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자연과 사회 공동체의 일원으로 어떤 역할을 맡고 있을까요?
그래서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치학>에 나오는 두 문장은 그 간단 명료함과 인식적 효과로 인간학 연구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으며, 오늘도 인간을 정의하는 표현으로 자주 인용되고 있다. “인간은 본성적으로 정치적 동물이다… 그리고 인간은 유일하게 언어를 지닌 동물이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인간을 ‘정치적 동물’이라고 정의하고 나서 곧바로 인간을 ‘언어를 구사하는 동물’이라고 정의한 것은 각별하다. 이는 의미상 ‘이성을 지닌 동물’임을 내포하며, 역사적으로 ‘인간은 합리적 동물’이라는 표현의 기원이기도 하다. 그의 말에는, 매우 감각적인 신체의 부분인 혀를 움직이지만 그것으로 ‘의미의 소리’를 내고 합리적인 공동체를 창조하는 존재로서 인간의 모습이 깔려 있는 것이다. 이성적 판단을 담은 말을 하는 존재로서 인간은 공동의 공간을 창조하며 그 가운데 하나가 아리스토텔레스가 살았던 그리스의 정치공동체 폴리스인 것이다.
출처 : 김용석, "인간은 왜 '정치적 동물' 인가", 한겨레, 2005.07.24, https://www.hani.co.kr/arti/society/schooling/52284.html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치학>에 나오는 ‘폴리스적 동물’이란 용어는 개인적으로 판단할 때 이 책에서 가장 중요한 개념이다. 널리 회자되는 “인간은 정치적 동물이다”는 표현의 출처이기도 하다. 원래 말은 “인간은 폴리스적 동물이다”이다. 그리스어 원어를 한글로 옮긴 천병희 역자는 이것을 “본성적으로 국가 공동체를 구성하는 동물”이라고 해석했다. 일단 공동체 안에서 살아가야 하는 동물 정도의 의미로 받아들이면 되는데 그렇다고 그 의미를 단순히 다른 생명종에게서 종종 나타나는 군집 같은 것으로 받아들여서는 곤란하다. 모여 사는 것으로 치면 저 들꽃도 그러하다.
‘폴리스적 동물’이, 인간이란 (필연적으로) 폴리스 안에서 살아가야 하는 존재라는 뜻을 담고 있기에, 후대에서 이 말의 등가로 쓰이는 ‘정치적 동물’이나 ‘사회적 동물’하고 언뜻 비슷해 보인다 하여도, 독자적인 맥락에서 생성된 고유의 의미를 살펴보아야 한다. 즉 아리스토텔레스의 용어를 편의적으로 정치적 동물, 혹은 사회적 동물이라고 변용해 쓰는 것까지는 막을 수 없겠지만 그 전에 원래 이 말이 무엇보다 폴리스와 밀접하게 관련되었음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그러려면 당연히 고대 그리스의 폴리스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하겠다.
아리스토텔레스 시대에 (그리스 도시국가의) 인간이 폴리스 안에서 살아가야 하는 존재였다는 말의 의미는 무엇일까. 앞서 언급한 대로 “국가 공동체를 구성하는 동물” 쯤으로 소박하게 이해해도 좋을까. 그런데 현재 우리가 통칭해서 도시국가로 이해하는 당시 폴리스는 소위 근대국가로 통칭되는 지금의 국가와는 너무나 다르다. 지금 우리가 근대국가 시스템 아래에서 서구 민주주의 체제를 받아들여 살아가는 반면, 과거 폴리스의 그리스인들은 지금과는 판이한 체제와 제도 하에서 고대 그리스 문명을 발전시켰다. 따라서 만일 “인간은 폴리스적 동물”로서 “국가 공동체를 구성하는 존재”라는 주장을 수용한다고 하면 당장 ‘폴리스적 존재’라는 큰 얼개엔 별다른 이견이 나타나지 않겠지만, 인류가 역사에서 직면한 개별 폴리스(지금 우리에게 더 익숙한 용어로는 국가)가 매우 다양한 형태였다는 사실을 감안하지 않으면 안 된다.
수 천 년 동안 인간은 ‘폴리스적 동물’로 살았지만, 시대별로 ‘폴리스적 동물’의 구체적 의미가 달랐다. 아리스토텔레스 시대의 사람들이 살아간 방식은 ‘폴리스적 동물’이라는 대전제 하에, 폴리스 안에서 살거나 폴리스 밖에 살거나 하는 두 가지밖에 없었다고 봐야 한다. 두 가지 가운데 기본값은 당연히 폴리스 안에서 살아가는 것이다. 고대 그리스에는 도편추방제(Ostrakismos)라는 것이 존재했는데, 널리 알려진 대로 국가에 해를 끼칠 가능성이 있는 위험한 인물의 이름을 아고라에서 도편(陶片:오스트라콘)에 적어내어 정해진 기간 동안 폴리스 밖으로 쫓아내는 제도였다. 도편추방제는 ‘폴리스적 존재’를 ‘비(非)폴리스적 존재’로 변경하는 정치적 절차로 해석될 수 있다. 이 ‘비(非)폴리스적 존재’는 얼핏 근대국가에서 목격된 ‘비(非)국민’과 유사하다고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비(非)국민’과 비교하여 (인간 개체가 처한 물리적) 상태의 ‘비참’ 정도와 무관하게 ‘비(非)폴리스적 존재’는 고대 그리스인에게 본질적인 예외상태로 간주되었다고 짐작할 수 있다.
출처 : 안치용, "[안치용의 고전산책] 우리는 진정 ‘폴리스적 동물’인가",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2021.04.19, https://www.ilemonde.com/news/articleView.html?idxno=14504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은 본질적으로 국가라는 공동체를 구성하는 “사회적(혹은 정치적) 동물”이라고 하였다. 국가는 특징적으로 자연의 산물이지만 개인과 가족에 우선한다. 국가가 완성되기 전에도 인간은 가장 훌륭한 동물이지만, 법(nomos)과 정의(dike)에서 이탈했을 때는 가장 사악한 동물이 된다. 무장한 불의는 가장 다루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인간은 지혜와 덕성을 위해 쓰도록 언어와 도구들을 가지고 태어나지만, 덕성(aretē)이 없으면 인간은 가장 불경스럽고 가장 야만적이며, 색욕과 식용을 가장 먼저 밝히고자 한다.
출처 : 이돈희, "[이돈희 교수 "민주교육론"(4)] 아리스토텔레스의 입헌정체는 민주적인가?", 에듀인뉴스, 2022.11.08, https://www.eduin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50413
우리는 종종 나를 독립된 개인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사실 나는 가족, 사회, 자연이라는
거대한 관계망 속에 얽혀 있습니다.
이 관계망 속에서 나는 단순한 구성원이 아니라,
책임 있는 행위자로서의 역할을 지닙니다.
아리스토렐레스, "인간"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을 “폴리스적 동물”이라고 했습니다.
이는 단순히 정치 제도 안에 산다는 의미가 아니라,
인간이 본질적으로 공동체적 존재라는 뜻입니다.
예를 들어 개인과 가족에 우선하는 국가는
자연의 산물이며 인간은 자연 공동체의 일원입니다.
생활 속 실천
오늘 하루, 내가 속한 공동체인 자연에
어떤 기여를 했는지 돌아보세요.
이성적 판단을 담은 말을 하는 존재로서
인간은 공동의 공간을 창조합니다.
작은 친절 하나도 공동체적 역할의 실현입니다.
더 큰 자아로 살아가기
나의 존재는 ‘나’를 넘어,
이미 세상 전체와 함께 숨 쉬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