꾸는 것인지, 자신이 나비가 돼 꿈을 꾸는 것인지 분별하기 어렵다고 토로하는 이유도 같은 맥락이다.


자연과 인간, 현실과 꿈이 일체가 되는 경지가 그가 설정한 ‘도(道)’의 경지다. 어떻게 해야 장자의 도에 다가갈 수 있을까? 그가 제시하는 방법론은 ‘본성대로 살라’는 것이다. 개인의 지나친 욕망과 감정을 모두 내려놓고 자연의 모습으로 돌아가라는 것이다. 자신을 의식하지 않고 자연과 일체가 돼 살아가는 것이 인간의 참된 본성에 부합한다는 것이다.


장자는 공자가 설파한 인의(仁義)와 예(禮)를 강력하게 비판했다. 유가의 교훈은 모두 인위적인 노력을 요구하는 것으로 인간의 참된 본성의 발로와 배치된다고 봤기 때문이다.


마음을 고요히 비우고 욕망을 버리는 것, 거기서 출발할 때 사람 사이의 예와 인은 저절로 이뤄진다는 생각이다. ‘무심(無心)’과 ‘무위(無爲)’에서 나오는 생각과 행동이 가장 자연스런 본성이라는 의미다.


현대인에게 '무위자연(無爲自然)'이란 어떤 의미일까? 장자의 '무위(無爲)'가 아무것도 하지 않고 빈둥거리는 게으름과 나태를 의미하는 것은 분명 아니다. 무위가 무위도식(無爲徒食)을 뜻하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자연(自然) 역시 만물의 터전인 대자연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사물과 인간이 갖고 있는 본성적 요소를 간직한 상태, 순진무구한 맑은 마음의 바탕을 ‘자연’으로 이해해야 하지 않을까? 현대인은 유위(有爲)의 삶 속에서 무위를 실천하는 지혜를 찾아야 한다.


갖가지 요구받는 소임에 자신의 분수와 능력에 맞게 충실히 임하는 것, 자신의 직무에 꾸밈이 아닌 정성을 다하는 것, 그 자체가 무위자연을 실천하는 길이 아닐까?


출처 : 박경귀, "무위자연, 꾸밈없이 사는 지혜", 미래한국, 2015.01.13, https://www.futurekorea.co.kr/news/articleView.html?idxno=27491


무위란 도가 작동하는 방식이다. 이는 ‘실제로 도의 작동이 있지만 작동이 자연스럽고 은미하여 작동의 대상이 미처 알아차리지 못하는, 즉 그러한 작동이 없는 것으로 여기는 방식’을 말한다. 무위는 하나의 명석한 개념이기 보다는 세속적인 경향과 반대되는 광범위한 행위들[無事ㆍ無知ㆍ無欲ㆍ無執 등]의 ‘簇[떨기]개념’이다. 성인의 무위 역시 이러한 도의 무위와 같은[또는유사한] 것이다. 따라서 무위지치란 실제로는 통치가 행하여지고 공이 이루어졌으나 백성들이 이를 알아차리지 못해서 스스로 그리하였다고 여기는 그러한 통치이다.


출처 : 이택용. (2012). 『노자』의 無爲에 대한 연구. 동양철학연구, 72, 127-166.



우리는 식사를
노력으로 만든다.


잘 먹어야 하고,
옳게 골라야 하고,
의식적으로 실천해야 한다.


노자는 <도덕경>에서 이렇게 말한다.

"하는 것 없이 한다."

무위는 아무것도 하지 말라는 뜻이 아니다.

억지로 하려는 힘을 덜어내는 태도다.


그 애씀 때문에
선택이 무거워진다.


무위의 식사는
자연스럽다.


계획하지 않아도
손이 가는 것을 따른다.


생각보다
몸은 이미 알고 있다.


채식이 무위가 되면
실천은 투쟁이 아니다.


매번 결심하지 않아도
선택은 이어진다.


그 부드러움이
지속을 만든다.


못난이 농산물을 고를 때
무위는 분명해진다.


특별한 이유를
만들지 않는다.


그저 눈에 들어오면
집는다.


그 선택은
가볍지만 충분하다.


무위는

방임이 아니다.


흐름에 맡기는 일이다.
억지로 끌지 않을 때
오히려 정확해진다.


식탁에서 무위를 익히면
삶의 다른 결정들도
덜 긴장하게 된다.


잘하려는 마음보다
흘러가려는 마음이 앞선다.


무위는 말한다.
애쓰지 않아도
이미 움직이고 있다고.


선택은
그 위에 올라타면 된다고.



생활 속 실천


1. 일주일에 하루, 한 끼를 '잘 먹으려는 마음'을 내려놓고 먹기


2. 먹는 도중, 떠오르는 선택을 그대로 따르기


3. 먹고 난 뒤 생각하기

"오늘 나는 무엇을 억지로 하지 않았는가"



올랭프 드 구쥬를 생각하며


우리는 무엇을 차별하고 있었는가.

그리고 무엇을 받아들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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