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스 요나스, "책임의 원칙"

나의 소비는 공동체와 어떤 관계를 맺고 있을까요?

by 룡하

책임의 원칙은 ‘인간 존재 자체’가 위협받는 상황에서 “인류는 존재해야만 한다”는 명제를 당위로 본다. 책임의 원칙에서 말하는 자연은 인간과 상호의존관계에 있는 자연을 말함이고 결코 무한한 우주가 아니다. 책임의 원칙은 인간을 자연 속에서 실존하고 있는 유한한 존재, 동시에 자연도 유한한 존재로 인식한다. 책임의 원칙은 인간이 자연에의 한계를 일탈하지 않도록 규범적 척도를 설정하고, 그 척도는 자연을 포함하는 것이어야 한다. 책임의 원칙은 존재가 무보다, 삶이 죽음보다 우위에 있다고 보고, 존재로부터 당위를 도출한다. 요나스적 생태윤리학은 인간만이 ‘존재 그 자체’가 영속될 수 있도록 자연을 보호할 책임을 진다고 한다. 책임의 원칙은 자연환경이 수용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다음 세대가 존속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현재 세대의 수요가 충족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책임의 원칙은 공포의 발견술이란 개념을 통하여 생명기술의 발전이 환경, 안전 등에 심각한 위험을 야기한다면 사전예방적 조치가 필요하다고 역설한다. 책임의 원칙은 ‘자연의 인내의 한계’를 직시할 때 인간이 자기통제의 메카니즘을 구축하는 것이 매우 긴급히 요청된다고 한다. 책임의 원칙은 자연을 대상으로만 보지 않고 그 자체 목적으로 파악하고 있으나 여전히 자연의 중심을 인간에서 찾고 있다. 책임의 원칙은 ‘인간 전체의 생존’의 중요성을 역설한다. 개별적 인간의 존재 그 자체는 중요하지 않다. 오직 전체로서의 존재와 생존만이 의미를 가질 뿐이라고 한다. 책임의 원칙은 무생명적 자연을 가치의 대상에서 배제한다. 무생명적 자연이 배제된다면 생명적 자연도 그 의미를 상실할 수 있음에도 그러하다. 책임의 원칙은 생명공학의 발전이 ‘종으로서의 인간 존재 자체’를 파괴하는 것과 자연을 훼손하는 것에 대해 책임의식을 환기시키고자 하는 것이다.


출처 : 조홍석. (2017). Hans Jonas의 책임 원칙과 생명공학의 발전. 법과정책연구, 17(4), 137-155.


현대 기술은 전대미문의 권력을 인간에게 안겨 주었다. 우리에게 절실한 것은 기술의 권력을 통제할 수 있는 능력과 책임감이다. 즉 기술은 윤리와 철학을 필요로 하며, 그것이 지니고 있는 권력은 반드시 책임을 수반해야 한다. 책임에 대한 요구는 권력의 행위에 비례해서 커지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요나스의 생각에 의하면 현대 기술의 특징들은 (결과의 예측불가능성, 적용의 강제성, 영향력의 지속성) 전통 윤리학이 누려오던 인간중심적 관점의 포기를 가져왔고, 미래를 책임의 대상으로 확장하는 ‘미래윤리’를 성립시켰다. 요나스가 제안하는 미래윤리의 5대 원칙은 다음과 같다. 첫째, 미래를 망각하지 말라. 둘째, 두려움을 의무화하라. 셋째, 겸손하라. 넷째, 검소하라. 다섯째, 절제하라. 요나스에게 중요한 것은 개인의 윤리적 선에 대한 ‘요청’이 아니다. 유토피아에 대한 ‘희망’도 아니다. 요나스가 가장 중요하게 여긴 것은 미래 인류의 존속과 인류의 유일한 터전으로서의 자연(지구) 파괴를 방지할 수 있는 책임 의식의 계발, 현대 과학 기술이 지니고 있는 가공할 권력과 그것이 야기하는 가능한 위험에 대처하는 것이었다. 이런 의미에서 요나스의 책임윤리는 일종의 위험윤리였다. 이런 맥락에서 요나스가 말하는 책임은 우리에게 익숙한 법률적 책임이 아니다. 요나스의 관심은 행위의 인과성이 아니라 행위의 질에 놓여 있으며, 책임을 손해배상의 청구라는 수평적 차원이 아니라 수직적, 비호혜적 권력의 문제로 보고자 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책임의 문제를 법률적 차원이 아닌 윤리적 차원에서 다루고자 하는 것이다. 이런 문제의식을 통해 성립된 새로운 계명은 다음과 같다. “인류의 존재는 간단히 말해서 인류의 생존을 의미한다. 잘 산다는 것은 그 다음 문제이다. 인류가 존재하고 있다는 적나라한 존재적 사실은 이 점에 대해 물음을 던진 적이 없는 사람들에게는 인류가 계속 존재해야 한다는 존재론적 계명이 된다. 그 자체로 익명 상태에 놓여 있는 이 '제1계명'은 그 밖의 모든 다른 계명 안에 말없이 포함되어 있다.”


출처 : 이유택. (2005). 요나스의 미래윤리와 책임. 동서철학연구, 36, 113-137.


그렇다면 요나스는 무엇 때문에 굳이 ‘책임’ 을 새로운 윤리원칙으로 정립하고자 애쓰는가? 그것은 바로 과거에는 찾아볼 수 없는, 현대의 본질적인 특징 때문이다. 현대의 본질적 특징을 요나스는 바로 ‘기술’과 그 기술

이 소유하고 있는 전대미문의 ‘권력’에서 찾는다. 오늘날 기술은 인간적 삶의 핵심일 뿐만 아니라, 동시에 그 삶을 송두리째 뒤흔들 수 있을 만큼의 권력을 쥐고 있기에, 기술에 대한 철학적-윤리학적 반성의 필요성이 기술 권력의 크기만큼 증대되었다는 것이다.29)

그렇다면 요나스가 말하는 책임은 어떤 새로운 특징을 가지고 있는가? 우선 책임의 대상이 달라진다. 요나스의 생각에 의하면 현대가 요구하는 새로운 윤리원칙으로서의 책임은 전통 윤리학이 강조해온 (위의 인용에서 언급된 바 있는) 윤리적 감정들과는 달리 최고선을 지향하지 않는다. 요나스에 따르면 책임의 대상은 최고선이 아니라, 유한하고, 덧없는 타자이다. “이와는 정반대로 책임의 대상은 덧없는 것 자체이다.”30) 이처럼 덧없는 것으로서의 “타자는 월등히 나은 것으로서가 아니라, 자기의 고유한 권리를 가진 것으로서 [나에게] 다가 오며, 이 타자성은 나를 그것에 동화시키거나 그것을 나에게 동화시킴으로써 극복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31)

여기서 분명하게 드러나는 것처럼 요나스가 말하는 책임의 존재론적 근거는 ‘너’ 혹은 ‘그것’으로서의 타자 안에 놓여 있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책임의 존재론적 근거로서의 타자의 존엄성이 그것 아닌 어떤 다른 것 (그것이 신으로 파악되건, 인간 주체로 파악되건, 혹은 어떤 도덕법칙으로 파악되건)에 의해 부여되는 것이 아니라는 요나스의 주장이다. 요나스의 생각에 의하면 타자의 존재는 이미 그 자체로 존엄하고 가치 있다. 책임의 원천은 도덕법칙이 아닌, 타자의 존재 자체에서 찾아져야 한다. “법칙 자체는 경외의 원인이나 대상일 수 없는” 반면, “존재는(…) 경외를 불러일으킬 수 있기” 때문이다. 즉 “존재는 우리의 감정을 촉발함으로써 원래는 무력한 도덕법칙에 힘을 불어 넣는다.”32)

이처럼 요나스의 책임 개념은 이미 확립되어 있는 권리와 의무의 상호 구속과 같은 것을 의미하지도 않고, 법률적 의미에서건 도덕적 의미에서건, 어떤 행위와 그것이 초래한 결과 사이의 인과적 관계를 전제하지도 않는다. 물론 이러한 호혜적, 인과적 책임 개념의 중요성을 요나스가 무조건 부인하는 것은 아니다. 요나스는 그러한 책임의 불충분성을 지적하고 싶어할 뿐이다. 이런 의미에서 그는 호혜적, 인과적 책임과는 다른, 비호혜적, 비인과적 책임의 윤리적 중요성을 강조한다.


29) 이점에 관해서는Jonas, H.: Technik, Medezin und Ethik: Zur Praxis des Prinzips Verantwortung, Frankfurt am Main, 1987, S. 15ff. 참조.

30) Jonas, H.: Das Prinzip Verantwortung. Versuch einer Ethik für die technologische Zivilisation, Frankfurt am Main. 1984. S. 166.

31) Jonas, H.: 같은 책, 같은 곳.

32) Jonas, H.: 같은 책, S. 170. 요나스는 도덕적 당위의 토대를 목적 개념에서 찾는다. 이것은 칸트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요나스는 칸트와 달리 이성적인 목적을 최종적인 것으로 여기지 않는다. 요나스의 목적 개념은 칸트의 그것에 비하면 한층 더 포괄적이다. 요나스도 목적 자체가 가치 내지 선을 의미한다고는 보지 않는다. 그러나 요나스는 자기목적의 개념을 칸트와는 다른 식으로 이해한다. 칸트에게 자기목적(Selbstzweck)은 언제나 이성의 목적(Vernunftzweck)을 의미했다. 그런데 요나스가 보기에 칸트가 말하는 ‘이성의 목적’은 어디까지나 인간적 자기를 기준으로 설정된 자기목적일 뿐이다. 그러므로 요나스는 칸트가 전제했던 이성적 객관성만 가지고는 뭔가 부족하다고 생각한다. 요나스가 원하는 것은 이성적 객관성 이상의 존재론적 객관성, 즉 형식적 객관성 이상의 내용적 객관성이다. 자기목적, 정확히 말해서, 목적 자체(Zweck an sich)의 근거가 반드시 인간 안에 놓여 있을 까닭은 없다. 목적 자체가 언제나 인간을 위한 목적일 수만은 없기 때문이다.


출처 : 이유택 (2008). 책임에 관한 철학적 성찰 : 레비나스와 요나스를 중심으로. 현대유럽철학연구, 17, 63 - 94.


23년이 지난 2025년 현재 우리나라 커피 소비 시장에서 차지하는 공정무역 커피의 비중은 전체의 1% 내외를 차지할 뿐이다. 생산량 기준으로 세계 커피 시장에서 공정무역 커피가 차지하는 비중은 5.8%, 전체 시장 가치 기준으로는 5~6%를 차지하고 있는 것에 비해 매우 낮은 편이다.


우리나라 커피 소비 시장에서 공정무역 커피의 비중이 낮은 이유는 몇 가지가 있다. 첫째는 공정무역 커피에 대한 인지도가 전체적으로 낮다. 소비자들이 커피 구매 시 고려하는 요소에서 공정무역은 순위가 매우 낮다. 카페나 커피를 선택할 때 맛, 브랜드, 가격 등을 우선시할 뿐 윤리적 소비에 대한 고려는 약한 편이다.


둘째, 커피 시장에서의 극심한 경쟁 상태가 공정무역 커피의 유통을 가로막고 있다. 10만 개를 넘긴 카페 사이의 경쟁이 심화되면서 카페 경영자는 가격 경쟁력 저하를 가져올 수밖에 없는 공정무역 커피의 선택을 기피하는 현상이 생겼다.


셋째, 커피 가격 인상에 대한 우리나라 소비자들의 높은 민감성도 공정무역 커피의 유통 확대를 가로막는 요인 중 하나다. 우리나라에서 역사적으로 경기가 불안하거나 침체 국면에 접어들었을 때 커피를 소비하는 행위나 커피 가격 인상은 비난의 대상이 되기 일쑤였다. 이런 역사적 경험은 현실 세계에서의 커피 가격 인상을 어렵게 만드는 요인으로 작용하여 왔다. 일반 무역 제품에 비해 비쌀 수밖에 없는 공정무역 커피의 증가를 어렵게 만드는 가장 큰 요인이다.


2003년 당시 4000원이었던 스타벅스 아메리카노 한잔이 현재는 5500원 수준이다. 23년 동안 37.5% 상승하였다. 반면, 2003년 우리나라의 1인당 국민소득은 1만 2030달러로 세계 49위 수준에서 2025년에는 3만 7000달러로 세계 28위, 인구 5000만 명 이상 국가 중 6위 수준에 이를 것이 예상된다. 23년간 300% 이상 상승하였다.


물론 커피 한 잔 가격이 8000~9000원 수준인 카페도 적지 않지만, 여전히 2000~3000원 수준을 유지하고 있는 저가 카페도 많다. 고급 카페와 저가 카페의 공존으로 우리나라 카페에서의 커피 한잔 평균 가격은 3.56달러(5000원) 정도다. 미국보다 조금 낮고 일본과 비슷한 수준이다.


국민소득의 증가는 국민 복지 수준의 향상 압력으로도 작용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국제 사회에서의 책임 증가 요인으로도 작용할 수밖에 없다. 커피를 즐기는 한편 공정무역에 대한 보다 큰 관심, 커피 생산지 노동자들의 삶의 조건 향상에 대한 보다 큰 관심이 필요한 시대가 되었다. '공정'을 내세우며 등장한 정권이 불공정을 일삼다가 무너졌다. '공정무역' 참여의 확대로 국제사회에서 책임을 다하는 나라, 진짜 대한민국의 미래 모습이다.


출처 : 이길상, "우리가 마시는 '잔인한' 음료, 그 뒤에 숨겨진 이야기". 오마이뉴스, 2025.06.29, https://www.ohmynews.com/NWS_Web/Series/series_premium_pg.aspx?CNTN_CD=A0003143865


올해 초 런던 패션위크 개막식에서 영국의 대표적 소매점인 막스&스펜서, 테스코, 세인즈버리 등 300여곳이 ‘지속가능한 패션 행동계획’을 약속했다. 제3세계 어린이 노동을 착취하지 않은 공정무역 섬유, 환경을 지키기 위한 유기농 면의 사용을 늘리겠다는 것이다.


패션의 중심지인 런던·파리·밀라노 등지에서 ‘윤리적 패션’이 화두로 떠오른 가운데 최근 국내에도 그 열풍이 불고 있다. 자신의 몸을 치장하기에 이기적인 소비 행위로 치부됐던 패션 분야에까지 ‘착한 소비’ 운동이 스며든 것이다. 윤리적 패션은 옷의 재료가 무엇으로 만들어졌고 어느 지역에서 나왔는지, 공정이 어떻게 이루어졌는지를 살펴 인류와 지구의 지속가능한 공존을 생각하는 옷 입기를 말한다. 주로 공정무역을 통해 생산되거나 친환경적인 소재와 방식으로 만든 옷을 뜻한다.


출처 : 백소용, "‘공정 커피’ 이어 ‘착한 패션’도 뜬다", 세계일보, 2009.07.31, https://www.segye.com/newsView/20090730003385



내가 산 옷 한 벌,

내가 마신 커피 한 잔은

멀리 있는 사람들의 노동과

환경의 영향을 담고 있습니다.

그것은 보이지 않는 공동체와의 연결입니다.



한스 요나스, "책임의 원칙"


한스 요나스(Hans Jonas)는 “책임의 원칙”에서 현대 사회의 윤리는 먼 미래 세대와 보이지 않는 타자까지 고려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미래를 망각하지 않은 상태에서,

타인의 삶이 영속될 수 있도록

행위의 결과를 고려하여 행위해야 합니다.

소비는 곧 연결의 선택입니다.



생활 속 실천


오늘 소비한 것 중 하나를 떠올려 보세요.

그 생산 과정에 어떤 환경적·사회적 비용이

있었을지 상상해 보세요.

소비는 결코 개인적 행위가 아닙니다.
내 소비는 나 혼자 끝나는 것이 아니라,

타인의 삶과 미래 세대의 환경까지 이어집니다.



더 큰 자아로 살아가기


나의 존재는 ‘나’를 넘어,
이미 세상 전체와 함께 숨 쉬고 있습니다.

수요일 연재
이전 13화아리스토텔레스, "인간"